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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회원 나눔방

'죄인의 영성'

작성자신홍주|작성시간21.08.02|조회수245 목록 댓글 5

직업의 특성상 종종 '죄인'을 만날기회가 있다.

말 그대로 죄를 짓고 교도소에 수감된 죄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8년 전 쯤 만났던 한 제소자의 이야기로 시작 하려한다.

내가 알기로 그는 전직 사창가에서 자랐고 사창가 여인들을 관리하던 중 도망간 여인을 찾아 잔혹하게 살해한 죄로 수감됐다.

그리고 교도소 수감중에도 틈만 나면 교도관을 폭행하는 등의 행동으로 지속적으로 추가 형량을 받았다.

또한 스스로의 분노를 참지 못해 수시로 젓가락이나, 볼펜심, 못, 용수철, 기타 쇠붙이 등 이물질을 수십차례 취식? 했고, 이로인해 개복 수술만 20여차례가 넘게 받은 상태였다.

그가 접하는 사람과 세상은 모두 '악'이었으며, 그는 분노의 화신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수갑을 차야했고, 그래도 두명의 교도관이 상시 개호를 해야했다.

그리고, 한 교도소에서는 그를 감당하기 어려워 6개월마다 교도소를 옮겨 전국 교도소를 순회했다.

내가 그를 만났을때 그는 지속적인 자해로 인해 배에 주먹만한 구멍이 나있었고, 주먹만한 물체를 넣어 붕대로 막고 있었다. 물론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아 인공항문을 달고 있었고 매일 두 차례씩 소독을 하고 먹은 것을 빼내야 했다.

내가 그를 만날때도 그 상태에서 젓가락을 취식한 상태였고, 당시만 해도 위 내시경 시술로 빼낼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는 위내시경 시술조차 거부하고 있었다.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 양손에 수갑을 찬 상태에서 교도관과 함께 교도소에서 준비해 둔 조사실로 그가 들어왔다. 나는 교도관에게 "그의 수갑을 풀어주라"고 한후 아예 "나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교도관은 몹시 난처한 듯 거부했지만, 결국 나의 거듭된 요구에 수갑을 풀고 둘 만의 자리가 마련됐다.

그리고 꽤 오랬동안 그와 진지한 대화를 했다.

기나긴 대화의 과정에서 나의 진심이 와 닿았는지 그의 눈에 눈물이 맻히기도 했고, 대화를 마치고 내게 몇차례 '고맙다다'는 인사를 했다.

돌아오는 길 교도소에 그의 속 옷 몇 개와 음료수 등 몇가지 생필품을 영치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에서 생각치도 못했던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00교도소에 수감중인 19**번 김00이라 합니다"

라는 글로 시작된 편지내용을 요약하면 "조사를 마치고 가시면서 저에게 필요한 여러가지를 사놓고 가셨고 다음날 아침 그 선물을 받았을때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저에게 마음을 써주시는 분이 계시구나 하고요", "저는 매일 부처님께 기도합니다. 신00조사관께서 매일매일 좋은 일만 생기도록 해 달라구요. 저에게 어떠한 금붙이 보다 제 심경의 변화를 주신 분이기때문입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받은 이후 나는 다시 답장을 했고, 그가 불교인이라 혜민스님의 책과 몇가지 불교서적을 보내주기도 했다.

당시 내가 쓴 답장 중심내용은 아함경에 나오는 "맹구우목"이라는 글귀였다.

'눈 먼 거북이가 바다속에서 100년만에 한 번 나오는데 그때 바다위에 있는 구멍뚤린 나무를 만나 머리가 그 구멍으로 들어가야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애기하며  인간은 그렇게 귀중한 존재이니, 더이상 자신을 학대하지 말라.. 뭐 그런내용이었다.

 

장황하게 글을 쓴 이유는 끊임없는 분노로 타인을 해하고 자신을 해하는 괴물같은 그에게도 그의 깊은 내면엔 불성이 있고 자비가 있었고, 연민과 사랑이 있듯이, 죄인과 성인, 성과 속, 선과 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같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그와는 달리 정의롭고, 선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역시 잘못이다.

고통스럽고 두려운 경험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 악함의 가장 밑바닥까지 가 본 경험이 있다.

사도 바울도 스스로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듯이 자신에게 있는 악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자신은 선한사람, 정의로운 사람 이라는 바리새파적인 의식을 갖고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함을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간음한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지기도 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선함을 감사하는 바리새인의 기도와, 감히 하늘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세리의 기도를 통해 죄인의 영성을 가르치신다.

바리새인의 기도에서는 철저히 성과속, 선과악,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고 판단한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무엇을 구분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인이니까 그 무엇을 구분하고 판단할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만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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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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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심도학사 | 작성시간 21.08.02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신홍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8.03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홍학기 | 작성시간 21.08.06 좋은 말씀 아주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신홍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8.06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찬규 | 작성시간 21.09.26 어떠한지식보다도 가슴에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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