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6년(1397 정축 / 명 홍무(洪武) 30년) 2월 24일(정미) 1번째기사
귀의군(歸義君) 왕우(王瑀)의 졸기. 예장하고 시호를 내리다
귀의군(歸義君) 왕우(王瑀)가 죽으니 예장(禮葬)하게 하고, 경희(景僖)라 시호를 내려 주었다. 우(瑀)는 공양왕(恭讓王)의 모제(母弟)이며 왕씨(王氏)의 제사를 주장한 자였다. 아들은 왕조(王珇)와 왕관(王琯)이고, 딸은 무안군(撫安君) 이방번(李芳蕃)에게 출가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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