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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할 논술 모음] 1차 논술 (19일 금요일 평가분)미리 읽어보기 바랍니다

작성자김창석|작성시간26.06.18|조회수53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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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논술 (6월 19일 금요일 평가분)

 

# 1. 최근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 결과와 별개로 절차적 공정성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선거 절차의 공정성이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신뢰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유롭게 논하라.

 

독일 사회학자 니콜라스 루만은 “현대사회에서 정당성은 절차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선거 역시 일종의 절차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특정 후보나 정책에 대한 국민 전원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 유권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더라도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선거 절차가 공정하고 적법하게 집행됐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2026년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믿음이 깨지고 있다.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가 부족해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못하거나 3사 방송사의 출구조사를 보고 투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 관리로 전북교육감의 투표 수가 잘못 집계되기도 했다. 선거 절차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며 대의민주주의라는 체계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선거 절차의 공정성 훼손은 체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며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위험이 크다. 예컨대 2020년 벨라루스 대선에서 선관위 집계와 실제 투표 결과 사이의 큰 차이가 발생하면서 사회에 큰 파문이 일었다.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는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시위를 벌였다. 지금까지도 선거제도에 대한 낮은 신뢰와 극명한 국론 분열은 쉬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역시 비슷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선관위의 부실 관리와 개표 과정 중에서의 오류 등 문제가 겹치며 선거 절차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있다. ‘부실선거’에 대한 불만이 가시적인 시위 행동으로도 보이는 가운데, 선관위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이 잠실 투표소 앞을 점거해 정상적인 업무 진행까지 막는 데 이르렀다. 이러한 분위기에 영합해 야당 지도부와 일부 시위대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내세우며 혼란과 분열을 증폭시키고 있다.

선거제도의 불신 문제를 해결해 공정성을 높일 정책적 대안이 긴요한 때다. 선거를 집행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근본적인 개혁이 한 방법이다. 선거관리위원 9명 중 1명만이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는 구조는 위원회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떨어트린다. 비상임위원은 선거 당일에도 출근하지 않는 것이 관례인 실정이다. 선관위원들을 상임화함으로써 책임을 강화하고 사무처에 대한 감시라는 책무에 충실하게 해야 한다. 또한 개표 과정에서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QR 코드나 광학인식 기술을 이용하는 자동화가 필요하다. 선관위의 개혁과 오류 가능성을 줄이는 방안이 신뢰 회복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3·15 부정선거라는 아픈 역사를 딛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역사적 변곡점을 맞은 후 민주화 항쟁이라는 투쟁을 겪으며 이뤄낸 것이 직선제다. 국민이 대표자를 직접 뽑는다는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결과의 정당성뿐 아니라 절차의 정당성 위에서 유지된다. 민주주의의 퇴보를 막을 골든 타임이 바로 지금이다. 해법은 자성과 개혁이다. 2028년 총선이 오기 전에는 선거 제도를 다시 바로잡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기득권이 이에 응답해 행동을 보일 일이다.

 

 

 

# 2. 이번 부산 지방선거는 부산의 청년 유출, 고령화, 원도심 쇠퇴, 산업 재편 등 지역 현안을 해결할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 한편에서는 실제 선거가 지역 의제보다 정당 대립과 개발 공약 경쟁에 치우쳤다는 비판도 있다. 이번 부산 지방선거를 평가하고,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논하라.

 

최근 삼성노조의 성과급 협상은 임금과 처우를 둘러싼 기업과 노동간의 갈등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바깥에는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과 불안정한 일자리에 머무는 노동자들이 있다. 기존 노동자의 권리와 청년의 기회가 충돌하는 듯한 현실은 겉으로 드러난 대립보다 더 깊은 노동시장 구조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번 지방선거 또한 마찬가지이다. 언뜻 보기에는 유권자의 선택을 두고 벌어지는 여야 싸움처럼 보이지만 그 바깥에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지방소멸 정책과 지역민이 있다. 특히 지방자치에 초점이 아닌, 중앙 정치의 대리전으로 치뤄진 이번 지방선거에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지방선거는 지역민이 우리 지역에 일할 일꾼을 뽑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수도권 집중화의 결과로 지방소멸이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균형있는 지방자치를 위해서 지방선거는 중요한 도구이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진영을 막론하고 어느 지역에 우리 당이 이길지에 급급해 결국 지역의 의제들은 논외 밖으로 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의 경우 하정우 후보와 한동훈 당선인을 두고 전 이재명 정부 AI 수석 대 차기 대권 주자 후보 가능성에 초점이 쏠렸다. 정작 부산 북구에 필요한 지역 의제는 축소되고 누가 여의도로 향할지에 더 급급한 싸움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현직 대통령들이 유세 기간 동안 지역을 찾은 것 또한 지역민들에게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보다 ’어느 당이 이겨야하는가’를 강제했다는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색깔론 싸움에 그쳐버렸다.

결국 지방선거는 지방자치의 출발점이므로 지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야한다. 지방자치가 잘 이뤄져야 수도권과의 불균형도 조화를 이루고 산업, 경제, 교육 등 전반적인 면에서 균등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주마다 법률이 다를 정도로 지방자치가 중요한 의제인 미국의 사례만 보더라도 미국에서 지방 선거는 단순히 공화당과 진보당의 싸움이 아닌 지방자치 실현의 출발점이다. 그렇기에 지방선거는 올바른 지방자치를, 더 나아가 발전될 대한민국을 만들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지방선거가 잘 이뤄지기 위해서 지역 언론들은 건강한 공론장을 생성해야한다. 단순히 여야 후보들의 공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소수당 또한 비중있게 다뤄야하며, 지역 유권자들이 후보자 자체에 대한 투표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특집 기사들을 기획해야한다. 또한 음료 테러 자작극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개혁신당 정이한 후보처럼 선거 유세 기간 우리 지역의 후보자가 올바른 선거 활동을 하고 있는지 견제할 수 있는 감시견 역할도 해야한다. 반도체 호황 속 삼성노조의 성과급 협상이 자본시장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도 지역의 미래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지방자치의 출발점인 지방선거를 위해 지역 언론은 지역민이 제대로 된 1표를 행사할 수 있게 중립적인 보도를 이어나가야 한다.(1452자)

 

 

 

# 3. 6.3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20대~30대의 보수 성향이 짙어졌다는 일부의 분석에 대해 찬반 의견을 밝히고 그 이유를 논하라.

 

‘보수’와 ‘진보’는 선거가 끝난 뒤 가장 빠르게 유권자의 표심에 붙는 이름표다. 그러나 그 이름표가 언제나 유권자의 실제 판단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는 고정된 사상이라기보다 시대적 조건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 의미가 계속 달라져 온 개념이다. 따라서 오늘날 어떤 세대의 표심을 보수화라고 부를 때에도, 그것이 실제 이념 변화인지 아니면 특정 국면에서 붙여진 정치적 해석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6.3 지방선거 이후에 일부 지역과 일부 집단에서 보수 후보에 대한 지지가 늘어난 것은 사실일 수 있지만, 이를 20대부터 30대인 청년층 전체의 이념적 보수화로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이다.

먼저 이번 선거에서 청년층의 일부가 보수 후보를 선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20대~30대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뜻은 아니다. 청년층 표심은 성별, 지역, 후보, 정책 쟁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고, 특히 2030 여성과 남성의 표심 차이가 크게 드러났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이하 남성은 국민의힘 후보 지지가 55.8%였던 반면, 같은 연령대 여성은 민주당 후보 지지가 66.4%로 나타났다. 30대에서도 남성은 국민의힘 후보 지지가 48.6%로 더 높았지만, 여성은 민주당 후보 지지가 63.5%로 우세했다. 이는 20~30대 전체가 보수화됐다기보다, 청년층 내부에서 성별에 따른 정치적 분화가 뚜렷해졌음을 보여준다.

선거 직후에는 일부 출구조사 결과를 근거로 20~30대가 보수화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실제로 연합뉴스 등 주요 언론은 출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30 세대의 보수화 또는 성별 정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출구조사는 표본조사라는 한계를 가지며, 특정 지역이나 집단의 결과가 전체 세대의 정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같은 20~30대 안에서도 성별과 지역에 따라 지지 성향이 크게 달랐다.

그렇다면 왜 일부 청년층은 보수 후보를 선택했는가. 그 이유를 이념 변화에서만 찾기는 어렵다. 지방선거는 대선보다 후보 개인의 행정 능력, 지역 현안, 부동산 정책, 일자리 문제 등이 크게 작용한다. 특히 20대~30대는 정당 충성도보다 자신의 생활 문제와 직접 연결된 정책 문제와 직접 연결된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부 보수 후보 지지의 결과는 이념적 보수화가 아니라, 현실 문제에 대한 실용적 선택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청년층의 표심은 단순히 보수와 진보 중 하나로 정리되기보다, 훨씬 복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잠실 투표지 부족 사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 사태는 청년들의 정치 행동이 보수화로 오독된 사례이다. 일부 20대~30대 시민들이 선관위 규탄과 재선거 요구에 나서자, 이를 청년층 보수화의 근거처럼 해석하는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핵심 문제 의식은 특정 정당 지지가 아니라 참정권 침해에 대한 항의였다. 문제는 참정권 회복을 요구하던 목소리가 일부 극우 세력의 부정선거 음모론과 ‘윤어게인’ 구호에 뒤섞였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선거 관리 부실을 비판하던 시민들의 요구는 보수화나 극우 시위라는 프레임 속에 묻혔다. 따라서 투표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청년층의 반응은 보수화의 증거라기보다, 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불신과 참정권 회복 요구가 정치적으로 왜곡된 사례로 보아야 한다.

결국 이번 6.3 지방선거 결과를 20대~30대의 보수화로만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번 선거가 드러낸 것은 청년들의 일방적 이념 이동이 아니라, 성별/연령/지역에 따른 표심 분화와 생활 이슈 중심의 선택이었다. 더 나아가 투표지 부족 사태에서 보듯, 청년층의 민주주의적 문제 제기마저 보수화나 극우 프레임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 20대~30대의 정치 성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문제에 반응했고 왜 움직였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 4.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져 선관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선관위는 정치적 중립성, 권력 분립, 선거의 공정성 등을 지키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독립적 국가기관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수가 있었다고 해서 정치권이 선관위를 과도하게 압박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선관위의 독립성 유지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같은 선거관리 부실 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방안이 있다면 구체적인 해법을, 없다면 현행 선관위 체제를 어떻게 변경해야 하는지 대안을 논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법원, 헌법재판소와 더불어 헌법상 독립성이 보장된 기관이다. 이들 기관은 다른 기관의 지휘나 감독을 받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직무를 수행한다. 헌법이 이들 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이유는 정치 개입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선거관리와 재판, 위헌 심사 기능이 정치권력 영향 아래 놓일 경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훼손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1960년 3.15 부정선거는 정부가 선거 과정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다. 2022년 폴란드가 EU로부터 사법부 독립 침해를 이유로 제재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폴란드 정부가 판사 임명과 징계 절차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자 법치주의 훼손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선거와 재판, 헌법 해석은 국가 권력의 형성과 행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들 영역의 정치적 독립성은 헌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6.3 지방선거에서 빚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인쇄·배부 과정에서 발생한 행정 오류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선거 수요 예측 실패와 지역별 배분, 비상 대응 체계 운영 등 선거 집행 과정 전반에서 관리상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 선관위는 예상보다 많은 유권자가 몰리면서 용지가 부족했고, 본투표 당시 전국 140개 투표소에 투표용지 부족분을 보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투표용지가 제때 보충되지 않아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거나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례도 발생했다. 하지만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곧바로 선관위의 독립성 문제로 연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독립성이 정치 등 외부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의미한다면,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관리 실패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의 책임성과 전문성을 점검해야 할 사안이지, 독립성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할 사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선관위의 독립성을 약화시킨다고 해서 선거관리 역량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나 국회 통제를 받더라도 투표용지 수요 예측이나 배분 체계, 현장 대응 능력이 자동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등 정부 부처도 감사원의 감사나 국회 국정감사를 받지만, 2023년 국가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와 같은 행정 오류를 겪었다. 이는 외부 감독의 존재가 행정 실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해법은 독립성 약화가 아니라 선관위의 책임성과 전문성 강화에서 찾아야 한다. 독립성과 행정 역량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분리해서 봐야 한다. 행정 실패의 원인이 행정 역량 부족에 있다면, 해결책도 그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유지하되, 선거관리 역량과 책임을 강화할 장치가 필요하다. 투표용지 수요 예측 방식과 배분 기준, 비상 대응 계획, 선거 이후 평가 결과 등을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 내부 감사 기능을 강화해 선거관리 과정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감사 결과와 개선 계획을 공개해야 한다. 정보공개와 사후 검증은 정치권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도 국민과 언론의 감시를 가능하게 해 책임성을 높일 수 있다. 정치적 독립성과 행정적 책임성은 양립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다. 선거관리 업무에 대한 정치적 개입은 차단하되, 선거 과정에 대한 자정적인 노력이 이뤄질 때 선관위는 독립성과 국민 신뢰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 5.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져 선관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선관위는 정치적 중립성, 권력 분립, 선거의 공정성 등을 지키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독립적 국가기관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수가 있었다고 해서 정치권이 선관위를 과도하게 압박하거나 통제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선관위의 독립성 유지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같은 선거관리 부실 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방안이 있다면 구체적인 해법을, 없다면 현행 선관위 체제를 어떻게 변경해야 하는지 대안을 논하라.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때, 악은 평범해진다. 관료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한나 아렌트는 업무가 세분화 되어 있어도 책임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을 때, 악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6.3 지방선거 사태는 무책임이 악을 낳는 한국의 관료제 시스템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선관위는 연구 용역에만 의존해, 만약의 사태도 대비하지 않는 등 선거 준비에 안일했고, 투표 당일에 벌어진 위기 상황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선거 관리에 부실했다. 그 결과 일부 유권자가 제때 투표를 하지 못했고, 참정권을 침해당한 것에 분노한 일부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문제의 원인을 명백히 알리고, 대책을 세우고, 마땅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다.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의 무책임한 사퇴 선언만 이어졌다. 이러한 선관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체에 가까운 체제 개혁보다 내부적 책임 소재와 책임의식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선거 관리의 책임소재가 모호하고 책임 의식이 약화한 이유는 선관위가 헌법적인 독립기구라서가 아니다. ‘선거 관리’라는 핵심 업무에 전념하고 책임질 결정권자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선관위는 지휘, 결정권을 갖는 위원회와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처로 구성된다. 그중에서도 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총 9명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상근직으로 근무하는 상임이사는 단 한 명뿐이다. 위원장을 포함한 8명은 모두 대법관, 변호사, 교수 등을 겸직하고 있는 ‘비상임’ 위원이다. 중앙선거위가 처음 출범했을 때는 선관위의 업무 범위가 좁고, 전체 직원 숫자도 적었다. 그래서 모든 위원들이 상임으로 일할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63년여 동안 개헌을 거치며 선관위의 역할과 권한은 계속 커져왔다. 이에 반해 결정권자들의 책임 소재와 책임 의식은 63년 전에 머물러있다. 이러한 괴리가 오늘의 사태를 낳은 것이다.

이러한 기강해이를 바로잡겠다고 미국과 영국 등 다른 국가들처럼 선관위를 정부 부처로 이관하는 방식으로 손질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된 기구로 자리잡은 데에는 역사적 맥락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은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겪었고, 군사독재 시절의 관권선거, 간접선거를 겪으며 심각한 참정권 침해를 경험했다. 이를 되찾는 데에는 수많은 희생이 있었고, 이 결과로 만들어진 ‘선관위 독립’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는 데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이 정치화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이 한쪽의 스피커를 장악하고 있어 정치적 양극화 문제도 심각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관위가 독립되지 않고 특정 부처와 가까워지는 것은 행정 효율이라는 장점보다 집권 세력의 선거 개입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을 빌미로 한 음모론의 확대라는 리스크가 더 크다.

선관위 독립과 책임 의식 강화는 결코 이분법적인 개념이 아니다. 선거의 완전성은 신뢰할 수 있는 중립적인 선거 관리 기구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해법은 선관위의 독립성은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실무자들의 전문성을 키우고 결정권자들의 책임소재 및 책임 의식을 높일 것인가를 향해서 가야 한다. 우선 위원회의 숫자를 줄이더라도 상임으로 일하는 위원의 수를 늘려야 한다. 현재 월 1회 수준의 정례회의를 2회 이상으로 늘리고 회의록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조직의 기강 해이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난 이상, 이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 장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또 다른 정치 권력에 의한 견제가 아닌,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공백 포함 1,804자)

 

 

 

# 6. 개헌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개헌의 방향과 주요 내용에 대해 논하고, 필요하지 않다면 그 이유에 대해 논하라

 

사회에는 다양한 이념, 정치적 주장,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한 사회의 민주주의 질이 결정된다. 국가 운영 원리를 규정하는 헌법 역시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87년 헌법은 다름을 받아들이기에는 좁게 설계됐다. 당시 개헌을 주도한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차기 권력 쟁취에 있었다. 군부의 장기 독재 고리를 끊기 위해 단임은 시대 정신이었지만,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었다. 이런 설계는 한국 정치의 구조적 결함을 유발했다. 5년 단임제와 단순다수제의 결합은 같은 세력 간의 결집을 공고화했다. 승리한 쪽은 단 한 번의 임기 내에 국정 운영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이유로 국가의 핵심 권력을 독점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캠코더’, ‘서오남’과 같은 논란이 반복된다. 패배한 쪽은 승리자의 힘을 빼고자 대안 제시보다 무한 규탄만 외친다.

정치권의 편 가르기는 사회를 퇴화시킨다. 승리를 위해 포용보다는 분열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21대 대선에서 거대 양당 후보에게서 뚜렷한 정책 방향성은 실종됐다. 대신 각각 내란 심판과 독주 저지라는 슬로건만 내세웠다. 정치가 아닌 진영 논리만 남으니 포용력 떨어진다. 성장과 개발은 보수, 분배와 보존은 진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인구소멸, 지방소멸, AI 등 쟁점을 해결할 동력도 떨어지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질적인 이념이나 정책을 받아들일 틈도 좁아지는 셈이다.

따라서 공존을 이뤄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개헌을 해야 한다. 첫걸음은 대통령 권력 분산이다. 확실한 분권을 위해 의원내각제나 대통령과 의원내각제를 절충한 형태의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 중임제나 연임제에서도 결국 대통령 1인에게 막강한 권한이 집중된다는 점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통령 인사권 축소도 필요하다. 헌법에 열거된 대통령의 인사권은 삼권 분립을 넘어서고 있다. 인사청문회 절차가 있지만, 따를 의무는 없다. 마음만 먹으면 국가를 단일한 이념으로 채울 수 있는 구조다. 장기적으로는 선거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제3당이 원내로 진입할 길을 열어야 한다. 위성정당 창당 금지를 못 박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고려해볼만한 시점이다.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때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있다.

 

 

 

# 7. 이재명 대통령이 "일간베스트 저장소처럼 조롱과 모욕으로 사회분열 갈등을 조정하는 데 대해 표현의 자유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처벌을 포함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병존하는데 공론화와 실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일베와 같은 혐오 조장 사이트를 폐쇄하는 조치에 대해 찬반 의견을 밝히고 그 이유를 논하라.

 

미국에서는 십자가를 소각하는 행위 등을 끔찍한 '증오의 상징'으로 여긴다. 지난 1992년 미네소타주의 한 청소년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정의 마당의 십자가를 불태운 사건이 있었다. 미네소타주는 분노와 공포, 원한을 유발할 수 있는 경우 증오를 표현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세인트폴 시의 조례를 위헌으로 판결하고 혐오 표현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조례가 인종, 성별, 종교 등 특정 주제에 기반한 메시지만을 선택적으로 금지해 '관점 차별'을 초래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혐오 표현을 금지하게 되면, 어떤 표현이 허용되고 금지될지를 권력이 판단하게 된다. 혐오와 조롱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권한은 언제든 정치적 반대 의견이나 불편한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따라서 일베와 같은 사이트를 폐쇄하는 조치에 반대한다.

인종, 성별, 지역, 정치 성향을 향한 노골적인 비하 표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어떤 표현이 단순한 풍자나 조롱인지,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혐오 표현인지 혹은 권력에 대한 정당한 비판인지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국가가 사이트 폐쇄 권한을 갖게 되면, 그 권한은 언제든 불편한 여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오늘은 혐오 사이트를 폐쇄하는 명분으로 쓰인 권한이 내일은 정부 비판 게시판이나 정치적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가 좋은 말과 품격 있는 주장만을 보호하는 권리라면 사실상 권력의 허락을 받은 표현만 남게 된다.

물론 혐오 표현의 피해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특정 층을 향한 모욕과 조롱은 실제 피해자의 존엄을 훼손하고 사회적 갈등을 키운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선 혐오 표현이 빠르게 확산하며 현실의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이트 전체를 폐쇄하는 방식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사이트 폐쇄는 개별 게시물 삭제나 불법행위 처벌을 넘어 그 공간에서 오가는 모든 표현을 한꺼번에 없애는 조치다. 그 안에는 혐오 표현도 있지만 정치적 토론이나 사회 비판, 단순한 의견 표명도 섞여 있다. 일부 표현의 문제를 이유로 공간 전체를 없애는 것은 과잉 대응이다.

일베를 폐쇄한다고 해서 혐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표현의 통로를 막으면 혐오는 더 음성적인 공간으로 숨어들 수 있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권력이 탄압받는다는 의식을 갖게 될 수 있으며 더 강한 결집과 반발을 낳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필요한 건 폐쇄가 아니라 정밀한 책임 부과다. 특정인을 향한 협박, 명예훼손, 모욕, 스토킹, 범죄 선동 등 이미 현행법으로 처벌이 가능한 행위는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반복적으로 불법 게시물을 방치하는 플랫폼에도 삭제 요청, 임시 조치, 과태료 등 단계적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혐오와 조롱이 반복된다는 이유만으로 사이트 전체를 폐쇄하는 것은 민주사회가 택해야 할 최후의 수단이 되기 어렵다.

표현의 자유는 혐오를 방치하자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어떤 표현을 허용하고 금지할지 자의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며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를 스스로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유라는 건 자기 스스로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정부에서 규제한다는 건 독재로 귀결될 수 있다. 혐오 표현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나 그 비판의 주체는 시민사회와 공론장이어야 한다. 혐오 표현의 근본적 해결은 사회적 반론과 교육, 더 많은 대항 표현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잘못된 표현은 법으로 침묵시키기거나 억압하기보다 공론장에서 반박되고 비판받을 때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민주적으로 극복될 수 있다.

 

 

 

# 8.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투표용지 사태가 벌어져 선관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선관위는 정치적 중립성, 권력 분립, 선거 공정성 등을 지키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독립적 국가기관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수가 있었다고 정치권이 선관위를 과도하게 압박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선관위 독립성 유지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같은 선거관리 부실 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방안이 있다면 구체적인 해법을, 없다면 현행 선관위 체제를 어떻게 변경해야 하는지 대안을 논하라.

 

영국 역사학자 액턴 경은 “권력은 썩는다. 반드시 썩는다.”고 경고했다. 거창한 감시와 견제가 있어도 모든 권력은 썩기 마련이다. 어떤 모습이든 권력의 부패를 막는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역사상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은 이를 이양으로 착각한 행보를 보였다. 3·15 부정선거, 12·12 군사반란부터 12·3 비상계엄까지. 부패한 권력이 민주주의를 위협한 사건들은 늘 반복됐다. 6·3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선관위의 선거관리 부실 사태 역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참정권’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썩은 권력’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독립성에 취해 책임성을 망각한 선관위에 개혁은 불가피하다.

‘실수도 반복되면 고의’라는 말이 있다. 선관위가 부여받은 ‘독립성’이라는 권력은 국민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다만 지금껏 선관위는 존립을 의심케 하는 행적을 보여왔다. 2022년 소쿠리 투표, 2023년 아빠 찬스 논란 등에 이어 지난해에는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 첫날 기표 대기 줄이 투표소 밖까지 이어지는 관리 부실 문제가, 올해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조직적 무책임의 결과다. 문제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 인지했음에도 조처하지 않은 것 모두 포괄적 의미의 고의성에 포함될 수 있다. 실수가 고의로 물들기까지 선관위는 ‘대국민 사과문’을 남발하는 데 머물러 있었다.

개혁의 핵심은 독립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책임성을 강화하는 데에 있다. 선거에 또 다른 권력의 개입이 허용되는 순간 선거는 신뢰를 잃고 민주주의는 실패의 지름길을 향하게 된다. 특히 일각에서 거론되는 감사원 개입은 정치권력 개입을 공적으로 허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어떤 형태의 통제든 독립성을 어느 정도 제한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약한’ 범위의 개혁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분리된 권한과 책임을 합치는 것이 될 수 있다. 정치적·행정적 책임 공백을 없애고 책임 운영을 위해 관리 조직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선관위 구조는 의사결정 권한과 실무 책임이 분리돼 있다. 중앙선관위원장과 위원들은 대부분 비상근인 반면 실제 선거 관리는 사무처가 담당한다. 관리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의사결정권자가 업무에 상시로 참여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상임위원 확대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상임위원이 늘어나면 의사결정권자의 실무 이해도와 사무처 감독 기능이 함께 높아진다. 이는 위원회의 책임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직 내부의 감독 강화는 권력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해 부패의 시간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 9. 개헌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개헌의 방향과 주요 내용에 대해 논하고, 필요하지 않다면 그 이유에 대해 논하라

 

개헌의 역사를 보면 뻔하다. 대부분의 개헌은 국민을 위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권력자가 더 오래 권력을 쥐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까지 모두 개헌을 통해 권력을 더 오래, 더 강하게 쥐었다.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러시아 푸틴은 개헌으로 대통령 임기 제한을 지우고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지난 대선 당시 불붙은 개헌 논의라고 다를까. 누군가는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지금은 개헌할 때가 아니다”라며 말을 바꾸고, 또 누군가는 뚜렷한 비전도 없이 정치적 유불리를 고려해 개헌을 입에 올렸다. 하지만 개헌 전 근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가 있다. 과연 권력구조만 바꾸면 모든 게 해결될까? 우리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인 정치 양극화도, 계엄과 같은 일부 정치인의 횡포도 모두 막을 수 있는가. 5년 단임제든, 4년 중임제든, 의원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세상에 완벽한 권력 구조는 어디에도 없다. 만약 그런 체제가 있었다면, 그 나라들은 이미 완벽한 나라가 돼야 했는데 그런 사례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스의 역사가 그 증거다. 의원내각제였던 프랑스는 1958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누는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 7년, 국회의원 임기 5년의 차이로 인해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엇갈리는 상황이 세 차례 발생했다. 이른바 동거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 권한은 국방·외교에 국한되고, 경제 등 나머지 권한이 총리에게 넘어가자, 정치적 교착은 반복되고 정책의 책임소재는 흐려졌다. 프랑스는 결국 2000년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단축하고 의회 임기와 맞추는 개헌을 또다시 단행해야 했다.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바꿨더니 또 개헌이 필요해진 것이다. 결국 시스템보다는, 시스템 안에서 누가, 어떻게 뽑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따라서 개헌보다 시급한 것은 대통령의 정치적 대표성을 높이는 선거제 개편이다.

현행 대통령 선거는 1등만 하면 이기는 ‘상대다수대표제’다. 단 한 표라도 더 받으면 당선되니, 과반은 중요하지 않다. 전임 정부도 고작 0.73% 차이로 당선된 정권이다. 유권자의 1위가 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거는 내 편만 챙기는 진영 대결로 흐른다. 그 결과가 극단적 양극화를 불러온다. 이때 필요한 건 ‘순위선택투표제’다. 유권자가 후보의 선호 순위를 매기고, 과반이 나올 때까지 최소득표자를 탈락시키며 표를 차순위 후보에게 이전한다. 한 번의 투표로 다양한 민심을 반영할 수 있고, 유권자의 차순위 표도 중요하기 때문에 온건하고 합리적인 후보의 당선이 유리해진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일부 주·지방선거 등에서 이미 확산 중인 제도다. 전략투표는 줄고 투표율은 오른다는 연구결과를 고려하면, 양당제와 양극화가 심각한 우리 정치에서 효과적인 제도일 수 있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말했다. “국민은 투표할 때만 자유로운 주인이고, 끝나면 다시 노예가 된다.” 오늘까지도 유효한 말이다. 선거철엔 고개 숙이던 정치인들이, 선거만 끝나면 이권 다툼에 다시 주력하길 반복하고 있다. 그런 정치판에서 유권자가 ‘차악’이 아니라 ‘최선’을 뽑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처음엔 욕해도, 1년 지나면 다 찍어주더라”는 식의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하지 않나.

 

 

 

# 10. 계엄령 선포와 내란 시도, 대통령 탄핵에 대해 한국 민주주의 체제가 의외로 허약했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이 사태를 극복하는 데 시민의 주도적 참여가 주효했다면서 이를 높게 평가하는 상반된 시각도 있다. 한국 민주주의 체제를 평가하되, 이와 같은 상반된 시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의에 포함하라.

 

"이때껏 있어왔던 모든 정치제도를 제외하면, 민주주의는 가장 나쁜 제도다." 원스턴 처칠은 민주주의의 불완전함과 대체 불가능성을 함께 시사했다. 민주주의는 늘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나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해야 하고, 나를 대신할 사람을 뽑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권력의 오만과 독주를 막는 안전장치가 된다. 민주주의는 다른 체제와 달리 의견 대립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용인하기 때문이다. 이 낭비는 사회 구성원들의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가기 위한 숙의이자, 불편한 주제를 공론장에 올림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본질적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이 불편함을 제도와 정치문화 속에 충분히 체화하지 못했다. 정치권은 서로를 설득하는 어려운 정치보다 지지층 결집에 기대는 편한 싸움에 익숙해졌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여야 간의 정권 교체,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 등 민주주의의 형식적 조건만 놓고 보면 한국은 완성 체제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 체제 안에서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비효율성’은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다. 선거는 정책 경쟁이 아닌 정권심판의 논리로 소비됐고, 국회는 공론장이 아닌 지지층을 향한 선명성 경쟁의 무대였다. 영국 시사 매체 이코노미스트의 민주주의지수에서 한국은 2021년 8.16점으로 세계 16위였지만, 2022년 8.03으로 24위까지 내려갔다.

계엄령 선포와 내란 시도는 한국 정치가 추구해온 ‘편함’의 허점을 관통하며 발생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여소야대 국면은 권력분립과 견제의 계기가 되기보다 입법 강행과 거부권 행사의 악순환으로 흘렀다. 정작 불편하게 논의되어야 할 민생 과제는 국회에 계류되곤 했다. 나라를 대표해야 할 대통령이 상대 진영을 숙의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로지 제거해야 할 적으로 본 순간, 한국 민주주의의 허약함은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났다. 계엄은 민주주의의 불편함 자체를 우회하려 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민주주의 체제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것은 시민의 주도적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계엄령이 선포되자 한달음에 국회 앞으로 달려온 시민들은 무장 군인을 맨몸으로 막아섰다. 세대와 성별에 관계없이 응원봉을 든 시민 행렬은 윤석열 탄핵안 가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시민이 매번 최후의 방파제가 되어야 하는 체제는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2017년에도 누적 1700만의 시민들이 차가운 광장에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인용을 끌어냈다. 시민의 참여가 늘 체제의 병폐를 수습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한다면, 그것을 두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높게 평가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촛불 혁명을 통한 정권교체에 만족했던 과오의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광장이 아니라 회의장 안에서 더 불편해져야 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상대진영을 정치적 공존의 대상과 파트너로 마주할 때 공론장은 열린다. 불과 얼마 전 6・3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윤석열 내란 계엄 심판’을,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권 견제’를 각각 전면에 내세우며 국민을 위한 공약에 근거한 토론보다 상대를 편히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공방을 우선으로 펼치고 있었다. 고르고 편한 토양 위에서 자란 민주주의 체제는 쉽게 바스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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