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퇴직 후 몇 년간 강사로 지내다 다시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게 되어 심신이 조금은 피곤해졌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의 연장이지만 부서 업무는 처음 해보는 쪽이다. 전년도 문서함을 찾아보고 동료에게 물으면서 버티어 간다.
금요일은 여유가 있다. 오전 일과가 끝나고 한 시간의 강의를 마치면 업무 종료다. 이전과는 생활 리듬 자체가 다르다. 연속해서 강의하고 오전 중 집으로 돌아가는 체제에서, 퇴근 때까지 머무는 일정은 5년 만에 접하는 형태라 생소하다.
동료가 주문해서 건네는 차 한 잔의 여유는 한 주의 마무리를 가볍게 만드는 활력소다. 전체 구성원 중에서 도서관 맞은편에 다섯 명이 오붓하게 엮어가는 사무실 분위기는 이전부터 지내 온 가족처럼 매일매일 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함께 격려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용기를 북돋운다. 쉼 없이 다가오는 방문객을 마주하면서 때가 되면 성장하리라는 믿음을 되뇐다.
퇴근 두 시간을 앞두고 근무상황부 상신을 한다. 오늘은 몇 달간 보지 못한 두 손주를 맞이한다. 열차 도착 시각에 맞추어 역으로 마중을 나갈 채비를 마쳤다. 고속도로는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흐름이 차츰 느려진다. 약속 시각에 여유는 있다.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지체된다. 두 개의 터널을 지나 중심도로에 접어드는데 일기예보에 맞추어 약한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백일이 머지않은 아기와 세 돌을 앞둔 첫째의 짐까지 가방의 무게만 해도 만만찮을 것이다.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는다.
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이 바쁘다. 주차를 하면서 네 식구가 움직이는 상상을 한다. 아이 둘을 각각 안거나 유모차에 태우고 무거운 짐가방을 끌며 이동하는 모습에 얼른 다가가 손을 내밀고 싶다.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는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길이 어긋나지 않게 두리번거리며 자식 내외와 손주를 찾는다. 서너 걸음을 걷는데 불쑥 솟아오른 아들을 마주한다. 며느리와 손주를 두 팔로 안는다. 쌩긋 미소로 할아버지를 외친다. 몇 주 만에 마주한 큰 손주는 더 여물어졌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할비에서 할아버지라고 음절이 길어져 성장을 엿본다.
짐은 트렁크에 담고 뒷자리에 네 명이 탄다. 유모차가 앞자리를 차지했다. 자리가 넓어져야 함을 깨닫는다. 출발과 함께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파트 동 입구 현관에 손주를 기다린다. 평소 듣지 못하는 밝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고개 들어 확인한다.
거실 바닥에 충격 방지용 놀이방 매트가 조립된다. 쿵쿵 뛰어다녀도 떼구르르 굴러도 안전하리라. 큰 손주의 재롱과 작은 손주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에 우리 부부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러 있다. 아이가 주는 행복감에 이보다 더한 기쁨을 무엇에 견주리오. 한 달 한 달 쓰는 어휘와 달라지는 표현력에 한바탕 웃음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틀의 시간이 금세 지난다. 자라는 아이를 볼 때 우리의 나이가 들어감이 와닿는다. 무슨 말인지 몰라 통역이 필요한 것이 엊그제인데 쑥쑥 자란다. 사는 보람과 즐거움이 더할 나위 없다. 세대를 이어주는 큰 기쁨의 유전자가 발견된다. 건강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다하는 그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