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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필(盧弼)1354년(고려 공민왕 3)∼1427년(세종 9).

작성자수생|작성시간26.06.17|조회수0 목록 댓글 0

*노필(盧弼)1354년(고려 공민왕 3)∼1427년(세종 9).

시호: 양간(良簡). 溫良好樂良, 平易不訾簡。

온량하여 악을 좋아함이 양(良)이요, 평이하여 잔말 없음을 간(簡)이라 한다.

본관은 교하(交河). 출사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398년(태조 7)에 판전중시사(判殿中寺事)가 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우군도총제에 올랐다. 또 1427년(세종 9)에 별장(別將)에 임용되어 삼사우윤(三司右尹), 판전농‧사재시사(判典農司宰寺事)를 거쳐 상호군으로 가선대부 공조전서에 제수되었다. 1422년(세종 4)에 병이 생겨 사직하고 요양한 지 6년 만에 나이 73세로 죽자 사흘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제사와 부의를 내렸다.

아들은 넷인데, 노신의(盧信義), 노신례(盧信禮), 노신제(盧信悌), 노신충(盧信忠)이다.

 

도총제 노필에게 내린 제의 제문

예관을 보내어 돌아간 도총제 노필(盧弼)에게 제(祭)를 내렸는데 그 제문에,

“죽고 사는 것은 이치와 기수(氣數)의 필연적인 것이며, 조상(弔喪)하고 구휼(救恤)하는 것은 국가의 떳떳한 전례(典禮)인 것이다. 경은 겸손하고 공손하여 지조가 있으며, 진실하고 정성스러워 허식이 없었다. 집에 있어서는 능히 검소하였고 나라를 위하여는 오직 근신하였다. 세 조정에 두루 벼슬하여 드디어 높은 관질(官秩)에 오르게 되었다. 한가로이 거처하여 수양하며 백세까지 누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부음(訃音)이 갑자기 이르니 진실로 탄식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시호를 내리고 지금 예관을 보내어 흰 장막에 전(奠)을 내리노라. 아아, 군신의 의리가 깊으니 감히 경의 숙덕(宿德)을 잊겠는가. 유명(幽明)이 이치가 같으니 진실로 나의 지극한 심정을 체득(體得)할 것이다.”하였다.

○遣禮官, 賜祭于卒都摠制盧弼。 其祭文曰:

死生, 理數之必然, 而弔恤, 國家之尙典也。 惟卿謙恭有守, 悃愊無華。 在家克儉, 奉公惟謹。 歷仕三朝, 遂躋崇班。 居閑怡養, 謂享期頤。 訃音忽至, 良用興歎。 爰命有司, 節惠賜諡。 今遣禮官, 致奠素帷。 於戲! 君臣義深, 敢忘卿之宿德? 幽明理一, 諒體予之至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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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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