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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필방

나는 아직도 가슴 떨림으로 살고 있다.

작성자시몬|작성시간26.06.09|조회수20 목록 댓글 0

나는 아직도 가슴 떨림으로 살고 있다

 

                                                                                                                                                        손중하

 

지난 몇 년 동안 내 삶에 가장 달콤한 일탈이 있었다면 그것은 단연 차박 섬 여행과 전국 5일장 먹거리 유람일 것이다. 거창한 계획 없이 텃밭에서 일하다가 마음이 섬에 가 있으면 섬으로, 5일 장터에 가 있으면 장터로 호밋자루 내 던지고 그저 차 한 대에 몸을 싣고 떠난 길 위에서, 나는 인생의 또 다른 아늑한 재미를 엮어 낸다.

파도 소리를 베개 삼는 차박 섬 여행은 생각보다 매력적인 여행이다. 뒷좌석을 평탄하게 접고 누워 바라보는 창밖 풍경이 어느 사이에 콘도나 호텔보다 편해졌다.

다리가 놓여 있는 육지가 된 섬도 좋고, 배에 차를 싣고 들어가는 외딴섬도 좋다. 차가 멈추는 그곳이 곧 나의 안방이자 앞 마당이 되고 커다란 정원이 되기도 한다. 해 질 무렵 붉게 물든 바다를 바라보며 끓이는 라면 한 그릇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호화롭다. 밤이 깊어지면 차창 위로 투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나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소리는 완벽한 자장가가 되어준다. 문을 열면 곧바로 마주하는 아침 바다의 푸른 숨결은 오직 차박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온전한 특권이다.

 

섬을 나와 육지의 가쁜 숨을 고를 때쯤 찾아가는 곳은 전국의 5일 장터다. 장날에 맞추어 찾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설랜다. 장터 입구에서부터 코를 찌르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잠자던 오감을 단숨에 일깨워 준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갓 건져낸 통닭 한 마리, 혹은 뚝배기 넘치게 담아주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면 길 위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도톰하게 구워낸 호떡과 설탕을 아낌없이 묻힌 꽈배기를 입에 물고 장터 구석구석을 거니는 재미는 빼놓을 수 없는 나만의 낭만이다.

멀리서 왔는가 본데 이것 좀 더 먹어봐요하며 슬쩍 얹어 주시는 장터 아줌마들의 투박한 덤 속에는 계산기 두드리는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따뜻한 정이 들어 있있다.

 

내일이면 또 다른 일정으로 길을 떠난다. 이 여정은 단순히 먹고 즐기는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여백을 채우고 또 다른 여백을 만드는 과정이다. 차가운 자동차 철판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대자연의 품에서 잠드는 밤, 그리고 낯선 장터에서 만난 이웃들의 활기찬 웃음소리, 이 모든 것들이 내 삶에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내 인생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섬, 어떤 장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낡은 배낭과 차 키를 만지작거리는 지금, 이 순간도 내 마음은 이미 이름 모를 장터에 가 있거나 갈매기 떼 그리고 별빛이 쏟아지는 어느 이름 모를 섬에서 몇 달 전에 배운 기타 선율로 섬집아기를 연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80대의 노장은 가슴 떨림으로 살아간다. 떨림의 가슴속에는 늘 섬 하나가 들어있다.

 

내 안에 있는 섬

비췻빛 바다가 감싸 안은 곳

세상의 소음이 파도에 씻겨가고

오직 바람의 잔잔한 숨소리만

초록빛 언덕을 넘나드는 섬.

아침이면 은빛 윤슬이 잔잔히 깨어나

해안선 따라 하얀 포말을 수놓고

오래된 바위는 묵묵히 서서

시간이 멈춘 듯한 바다를 지킨다.

낮은 돌담 사이로 피어난 들꽃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가볍게 춤을 추고

해 질 무렵 하늘이 붉은 고래가 되어

바다 품으로 아늑하게 가라앉을 때

섬은 스스로 외로운 보석이 되어

밤하늘의 별들을 마중 나간다.

그곳에 서면

마음속 밀물과 썰물도 고요해져

마침내 나조차 하나의 섬이 된다.

 

섬은 멀리 있지 않고 늘 내 작은 방 한구석에 그리움으로 와서 눕는다. 잠시 머물다가는 나그네에게 가슴 떨림과 눈부신 고독을 선물해 주어서 고맙다.

 

내일 도착지는 어디가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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