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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 이토록아름다웠음을..(2015)

작성자성민이a|작성시간26.06.21|조회수17 목록 댓글 0

  인순이 - 이토록아름다웠음을..(2015)  

  https://youtu.be/7fQxUxQrdoc?si=8dw5H_7h1HTYPBzO

 ★ 인순이 - 이토록아름다웠음을..(2015) 
  (김유경 作詞 / 오준성 作編曲 오승은 編曲)  


 아득히 머나먼 길을 걸어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든 
 그 어디쯤 오니 

 그렇게 그대가 서 있네요 
 세월의 가시에 찢겨버린 
 내 영혼을 비춰주는 
 어느 봄날의 햇살처럼 

 수많은 인연에 
 그리 대단치도 않은 
 그런 나의 손을 잡아준 
 그댄 운명이 되고 

 꽃피고 또 지는 
 수많은 나날들 속에 
 내가 살아갈 그 이유가 
 된 한 사람 

 한 줄기 바람이 아련하게 
 봄을 잊은 나의 가슴속에 
 설렘 하나 놓아두니 
 끝내 사랑은 피었네요 

 (육지담) 
 외로운 들국화 한 송이 
 따스한 그대 바람결에 나부끼니 
 그늘진 어느 서러운 그 인생에 
 봄을 데려온 나비가 입을 맞춘 듯 
 아름답네 향기로 겹겹이 물들어 
 눈물 나도록 아름답게 흔들리네 
 숨이 차도록 아픈 그때는 
 한때로 흘러가길 기도를 해 

 (인순이) 
 수많은 인연에 
 그리 대단치도 않은 
 그런 나의 손을 잡아준 
 그댄 운명이 되고 

 꽃피고 또 지는 
 수많은 나날들 속에 
 내가 살아갈 그 이유가 
 된 한 사람 

 인생의 길모퉁이를 돌아 
 이 세상 끝과 마주했을 때 
 눈물로 기억하겠죠 
 이토록 아름다웠음을 

 (육지담) 
 그대가 있어 한 송이 꽃이 되고 
 그림자 내린 영혼은 내 빛이 되고 
 그대가 있어 영롱한 삶이 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은 시가 되네 
 어쩌면 덧없이 사라질 인생일지라도 
  나 몰래 말없이 돌아설 사랑이라도 
 오늘도 어느 봄날처럼 
 그렇게 꽃이 피었네 또. 

   거위의 꿈(작사 이 적, 작곡 김동률)은, 

 1997년도에 발매한 '이적'과 '김동률'의 프로젝트 그룹인 "카니발"의 곡이 원곡이지만, 

 인순이,가 2005년 '리메이크'하여 다시 불렀고, 이때 대박 히트를 치면서 그런 이유로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이 원곡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이 곡은 오랫동안 ,인순이,의 애창곡이었다고 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 그녀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던 친구와 같은 노래" 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또 누군가 힘겹게 꿈을 지켜가는 사람들을 위해, 꿈을 잃어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가수 데뷔 30주년을 맞은, 인순이,가 30주년 

 콘서트 엔딩곡 으로 ,거위의 꿈,을 불렀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2007년 디지털 싱글로 

 발매되어 열정의 디바(Diva)인 그녀가 "꿈의 전도사"로 나섭니다. 

 특히 이 앨범은 팬들의 요청에 의해 기획된 음반이기때문에 더욱 뜻 깊습니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은 '윤도현의 러브레터' 등 에서 불려졌고, 특히 2006 KBS 가요 
 대 축제에서 '이 루', '세븐', '이승기', '영웅재중'과 함께 불러 더욱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방송 이후에도 각종 UCC(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저작물) 사이트에 올려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우리 모두의 꿈과 희망에 대한 노랫말로 보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2007년에는 당시 대한민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원더걸스'의 "Tell Me"를 
 이기고 ,거위의 꿈, 으로 뮤직 뱅크 에서 1위를 차지 하기도 하였습니다. 

 본명 ; 김인순 (金仁順, Kim Insoon)  
 출생 ; 1957년 4월 5일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백의리(現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백의리) 
 신체 ; 163cm, 50kg, B형 
 가족 ; 배우자 박경배, 딸 박세인 
 학력 ; 연천청산중학교 (졸업)[7] 
 종교 ; 천주교(세례명: 세실리아) 
 소속사 ; 휴맵컨텐츠 
 데뷔 ; 1978년 희자매 1집 앨범 <희자매> 
 경력 ; 해밀학교 이사장 (2013년 ~ 현재 


 1978년 3인조 걸그룹 희자매로 데뷔하고 
 1981년부터 솔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히트곡 없는 국민가수'라는 평이 있고, 인지도나 위상, 가창력치고는 본인만의 오리지널 

 히트곡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친구여>는 조PD의 곡에 피처링한 거고, <거위의 꿈>은 

 카니발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에게 기억될 정도의 

 곡이 적은 것일 뿐,세자매 시절에도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실버들>, 윤종신이 리메이크해 

 더욱 알려진 김형석의 데뷔작인 발라드<이별연습>, 90년대에 박진영과 협업한 <또> 등은 

 상당한 인기를 얻은 히트곡이다.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로 <아버지> 역시 뒤늦게 상당한 히트곡이 되었다. 
 어쨌든 스탠더드에 가까워진 <밤이면 밤마다>가 있기 때문에 범국민적인 히트곡은 
 아니라고 해도, 본인만의 히트곡이 없다고 볼 순 없다. 

 인순이는 흑인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혼혈 한국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국에서 인순이가 태어나고 나 몰라라 식으로 대처하고 떠났기 때문에 

 인순이는 아버지를 본 적도 없다고 한다 12살 때 미국에 있는 아버지로 부터 미국행을 제안 

 받았지만 혼자 남을 어머니를 생각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몇번 편지를 주고 받은 적이 있지만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고 한다. 
 기사 당시 홀어머니 혼자 키우는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했으며 인순이는 

 힘겹게 중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아졌지만 아직도 혼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한데, 196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혼혈, 그것도 흑인 혼혈이고, 아버지가 없는 미혼모의 딸 (인순이)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매우 좋지 않았다. 어릴 적 뿐만 아니라 가수로 성공한 후에도 이러한 차별은 은연중 

 따라다녔다. 결국 이는 인순이의 인생에 큰 상처로 남게 되었다. 

 익히 알려진 사실 중 하나지만 인순이가 과거 1970년대 희자매로 활동하던 시절 흑인 혼혈 

 특유의 곱슬머리를 가리기 위해 방송에 나올 때에 머리에 천을 둘러야 했다. 

 인순이는 자신이 어느 사회에도 100%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고 평생을 살았으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 매우 오랫동안 정체성 혼란에 시달렸다고 하였다. 
 기사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에서 자신의 고향은 한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바다 즉 태평양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에는 자신은 당연히 한국인 이며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혼혈로 자라면서 굉장히 힘든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다음 혼혈 세대들은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강원도 홍천군에 다문화 대안학교인 해밀학교를 세웠다. 

 대한민국 교육부에게 정식 인가받은 중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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