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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글

[5남매]

작성자효제|작성시간26.06.15|조회수17 목록 댓글 0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난다. 일찍이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자식 다섯을 키운 어머니다. 자식들이 장성하여 조금은 편하게 지내도 될 즈음 당신은 변변하게 누리지도 못한 채 병을 얻었다. 세계적인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도 견뎌내었는데 공교롭게도 환자의 격리라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쇠약해진 몸은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한스럽게 자식에게 전하고픈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혼자 병실에서 눈을 감으셨다.

환자 격리의 침상에서 육칠 년을 고통 속에 씹는 맛도 느끼지 못한 채 연명하는 미음으로 길고 긴 하루하루를 채워 나갔다. 요양병원에 방문하는 자식의 마음이 점점 무거워질 뿐이다. 만나기 전에는 애달픈 감정으로 다가가는데 돌아설 때는 발걸음만 무겁다.

어머니 가신지 두 해째다. 첫 기제사는 챙겨드려야 한다며 자식들이 모여 음식을 준비했다. 음복이 이루어지고 그간의 이야기로 저녁이 저물어 간다. 헤어지기 남동생의 제안이 시작된다. 내년부터는 명절은 각자 식구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두 차례의 제사는 먼저 다가오는 아버지 기일에 맞춰 ‘한 번으로 모읍시다’란 다. 다른 동생들과 제수에 이어 아내까지 미소로 망설임 없이 동의한다.

장남으로서 부모의 제사를 정리하는 일은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 혼 지 고집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결단을 했다. 모두의 뜻을 모아 가정의 평화를 선택했다.

한 해가 지났다. 제사를 모은 이후 처음으로 5남매가 모였다. 봄이 가기 전에 근교 전원주택에 함께 모여 밥 한 끼 하려던 기회조차 서로의 시간이 맞춰지지 않아 다음으로 미룬 지 한 달 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성장기 형제가 아니다. 각자 가정이 꾸려지고 사는 곳이 다른지라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에 그 정을 느끼기도 전에 좋은 시절 누리지도 못하고 음택에 자리를 잡았다.

내 자식이 두 아이를 둔 시점에 어버이의 내리사랑을 곱씹어 본다. 형제간 남매간 예전의 정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다른 집은 어떠할까. 전통이라는 것도 시대의 흐름에 좇아 행해진다.

몇 년 사이에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우리가 음력 시월에 조상의 묘를 찾거나 재실에 가서 행하던 묘사도 중단되었다. 사촌들이 모이는 날이 하루로 줄었다. 추석 전 산소 풀을 베는 행사만 행해진다. 이것조차도 멀리 있거나 다른 일이 겹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는 몇 년 지나 결혼식장이나 집안 어른이 돌아가시는 때에야 마주한다.

이제는 형제자매를 가진 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세대가 아닌가? 세월 따라 모든 것이 변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부족했지만 잔잔한 마음이 느껴지던 때가 엊그제 같다. 우리 5남매가 옛 시절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를 보듬어 주고 정을 챙겨주는 날이 가까이 있도록 따뜻한 밥 한 끼를 준비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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