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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 밤이면 밤마다.(1984)

작성자성민이a|작성시간26.06.21|조회수18 목록 댓글 0

   인순이 - 밤이면 밤마다.(1984).  

 https://youtu.be/RvfiuLlSJEI?si=ViUuif5jexu5TK69 

★ 인순이 - 밤이면 밤마다.(1984) 
   (김정택, 작사 / 김정택, 작곡 김정택, 편곡)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님모습 떠올리긴 싫어 
 희미한 전등불 밑에서 내 모습 초라한 것 같아 싫어 
 정답게 지저귀는 저새들 내 맘 알까 몰라 

 멀리 떠나간 내 님은 혹시 날 잊어버렸나 
 잊지 말자고 해놓고 예 
 내마음 전해줄 비둘기 어디서 날아와 준다면 
 예쁜 종이 접어 내님께 이 마음 알려드릴텐데 어쩌나 
 휘영청 밝은 달도 내 마음 모를거야 몰라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님모습 떠올리긴 싫어 
 희미한 전등불 밑에서 내 모습 초라한 것 같아 싫어 
 정답게 지저귀는 철새들 내 맘 알까 몰라 

 멀리 떠나간 내 님은 혹시 날 잊어버렸나 
 잊지 말자고 해놓고 예 
 내마음 전해줄 비둘기 어디서 날아와 준다면 
 예쁜 종이 접어 내님께 이 마음 알려드릴텐데 어쩌나 
 휘영청 밝은 달도 내 마음 모를거야 몰라 
 휘영청 밝은 달도 내 마음 모를거야 몰라. 

 1983년 발표한 '밤이면 밤마다'라는 노래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여성 솔로 가수로서는 드물게 히트한 이 노래는 인순이의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가사 내용을 보면 밤마다 연인을 그리워하며 외로움을 호소하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이는 당시 여성들의 공감대를 형성했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목소리가 이를 돋보이게 
 했습니다. 다만 이 노래는 표절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곡은 1960년대 아메리칸 팝 곡인 'Little Honda'였다고 하는데, 멜로디와 편곡 
 구성이 거의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문제가 크게 부각 
 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은 밤하늘을 수놓는 별과 달이 연인의 
 마음을 모른다고 표현한 부분입니다. 밤하늘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 같아서 좋아합니다. 
 '밤이면 밤마다'의 작사가 및 작곡가는 김정택 님입니다. 장서영 님이 부른 
 밤이면 밤마다를 들어보겠습니다. 

 본명 ; 김인순 (金仁順, Kim Insoon) 
 출생 ; 1957년 4월 5일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백의리(現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백의리) 
 신체 ; 163cm, 50kg, B형 
 가족 ; 배우자 박경배, 딸 박세인 
 학력 ; 연천청산중학교 (졸업)[7] 
 종교 ; 천주교(세례명: 세실리아) 
 소속사 ; 휴맵컨텐츠 
 데뷔 ; 1978년 희자매 1집 앨범 <희자매> 
 경력 ; 해밀학교 이사장 (2013년 ~ 현재 


 1978년 3인조 걸그룹 희자매로 데뷔하고 
 1981년부터 솔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히트곡 없는 국민가수'라는 평이 있고, 인지도나 위상, 가창력치고는 본인만의 오리지널 

 히트곡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친구여>는 조PD의 곡에 피처링한 거고, <거위의 꿈>은 

 카니발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에게 기억될 정도의 

 곡이 적은 것일 뿐,세자매 시절에도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실버들>, 윤종신이 리메이크해 

 더욱 알려진 김형석의 데뷔작인 발라드<이별연습>, 90년대에 박진영과 협업한 <또> 등은 

 상당한 인기를 얻은 히트곡이다.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로 <아버지> 역시 뒤늦게 상당한 히트곡이 되었다. 
 어쨌든 스탠더드에 가까워진 <밤이면 밤마다>가 있기 때문에 범국민적인 히트곡은 
 아니라고 해도, 본인만의 히트곡이 없다고 볼 순 없다. 

 인순이는 흑인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혼혈 한국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국에서 인순이가 태어나고 나 몰라라 식으로 대처하고 떠났기 때문에 

 인순이는 아버지를 본 적도 없다고 한다 12살 때 미국에 있는 아버지로 부터 미국행을 제안 

 받았지만 혼자 남을 어머니를 생각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몇번 편지를 주고 받은 적이 있지만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고 한다. 
 기사 당시 홀어머니 혼자 키우는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했으며 인순이는 

 힘겹게 중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아졌지만 아직도 혼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한데, 196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혼혈, 그것도 흑인 혼혈이고, 아버지가 없는 미혼모의 딸 (인순이)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매우 좋지 않았다. 어릴 적 뿐만 아니라 가수로 성공한 후에도 이러한 차별은 은연중 

 따라다녔다. 결국 이는 인순이의 인생에 큰 상처로 남게 되었다. 

 익히 알려진 사실 중 하나지만 인순이가 과거 1970년대 희자매로 활동하던 시절 흑인 혼혈 

 특유의 곱슬머리를 가리기 위해 방송에 나올 때에 머리에 천을 둘러야 했다. 

 인순이는 자신이 어느 사회에도 100%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고 평생을 살았으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 매우 오랫동안 정체성 혼란에 시달렸다고 하였다. 
 기사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에서 자신의 고향은 한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바다 즉 태평양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에는 자신은 당연히 한국인 이며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혼혈로 자라면서 굉장히 힘든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다음 혼혈 세대들은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강원도 홍천군에 다문화 대안학교인 해밀학교를 세웠다. 

 대한민국 교육부에게 정식 인가받은 중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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