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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학사 소식

길희성 선생님 2주기 추모사 "그 다정함에의 그리움" (최만자)

작성자Simdohaksa|작성시간25.09.09|조회수157 목록 댓글 0

고 길희성 선생님 2주기 추모사

 

"그 다정함에의 그리움"

 

 

최만자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시간은 결코 머뭇거리지 않는가 봅니다. 길희성 선생님 돌아가신지 어느새 2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기 심도학사에 오면 그 사슴같이 선한 눈빛으로 환히 웃으시며 반가이 맞아 주실 것 같은 착각은 저만의 것이 아닐 듯합니다. 심도학사 터를 찾느라 곳곳을 누비실 때 저도 많이 같이 다녔더랬습니다.

 

아마도 길 선생님 삶의 마당은 서강대학교와 심도학사와 그리고 새길교회라 하겠습니다. 그중에도 공동체로 구성된 새길은 길 선생님의 마음과 사랑을 크게 쏟으신 곳이라 여겨집니다. 몇 분 선생님들과 새길교회를 창립하셨을 뿐만 아니라 새길의 신학을 세우셨고 새길을 늘 올곧게 이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새길교회는 그 이름이 암시하듯 기존한 제도권 교회와 다른 길, 곧 길이 나 있지 않은, 그리고 좁은 길을 선택하며 시작하였습니다. 교단에 가입하지 않고 교회 건물을 우선하지 않으며 성직자 중심이 아닌 평신도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그 새길은 당시 한국 교계로부터 많은 의심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무슨 신학적 근거에 서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길선생님은 하나님과 예수와의 역사적 상황에서의 만남의 경험을 근거로 사회, 역사, 문화, 철학, 과학 등 세상의 사조와 사상들과 대화하는 대화적 신학의 입장이 새길의 신학적 정체성이라 하셨고, 그래서 새길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현대 자연과학 사상, 실존주의, 맑스주의, 각종 해방사상(민중, 여성, 흑인, 아시아, 생태 신학 등), 타종교, 타문화 등과 대화하면서 신학적 성찰을 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길교회는 창립 때부터 교회 중심의 폐쇄적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중심의 개방적 선교를 지향했고, 역사 속에 구현하고 사건화해야 하는 실천적 신학이라는 길 선생님 말씀에 의지하여 왔습니다.

 

이제 2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새길 안에서는 길 선생님의 오묘한 신학과 신앙에 대한 가르침에 더욱 목말라하는 이들이 많고, 그 선량한 모습에의 그리움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길 선생님 정말 그립다, 만나 뵙고 싶다. 길 선생님 책 읽기 모임이라도 하자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길 선생님에게도 새길에게도 가장 절정기라 할 새길의 청담동 시절, 이분의 오묘한 신학과 신앙의 가르침에 매료되어 새길을 찾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크지 않은 강당이었지만 강당 입구까지 사람들이 들어차기도 하였습니다. ‘불교와 기독교 관계강좌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2000년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을 창립하고 초대 원장을 하시면서 새길의 신학과 실천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셨습니다.

 

당시 길 선생님이 함께 제시한 새길 신앙과 신학에 끌려 새길교인이 된 한 젊은이, 바로 조금 전 독창을 한 김두현 형제는 2004년 그의 결혼 때에 길 선생님이 주례를 서 주셨답니다. 그때 3가지 약속을 요청하셨는데, 1) 서로 사랑할 것, 2) 서로에게 존댓말을 쓸 것 3) 꼭 새길교회를 다닐 것이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약속은 선생님 평소 이미지와는 달라 보였지만, ‘, 선생님 매우 인간적이시다라고 느꼈답니다. 지금까지 그 부탁대로 잘살고 있고 길 선생님 요청이 가정의 기반이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이 부부는 성가대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고 두현 형제는 새길 운영위원회 총무까지 맡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길선생님은 신학과 철학을 연구하셨는데도 깊은 신앙적 체험을 한 그리스도인이셨다. 학문 탐구에 열정적이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대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셨던 분.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는 추모의 마음을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 길 선생님의 신학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연구하여 길 선생님의 신학을 확장시키는 연구자, 김환석 형제도 새길 안에 있습니다. 이러고 보니 어떤 모양으로든 새길 안에 길 선생님은 늘 함께 존재하고 계심을 알 수 있고 그래서 그리움이 안타깝게 퍼져 내리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추모사 제목을 그 다정함에의 그리움이라 한 것은 길 선생님의 다정하심에 대한 제 경험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10여년 전 제 아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큰 수술을 하였고 고맙게도 잘 회복되어 지금은 잘살고 있습니다. 그때 새길 자매형제들이 여러모로 따뜻한 위로와 힘을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저는 가장 깊은 정으로, 가장 따뜻한 마음으로 가장 진정성 가득함으로 길 선생님으로부터 건네온 말씀과 모습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분은 저를 만날 때마다 운승이 괜찮아요?”하며 꼭 제 아들 이름을 부르며 묻는 것입니다. 그냥 한두 번이 아니고 길 선생님 건강이 많이 나빠지시기 전까지, 그러니까 십여 년 세월 동안 저와 마주칠 때마다 운승이 괜찮아요?”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냥 뵙기엔 좀 까칠해 보이시는 선생님은 그런데 그 선한 눈빛, 염려의 마음과 사랑이 듬북 담긴 음성으로 마치 조카뻘 혈육을 염려하듯 그렇게 한결같이 물으셨습니다. 제 평생에 가장 다정한 음성이요, 새길 30여년 동안에 가장 다정함이 길 선생님의 그 물음, 그 모습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염려하고 걱정하여 안부를 묻는 것은 연민, 공감, 사랑의 마음일 것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바로 그 연민, 공감, 사랑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명이 끝난 후를 누군들 확실하게 그릴 수 있겠습니까만, 몰트만 교수가 말하듯 우리들은 두 번째 존재 방식으로 길 선생님과 만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도 바로 그런 시간입니다. ‘보이는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두 번째 존재하고 있습니다이전을 살았던 분들 삶의 모든 역사가 우리를 만들고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구원한다는 한강 작가의 해석이 연상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이라는 연결고리로 우리는 길박사님과 영원히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지니셨던 그 다정하셨던 길희성 선생님 그립습니다. 저도 다정한 사람으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우리 모두 당신을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그 좋아하시던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 즐겁게 들으시면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202597일 심도학사에서 새길 자매 최만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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