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2:1-7절) 우리에게 되어 진 놀라운 일 이 세상에는 많은 생명체(生命體)가 있지만, 인간만큼 위대한 생명체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금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대단하게 의미심장(意味深長)한 일은 없습니다.
만일 인간 외에 다른 것으로 태어났다면, 우리의 생명은 정말 보잘것없고, 비참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축복(祝福)인지 모릅니다. 인간은 뛰어난 머리로 엄청난 지식(知識)을 쌓았습니다. 즉 유명한 대학 도서관에는 수백만 권의 책들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 한권, 한권의 책속에는 상당한 지식(知識)들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그런 지식(知識)을 많이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위대한 문명(文明)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나, 다리나, 기계와 통신 등까지 실제로 엄청난 문명(文明)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축복(祝福)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문제가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그 이유 때문에 그 위대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억압(抑壓)입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억압되어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옛날에는 신분상의 억압(抑壓)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민들이나, 종들은 아무리 똑똑해도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노예(奴隸)나 죄수(罪囚)들은 전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질병(疾病)이 있습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즉 병에 걸리면, 오직 생명 유지를 위해 투병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한 가난(家難)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난하면, 오직 먹고 사는 일을 위해 한 평생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가장 심각한 것은 죽음(死亡)입니다. 사람은 죽음으로써 모든 능력과 존재를 다 상실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것들을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위대하기는 하지만, 억압(抑壓)과 질병(疾病)과 죽음(死亡)때문에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에 불과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더 심각한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미움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인간들끼리 서로 싸우고, 때리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분노(忿怒)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로부터 거절당하거나,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 분노(忿怒)의 감정을 느낍니다. 거기에다가 절망(切望)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이 되지 않으면, 절망(切望)합니다.
거기에다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허무(虛無)함이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것들이 계속 변화하지 않으면, 권태(倦怠)를 느낍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실 인간의 놀라운 점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너무나 위대해 질 수 있는가 하면, 반대로 너무나 치졸(稚拙)하고, 악(惡)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런 변화의 폭을 보이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선(善)한 마음을 먹었을 때는 희생적이며, 선(善)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똑같은 사람이 악(惡)한 마음을 먹을 때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을 정도의 악(惡)한 짓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인간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까? 아무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마음 중심을 붙잡고 계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즉 그동안 우리가 결심하고, 노력하고, 몸부림을 쳐도 안 되던, 것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靈的)기억상실증을 치료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Ⅰ.인간의 상태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 는 것은 비단 심리학(心理學)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연구의 역사는 곧 철학(哲學)의 역사요, 학문(學問)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에 대한 연구(硏究)를 살펴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으면서도 역시 인간의 문제를 부분적일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은 인간의 본질(本質)에 대하여 가장 분명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2:1절)그(그리스도)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좀비) 이 한 구절이 인간 존재에 대한 성경적 정의입니다. 인간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모두 영(靈)이 죽어 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물론 현재 숨 쉬고 있지만, 그 외의 모든 기능(機能)은 다 죽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모든 인간이 죽어있다”(좀비)는 것에 대하여 금방 수긍(首肯)이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을“죽었다”고 말하면, 이것은 이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 가운데서도“죽었다”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집에 父子관계가 좋지 못하여, 아들이 가출(家出)해서 자기 멋대로 살아간다면, 누군가가 그 아버지에게“요즘 아들은 어떻게 지냅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 아버지는“그 자식은 이미 나에게 죽은 아들입니다. 나는 그 아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모릅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의 상태는 생명의 주인이시며, 만복의 근원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 죽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분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야 할 목적을 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들의 상태는 하나님에 대하여 죽어 있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과의 영적교류(交流)가 없는 상태요, 아예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과 영적교류가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아예“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53:1절)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아마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일까? 살아야할 목적(目的)을 알지 못합니다. 즉 존재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위대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이 파손(破損)되는 바람에 정상적인 가동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주 정교(精巧)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주 작은 이상(異象)으로도 파괴(破壞)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신 것”얼마나 감사합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영적(靈的)기억상실증 환자가 되든지, 아니면, 영적 광인(狂人)이 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가치도, 다른 사람의 가치도 알지 못하고, 오직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충동(衝動)에 따라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손상(損傷) 즉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그럼“허물과 죄”란 무엇일까? 보통 허물하면,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죄(罪)라면,“하지 말라”는 법령(法令)을 어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가장 부끄러운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답지 못한 삶입니다. 예를 들어서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여자 행세를 한다든지, 또는 어른이 유치한 짓을 한다면, 허물이 될 것입니다.
즉 자기답지 못하게 비열하고, 야비하고,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많이 한다면, 그는 부끄러운 짓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자기다운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謙遜)한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 때부터 우리의 삶은 부끄럽지 않게 됩니다. 즉 이때부터 비로소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죄(罪)”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서 산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법(法)을 어기지는 않았어도 마음속으로 해선 안 될 생각과 또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즉 우리는 욕망(慾望)을 이기고, 바르게 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먹는 순간 욕망(慾望)은 너무나 집요하고, 강하게 내 속을 파고 들어와 결국은 욕망(慾望)의 노예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과거 삶의 전부가 죄(罪)의 삶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인간의 삶은 100% 해서는 안 될 부끄러운 것들로 가득 찬 삶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 앞에서“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우리 속에 의식은 있었지만, 손과 발과 몸은 말을 듣지 않는 전신마비 환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3절)전에는 우리도 다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옥심을 따라 지내며,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곳은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의 몸과 인격(人格)전체는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을만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즉 우리의 인격(人格)전체는 하나님 앞에서 혐오스럽고, 저주 덩이요, 영원히 미움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Ⅱ.타락한 인간과 사회 우리 개인만 하나님 앞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癡呆)환자였다면, 이 사회는 어떨까? 희망이 없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성경은 인간사회는 더“가능성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2-3절)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여기서“그 때”란 과거“허물과 죄로 죽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때 우리도“그 가운데서”행했습니다. 여기서“그 가운데서 행했다”는 말은 그런 상태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큰 사고를 당하지 않고, 큰 죄(罪)에 빠지지 않았던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고, 우리를 붙들어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지 않고 살아왔던 과거를 생각해 보면, 정말 아슬아슬할 때가 많았습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큰일 날 뻔 했었고, 큰 사고를 저지를 뻔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셨습니다.
이미 그때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돈과 지식(知識)과 명예(名譽)와 쾌락(快樂)을 목적으로 삼도록 유혹하고, 하나님을 찾으려는 자들을 교묘하게 핍박하고, 따돌립니다.
그리고 사탄은 아예 인간들의 정신을 미신(迷信)과 우상(偶像)으로 지배할 때도 있습니다. 2절)...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공중의 권세 잡은 자(魔鬼)란 어떤 사상(思想)이나, 가치관(價値觀)을 말합니다. 어느 사회든지, 복음(福音)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가치관(價値觀)자체가 대단히 미신적(迷信的)이요, 비인간적(非人間的)입니다.
그래서 말도 되지도 않는 거짓(迷信)을 따라야 하고, 따르지 않는 자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마귀(魔鬼)가 그곳의 관습(慣習)과 풍습(風習)과 가치관(價値觀)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절 끝 부분에서“지금의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靈)이라”고 했습니다. 즉 “불순종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는 자들 속에는 사탄이 강하게 역사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역사 한다”는 것은 아주 강(强)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을 말합니다. 즉 마귀(魔鬼)는 하나님을 싫어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거부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대적(對敵)하는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면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과거를 회상(回想)해 보게 했습니다.
우리는 과거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소망(所望)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즉 우리에게 절대적인 것은 육체의 욕심(慾心)과 쾌락(快樂)뿐이었습니다. 이 육체의 욕심(慾心)속에는 육체적 정신적 모든 야망(野望)과 정욕(廷辱)이 다 포함됩니다.
결국 인간은 한 평생 자기 정욕(情慾)과 야망(野望)을 채우기 위한 존재들입니다. 소망(所望)이 없습니다. 즉 정욕(情慾)이 절대적인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야망(野望)을 위해 사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즉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認定)을 받고 싶고, 칭찬을 받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위대하게 만들어 졌지만, 죄(罪)와 욕심(慾心)의 삶만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이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震怒)의 심판(審判)밖에 없습니다.
Ⅲ.하나님의 위대한 사역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치료하셨고, 우리를 살리셨고, 온전한 의식(意識)이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4절)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사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긍휼(矜恤)입니다. 긍휼(矜恤)이란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긍휼”이 성립되려면, 우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도우려는 것은 마음속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원래 모습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모든 인간들이 지금 살고 있는 모습보다 엄청나게 귀하게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허물과 죄만 고쳐지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恩惠)만 임하면, 너무나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4절)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람을 인하여” 여기서“긍휼이 풍성하다”는 것은 ①누가 시키지도 앓았는데,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누가 시켰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도와 달라고 하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은 긍휼이 풍성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순전히 하나님께서 스스로 생각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구원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상의(相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구원받고 싶으냐?”고 물러보지도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하나님의 의도(意圖)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기차(汽車)가 탈선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쳤을 때, 지나가던 청년들이 뛰어들어 본인의 의사(意思)도 물어보지 않고, 닥치는 대로 건져낸 것과 같습니다. 또 긍휼에 풍성하시다는 것 ②우리를 건지시는데, 상당한 비용(費用)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심하게 망가져 있었고, 그 동안 죄(罪)를 너무나 많이 지었기 때문에 그 죄(罪)의 대가(代價)가 엄청났습니다. 그 죄를 우리는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 드는 정신적, 육체적 비용 부담을 단 한 푼도 우리에게 지우지 않고, 본인이 그 책임을 지셨습디다. 우리는 공짜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데 드는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자고 하셨어도 우리는 한평생 빚쟁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푼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요구하신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100%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 긍휼에 풍성하시다는 것은 ③우리를 구원하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실패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믿음이 없고, 잘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완전하게 구원해 내실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强盜)만난 사람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강도(强盜)에게 얻어맞아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고 있었고, 돈과 옷과 모든 짐을 다 빼앗겼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고도 피해갔습니다.
그러나 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행동을 했습니다. 즉 그에게 응급치료를 해주고, 오던 길을 돌아가 숙소에서 치료를 받게 해주고, 나머지 돈까지 다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병들고, 상처받고, 실패한 인생을 전부 다 책임 지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엄청난 손해(損害)입니다.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엄청난 손해(損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같은 죄인을 구원해서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4절)...하나님이 우리를 사람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엄청난 사랑을 우리에게 퍼 부으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본성(本姓)이십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우리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사랑을 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사역이 무엇입니까? 5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우리는 과거 허물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짓만 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링거주사 줄을 연결하여 예수님의 피가 나에게로 수혈(輸血)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살리기 위해, 죽으시는 것입니다. 즉 주님은 자기 생명을 우리에게 이식(移植)시켜 주기 위해 죽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所望)도, 예수님과 함께 누워 있을 자격(資格)도 없던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소망(所望)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붙잡았을 때,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즉 십자가 위에서 놀라운 생명교환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나의 모든 수치와 부끄러운 죄는 모두 예수님에게로 넘어가고, 예수님의 의(義)와 생명(生命)과 능력(能力)은 우리에게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생명(生命)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는 진공청소기(眞空淸掃機)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부끄러움과 죄(罪)와 수치(羞恥)를 모두 빨아들입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의 새로운 의(義)와 생명(生命)과 능력(能力)을 우리 안에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恩惠)요, 공짜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복(福)은 죄(罪)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즉 내 속에 있는 모든 죄를 씻음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십자가가 했습니다. 더 놀라운 말씀이 다음절에서 나옵니다. 6절)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럼 여기서“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은 무엇이며, 또“하늘에 함께 앉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비유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장사지내셨을 때, 우리는 거기에 함께 눕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이미 그 십자가에 같이 달린 것이 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십자가에 달린 것으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실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달려 죽은 것으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덤 속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예수님과 옷을 바꾸어 입습니다. 옷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신분증(身分證)도 바꿉니다.
우리의 오장육보를 바꾸어 완전히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 우리를 그냥 세상 밖으로 내어 보내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늘 꼭대기(天國)까지 데리고 가십니다. 그래서“함께 일으키사”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전신마비 환자요, 기억상실증 환자였지만, 이제는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내가 누군지? 알게 되었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입원했던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현기증(眩氣症)이 있어서 어지럽기는 하지만, 너무나 기분이 좋고, 이제 내가 누군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이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우리의 신분(身分)이 하늘에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서류(書類)를 다 가지고 가셔서 하나님의 결제(決濟)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입니다. 우리의 모든 서류(書類)는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아예 장차 우리를 하늘에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7절)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단순히 이 땅에서 우리의 행복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알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使命)입니다.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일 헌금 좀비 영혼을 살리는 선교센터 설립 지원금 농협 302-8772-0191-01(헌금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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