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버님과 마지막 수련/김자영

작성자靑山 /임흥윤|작성시간25.01.28|조회수111 목록 댓글 0

  참아버님과의 마지막 40일 수련

                                        김자영

 

  2010년 9월 6일부터 10월 15일까지 제51차 해양지도자 수련이 여수 청해가든에서 있었다. 그때 나는 수지침 학술강사로 본 학회 강의와 상담을 하고 있었고, 수지침학회와 복지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기에 참여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참부모님을 모시고 수련을 받는다는 것은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용솟음쳤다. 그래서 내 대신 강의해 줄 강사를 찾아 부탁하고 그날 출발하려고 하였으나 여성연합 중랑구대회가 구민회관에서 열리는데 인원동원을 해야 했다. 또 수지침 학술대회가 있는데 빠질 수 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두 가지 다 참여하고 일주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아침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여천역에 도착하여 장릉마을을 찾아가니 밤이 되었다. 명자 동생이 마중을 나와 주어 수련소를 쉽게 찾아갈 수 가 있었다.

  여수 해양수련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하다는 여수시 화양면 장수리에 위치해 있다. 뒤에는 해발 373m가 되는 봉화산이 있고, 앞에는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이 즐비해 있어 마치 암닭이 명아리를 품고 있는 듯 한 바닷가여서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아늑한 보금자리와 같았다. 

  바다에 가장 가까운 앞 건물 2층이 부모님이 계시며 강의실이 있고, 그 뒤로 여러 개의 숙소가 마련되어 수련생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아버님이 부르시면 그곳으로 달려가 말씀을 듣는다.

  내가 수련소에 도착하던 날 밤 아버님께서 동생과 함께 노래를 부르라고 하셨다.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라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아버님 좋아하시는 초창기 계몽 나가서 가르쳤던 “빛나는 대한”을 불렀다.

 

   “딩동 댕동 보슬비는 단비를 주고

    철석 철석 치는 파도 집터를 닦네

    둥실 둥실 밝은 달은 길을 밝히고 

    송이 송이 눈송이는 힘을 주 누나

    빛나는 대한, 빛나는 대한

    아름다운 강산이라 얼싸 좋구나.”

 

  부르고 나니 아버님께서 “자매가 함께 다니면 참 좋은 거다.”라고 하시며 축복해 주시었다.

   내가 도착한 셋째 날, 8명을 심지를 뽑아 아버님의 헬기를 타고 천정궁에 갔다가 다음 날 오는 은사를 베풀어 주셨다. 36가정 강정원, 박영숙 언니가 뽑히고 72가정에서는 여귀주 씨 등이 뽑혀 헬기타고 가는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다. 

   수련에 첨석 한지 4일째 되는 날 낚시 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하는데 내가 제일 큰 물고기를 잡았다. 40Cm가 되는 감성돔이다. 낚시라고는 2004년 허드슨 강에 가서 처음으로 해본 경험이 있지만 서툴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물고기가 내 낚시를 물어주어 나를 기쁘게 해 주신 하늘부모님의 은총이라고 감사드렸다. 

  새벽 훈독회를 하고 난 후나 저녁식사 후에는 간증을 시켰다. 72가정 최도순씨와 36가정 정대화, 김기영 언니가 간증을 하고 난 후 72가정 양로원을 하고 있는 전선자씨가 간증을 하였다. 그 다음날 또 전선자씨에게 간증을 나와서 하라고 하니 어느 식구가 “그 사람의 간증은 어제 들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여러 사람이 합창을 하듯 “들었어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버님께서 큰 소리로 “내가 또 들으려고 한다.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 다 나가라.” 호통을 치셔서 밖으로 쫒겨 났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를 무릎을 꿇고 빌고 난 후에야 들어가 간증을 계속해서 들었다.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것을 처음 본 식구들은 안절부절 했던 그때의 일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전선자씨는 초창기 아버님께서 이름을 물어 전선자입니다. 라고 하니 “앞으로 자선사업을 많이 해야겠구나.”라고 하셔서 머릿속에서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가 전 재산을 털어 양로원을 짓고 경기도 반월에 양로원을 차린 것이다.

  아버님께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네가 하고 있구나, 양로원을 짓는데 얼마나 모자라느냐.”라고 물었을 때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었다. 그때 또 한 층을 증축 하려면 5억이 들어가야 하는데 아버님께서는 “양로원 지을 때 모자라는 5억을 보내주셔서 어떻게 그만큼 모자라는 것을 아시고 보내주셨을까? 아버님은 신이셔” 라고 하였다.

  아버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전선자씨의 간증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두 번이나 시켰는데 듣지 않으려 하니 화를 내신 것이라고 느꼈다

  하루는 에리까와씨의 섭리의 방향에 대한 강의, 오후에는 후르다 사장의 강의, 밤에는 이노우에 켑틴의 간증을 듣고 아버님 말씀으로 하루가 지나갔다.

  하루는 새벽 훈독으로 시작하여 아버님은 하루 온 낮과 밤을 식사도 거르시고 화장실도 가시지 않고 말씀을 하셨다. 이 땅에 오셔서 해주시고 싶으신 말씀이 행여 다 전달되지 못 할 가봐 그러시는 듯하였다.

   축복 준비로 매칭하러 서울을 다녀오셔서 곧 바로 바다에 또 나가셨다. 

  아버님이 바다로 나가시거나 들어오실 때는 우리는 두 줄로 서서 ‘뱃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배웅을 하러 나갔다. 우리도 뒤따라 낚시 배를 타고 고기 잡으러 나갔다 돌아온다. 어느 날은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고 어느 날은 갯벌 낚시를 했다.  

  선상낚시를 하러 갈 때 멀미하는 사람이 많아서 내가 수지침을 놓아 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소화 장애가 있는 사람, 감기로 열과 기침이 심하여 고생하는 사람, 설사하는 사람이 효과를 보게 되니 수지침을 가르쳐 달라고 하여 바쁜 시간임에도 틈을 내어 일본식구들을 위해 통역을 하며 저녁에 강의해 주었다. 

  아버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황선조 회장이 와서 해양섭리 강의를 해 주었고, 유정옥 회장이 본체론 강의를 해 주었다.

  수련기간 중이라 추석날이 되어 가족과 함께 조상제사는 못 드렸지만 수련생 자매들이 함께 즐겁게 보냈다. 윷놀이를 하였는데 1등은 30,000원 2등은 20,000원 3등은 10,000원 씩 모두에게 상을 주셨다.

  

  참부모님께서는 “21세기는 해양에서 인류의 삶을 개척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식량문제와 자연고갈의 한계 때문에 바다를 개척해야 해결된다. 내가 바다에 나가 정성들이는 것은 해양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또 폭풍 속에서도 가라앉지 않는 배를 만들도록 하시고, 여성들도 배를 운전하는 자격증을 따라고 지시하셨다. 

  고찬윤씨의 배 만드는 보고를 들으시며 “석고 보도로 썩지 않고 가라앉지 않는 배를 만들라고 지시하시면서 내년에 낚시 대회를 중국에서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참부모님께서는 미국에 다녀오셨는데 2010년 10월 1일로서 라스베이거스 섭리를 완성하고 오셨다고 하셨다. 곧 바로 바다에 나가셨는데 최고 큰 고기를 16마리를 잡으셔서 수련생들에게 생선을 실컷 먹여 주셨다. 밤에는 초저녁부터 새벽 늦게까지 말씀하시고 주무실 시간도 없이 소파에 기대어 계셨다가 다음날 새벽 5시에 훈독하시고 11시에 바다에 나가셔서 농어 9마리를 잡아 돌아 오셨다.

  저녁 식사 후 강당에 모였다. 참아버님 앉으신 의자 아래 가까이 내가 앉아 있었다. 아버님께서 바지를 무릎 위로 올리시고 긁으셨다. 계속 긁으시니 빨갛게 되셨다. “서암 크림을 발라주면 가려움증이 없어지는데 집에서 가지고 오지 못했네.” 라고 하니 옆에 있던 이경준 선문대 총장이 내 방에 있으니 가져오라고 하였다. 살짝 뒤로 나가 서암 크림을 가져와 이 총장에게 드렸다. 이 총장이 슬그머니 아버님 앞으로 밀어놓으니 “네~끼”라고 나무랬다. 이 총장은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다. 나도 아버님 앞에서는 입을 열지 못하고 말았다.   

  다리가 많이 부으셔서 아버님 모시는 연실씨에게 아버님의 다리가 혈액순환이 안 되어 많이 부으셨으니 새끼손가락 끝을 따 드리라고 침과 출혈침관을 주었다. 그런데 아버님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쉬는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 하였다고 하여 안타까웠다. 2년 후 아버님이 성화하신 다음에서야 그 때 용감하게 내가 “이거 바르면 가려움이 없어져요.”라고 설명을 하고 직접 발라드리지 못한 것과 “수지침을 맞으면 혈액순환이 잘되어 부기가 빠지고 통증도 없어집니다.”라고 말하고 직접 해 드리지 못 한 것을 후회하며 하늘 앞에 용서를 빌었다. 

 

  수련이 끝날 무렵 우리는 거문도에 천정궁을 지을 부지를 돌아보고 오기 위해 배를 타고 출발했다. 남해바다 수많은 섬들을 헤치고 백도를 지나가는데 천혜의 절경이었다. 백도는 천연기념물이라 손상되지 않도록 보존키 위해 배가 가까이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어 먼 거리에서만 관람하였다.

  거문도에 도착하여 천정궁 지을 자리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수련소에 돌아왔다. 40일이 되던 날 수료식을 마치고 아버님은 청평평화월드센타 상냥식 때문에 상경하셨다. 나는 일주일 늦게 왔기 때문에 7일을 더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련 기간 내내 아버님은 식사도 거르시고 잠도 한번 편안히 주무시지 못하신 체, 쉴 세 없이 서울로 미국으로 다니시며 말씀해주시고 바다로 나가 정성을 드리셨다. 쇳덩이가 아니고서야 어찌 온전할 수 있으리오? 

  2012년 천력 7월 17일, 참아버님께서 지상에서는 영영 만날 수 없는 천상세계로 떠나셨기에 아버님과 함께한 마지막 수련이 되었던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