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기(AYEGUY)
산초 가르세스 4세의 양도로
이라체 수도원에 소속된 중세 교회의 영지였던 아예기는,
근처에 에스떼야, 몬떼후라, 이라체 수도원 등이 있고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있습니다.
특히 이라체 포도주 창고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맛 좋은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는데,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한 잔의 포도주는
힘든 길을 걷는 순례자의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게 해줍니다.
까미노의 수호성인 성 베레문도(San Veremundo)는
11세기에 이라체에서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수도사가 되고 싶었으나 거절당한 후
수도원의 문지기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그는 수도원에서 나오는 빵 조각을 조금씩 모아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수도원장이 옷 속에 감춘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어린 베레문도는 약간의 빵 조각이라고 대답했는데,
그가 그 빵 조각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때마다
빵 조각이 커져서 나왔다고 합니다.
성 베레문도는 순례자를 돕고
흑사병을 퇴치하기 위해서 힘썼다는 내용이 많이 전해집니다.
성 베레문도는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산 후안 데 오르떼가(San Juan de Ortega)와 함께
순례자를 위해 헌신했던 동시대의 3대 까미노 성인 중 하나입니다.
그들 덕에 순례자가 지나는 까미노 데 산띠아고가 많이 좋아졌다고 전해집니다.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
포도주의 샘 (Fuente del Vino)
수도원을 나오다 보면 까미노에서 가장 특이한 수도꼭지가 나옵니다.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는데 한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보통 수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수도꼭지에서는 포도주가 나옵니다.
까미노를 대표하는 이 수도꼭지는
보데가스 이라체라는 포도주 제조업체가 만들었습니다.
순례자여!
산띠아고에 힘과 활기를 가지고 도달하고 싶은 이에게
여기 있는 포도주 한 모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라체의 샘 / 포도주의 샘
아스께따는 ,
평온함과 조용함을 느낄 수 있고 로끼스 산, 우르바사 산, 몬떼후라 산,
몬하르딘 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스께따와 인접해있는 푸엔떼 데 라 뻬냐(Fuente de La Pena)에는
치유의 효과가 있는 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스께따에서 순례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친절한 빠블리또(Pablito) 할아버지와 대화를 해보는 것입니다.
그는 순례자들에게 손수 만든 개암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선물해줍니다.
산 뻬드로 아뽀스똘 성당
(Iglesia de San Pedro Apostol)
산 뻬드로 아뽀스똘 성당은 13세기에 만들어진 중세의 성당 건물을
16세기에 후기 고딕 양식으로 바꾸어 재건축 했습니다.
▲ 무어인의 샘 (Fuente de los Moros)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으로 들어오기 전
까미노 위에 있는 13세기 풍의 고딕양식으로 만들어진 샘입니다.
많은 순례자들이 마을로 들어서기 전 이 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은,
몬하르딘 산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조용한 마을이며
산 에스떼반 성의 폐허가 남아 있습니다.
나바라의 산초 가르세스 1세가 이 성을 점령했었으나
이슬람의 왕 바누 까시에게 빼앗겼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에브로 강의 비옥한 분지를 차지하기 위한
레콩키스타가 시작되었습니다.
십자가의 팔과 양치기 팔의 전설
산 에스떼반 성에서 이슬람인들을 정복했던 전투가 일어났던 날 새벽,
나바라의 왕 산초 가르세스 1세에게 아름다운 십자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왕은 전투가 어떻게 될지 확신이 없었고
혹시 이슬람교도들이 십자가를 빼앗길까 봐 십자가를 숨겨놓았는데,
전투가 끝난 후 왕은 십자가를 다시 찾지 못했습니다.
십자가는 그 후 한 목동이 염소가 가시나무 앞에서 멈춰 서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까지 잊혀 있었습니다.
목동은 해로운 짐승이 숨어 있는 줄 알고 가시나무를 향해 있는 힘껏 돌을 던졌는데
자기가 던진 돌에 아름다운 십자가의 한쪽 팔이 부서진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동이 절규하며 “십자가에 돌을 던지기 전에
제 팔을 말라붙게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라고 하자,
목동의 팔이 말라붙어버렸다고 합니다.
그 후 십자가를 다른 장소로 옮겼으나
십자가는 계속해서 처음의 가시나무 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불리는 비야마요르 성당을 짓게 되었고
신앙심 돈독한 목동의 팔은 회복되었습니다.
샤를마뉴와 죽은 기사들의 전설
나바로의 장군 푸레가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샤를마뉴는
하느님께 부하 중 누가 죽게 될 것인가를 알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은 하느님이 샤를마뉴의 기사 150명의 갑옷에
빨간 십자가를 표시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샤를마뉴는 이 기사들을 쉬게 하고
다른 기사들과 푸레를 물리치고 돌아왔으나
이미 그 150명의 기사들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산 안드레스 사도 성당
(Iglesia de San Andres Apostol)
산 안드레스 사도 성당은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신랑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반원형 후진이 있습니다.
거대한 탑은 18세기의 바로크 양식입니다.
성당 안에는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행진용 대형 십자가가
은으로 싸인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나바라의 로마네스크 양식 금은 세공 작품 중 가장 가치 있는 작품입니다.
몬하르딘 성 (Castillo de Monjardín)
9세기에 지어진 몬하르딘 성은 10세기엔 데이오 빰쁠로나 왕조의 요새로
10세기에 산초 가르세스가 이슬람교도를 물리친 요새입니다.
산 에스떼반 데 데이오 성(Castillo San Esteban de Deyo)으로도 부르는 이 성은
14세기에 보수되었으며 현재도 복원 작업이 한창입니다.
로스 아르꼬스
조그만 농업 도시입니다.
옛날부터 까스띠야와 나바라 왕국의 국경에 위치한 도시로
현명왕 산초가 발데곤 전투 후에 로스 아르꼬스를 건설했습니다.
왕은 마을 사람들의 용기를 치하하여 활이 그려진 그림을 하사하며
이 마을을 아르꼬스(Arcos; 활 모양의)라고 불렀습니다.
까스띠야 문 (Puerta de Castilla)
산따 마리아 성당 옆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까스띠야 문은 17세기에 만들어졌고
1739년 펠리페 5세에 의해 보수되었습니다.
로스 아르꼬스를 나설때는 이 문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문을 나서 작은 다리를 건너면 알베르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산따 마리아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
외부에는 거대한 쿠폴라와 16세기 중반에 세워진 아름다운 르네상스 풍의 탑이 있습니다.
팔각형의 이 탑은 산띠아고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가장 높으면서 가장 아름다운 탑 중 하나입니다.
일 년에 한 번 볕을 쬐는 성모상
산따 마리아 성당의 아름다운 복도 한가운데에는 그늘에서 보관중인 성모상이 있습니다.
이 성모상은 6월 15일에만 햇빛에 내놓는다고 하는데,
이러한 전통은 산 후안 데 오르떼가의 수태고지 주두와 유사합니다.
스페인은 시에스타라고 1시부터 4시정도
가장 뜨거운 시간 낮잠 자는 시간이 있어
상점이나 거리엔 사람이 없다.
상점도 문을 닫음.
숙소에도 그 시간엔 침대에 누워 있다.
나만 텅 빈 거리를 활보하지.
그들은 4시부터 활동하여 저녁 늦게까지 즐긴다.
시에스타는 게으름의 상징이 아니라
정말 햇볕이 뜨거워서 활동을 못 하는 것임.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
습도가 낮아서 그런 것.
한낮 그늘에서 잠자는 모습은 흔하다
하루 중 유일한 식사 맛있게 먹고 샤워하고 좀 쉬었다 마을구경 예정
과일 3개와 빵 그리고 맥주 2캔 구입.
저녁은 맥주 육포 정도하고 내일아침은 나머지로 할 예정
라라소냐 숙소가 가장 열악
1층과 2층 침대 공간이 너무 좁아 기어들어야 함
여러 번 모서리에 부딪침
더구나 2층 침대 밑이 철사로 되어 무서움
위에서 뒤척일 때마다 중간이 꺼져 바로 눈앞이 철망이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