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원한 본향 하나님 나라
본문 : 벧후1:10
인생은 쏜 화살과 같다고 말합니다. 코 흘리던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불혹의 나이요 환갑, 진갑을 맞이합니다. 험산 준령을 넘고 망망대해를 헤치며 사연 많은 인생 여정을 열심히 살아왔는데, 뒤돌아 보니 눈깜짝할 사이요, 한갖 물거품인 양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말처럼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시90:9)지나갑니다. 이렇게 긴 듯하지만 짧은 인생 그리고 후회해도 돌이켜 다시 살 수도 없는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꼭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와 사망의 권세가 지배하는 이 땅의 삶에 우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느냐, 아니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느냐, 아니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지느냐에 따라서 죄의 삯으로 말미암은 사망이냐, 그리그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냐(롬6:23)하는 삶의 결과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1. 이 땅에 초점을 맞춘 삶(막1:15)
1)참 만족이 없음
버나드 쇼는 삶의 두 가지 비극에 대해 말했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소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데 대한 절망이요, 둘째는 스스로 소원하는 바를 이루었어도 만족할 수 없는 절망이라 했습니다. 순간적 관점으로 볼 때, 이 땅에서의 삶은 매우 긍정적이며 영원한 행복을 추구할 만한 곳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참 만족을 줄 수는 없으며 오히려 그로 인해 우리 영혼이 잃어버린 바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자 새 곡간을 짓고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며 만족을 누리려 하였지만 하나님이 이르셨습니다. "이 어리석은 자의 영혼을 오늘 밤에 도로 찾으리라." 스스로 노력하여 소원하는 바를 이루었고 거기서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였으나 가장 중요한 그의 영혼을 잃음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주님은 이렇듯 이 땅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살다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공생애 사역 첫 음성으로 외치신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2)사망으로 귀결됨
이 땅에서의 만족만을 추구하며 사는 삶은 마치 만족이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탐닉이란 바닷물을 퍼마시는, 잃어버린 영혼인 표류자의 신세와도 같다 하겠습니다. 명예를 탐하다가 땅에 삼키워 장사된 고라(민16:32,33), 물질을 탐하다 아골 골짜기에서 돌 맞아 죽은 아간(수7:25,26), 미색에 빠져 무너진 집에 깔려 죽은 삼손(삿16:28-31)같은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의 순간적 만족을 위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영원한 축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세속사를 통해서도 로마시를 불태운 네로 황제, 나찌당을 결성한 히틀러, 사회주의 낙원을 실현하려던 스탈린 등이 바로 이 땅의 삶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실패한 대표적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고라와 같은 욕심, 아간과 같은 탐심 그리고 삼손과 같은 욕망은 없는지. 네로와 같은 패역함, 히틀러 같은 잔학함, 스탈린 같은 무모함은 없는가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초점을 맞춘 이들은 인본주의적 이기심을 버리고, 이 땅에서 유토피아를 구하지 않습니다.
2.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춘 삶(롬14:17)
1)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음
성도들이 이 땅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한 가지 갈등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악한 이들이 번영하고 형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권모 술수로 권력의 옥좌에 올라 세도를 부리는 이들, 거짓을 일삼아 치부하는 사기꾼들, 행악으로 기득 이권을 지키려는 이들이 오히려 번성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시92:7)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일시적으로는 형통하고 흥왕하는 것 같으나 영원한 멸망이 예배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나는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기에(롬8:18), 성도들은 악인의 일시적인 형통을 결코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2)헛된 것을 구하지 않음
신앙인이 늘 깨어있지 못할 때 헛된 것에 미혹되거나 유혹에 빠져 시험 받기 쉽습니다. 도서관이 아닌 오락실을 서성이는 학생이 모범생일 수 없습니다. 일터가 아닌 휴홍장에 자주 출입하는 사원이 유능한 일꾼일 수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 급급하며 자기의 육체만을 위하여 영원한 장자의 축복권을 포기하고 팥죽 한 그릇의 만족을 택한 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데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만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기 때문입니다(갈6:8). 에릭 프롬의 말처럼 무엇을 얼마 만큼 소유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소유양식'의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일들을 수행하며 보람되게 살아가느냐에 초점을 맞춘 '존재양식'의 삶을 살아갈 때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삶,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시고 택하신 뜻을 이루는 삶,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입는 삶이 될 것입니다.
3.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 나라(계21:1-4)
1)모든 이들에게 예비된 곳
잉태된 아기에게 생명이 시작되듯이, 정혼한 연인에게 사랑이 넘치듯이,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날입니다. 출산을 기다리는 부모가 아기의 방을 꾸미듯이, 신부를 맞이하려고 신랑이 예비하듯이, 주님께서도 처소를 예비하시고 성도들을 맞이할 준비를 이미 하셨습니다(요14:2,3). 간혹 어떤 이들은 그들의 교파나 교리에 속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교파나 교리에 얽매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특정한 숫자밖에 수용할 수 없는 협조한 장소일 리 없습니다. 칼바르트의 말처럼 교회조차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는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행2:2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요1:12).
2)들어감을 입은 성도의 은혜
실향민이 늘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하나님 나라는 성도들이 그리는 본향입니다. 성공한 이들에게 금의 환향이 큰 기쁨이듯이, 성도들이 이 땅에서 맡은 바 소명을 완수하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고전13:12),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면하였을 때 그분의 섭리 안에 있었던 모든 삶의 비밀들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눈물로 뒤범벅이던 이 땅에서의 고난, 애통함이나 아픔들마저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눈물을 씻어주시는 주님의 손길에 감사하는 은총의 조건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사모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결론
하나님 나라는 주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입어 그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입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축복의 땅이요 영원한 본향입니다. 영원한 본향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입니다(마13:4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시고 택하신 은총을 늘 기억하며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