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6.11)
바르나바 성인은 키프로스의 레위 지파 출신이다.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본디 이름은 요셉이며(사도 4,36 참조)
마르코 성인의 사촌(콜로 4,10 참조)이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칭송받는 바르나바 사도는
유다교에서 개종한 뒤 자신의 재산을 팔아 초대 교회 공동체에 바치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선교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인은 60년 무렵 키프로스의 살라미스에서 순교하였다.
율법을 완성하시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구약의 가르침을 더욱 적극적인 차원에서 지킬 것을 가르치신다.
곧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모욕을 하는 행위 또한
그를 살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복음).
십계명 가운데 제5계명은 ‘사람을 죽이지 마라.’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굳이 목숨을 끊지는 않더라도, 말이나 행동으로
특정한 사람을 죽음보다 더 모진 쪽으로 몰고 갈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세례 받지 않고 성당에 다니지 않으면
아무런 이해관계나 애증의 관계에 놓이지 않을 사람들이,
성체를 모시고 한 형제자매로 여기면서도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럴 때마다 참으로 서글프기 짝이 없습니다.
신앙 공동체는 서로 사랑하며 살자는 사람들의 모임 한가운데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도 주님마저 멀리하면서 서로 성내고 미워하며,
미친놈이라고 욕을 하거나, 주먹다짐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1코린 13,5)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사랑이신 주님을 닮아 사랑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는 사람은
먼저 분노를 버리고 형제와 화해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곧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제단에 예물을 바치는 것)은
인간과의 관계 회복을 전제로 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물보다 사랑을 더 훌륭한 예물로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 하시며
서로의 사랑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축복하고
그 상처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로 잃어버린 마음의 평화를 다시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용서로써 본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움과 선함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용서는 우리가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갚음입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5,20)
무심코
형제들에게 화를 내고
바보취급을 하는
사소한 행위가
구원의 길을 막을 수 있다네.
끊임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만이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의
의로움보다
한 발자국 앞서가는 길이라네.
- 김혜선 아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