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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생명의 양식

작성자정의영 목사(경가 동탄)|작성시간21.02.19|조회수52 목록 댓글 0

갈1:4-10절)                                  복음의 변질

어떤 건물에 불이 나서 사람들이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혹은 사람들이 깊은 구덩이에 빠져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을 때, 그곳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도 고통스럽지만,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이들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또 어느 집에 불이 났는데, 부인(婦人)은 불 난 집안에 갇혀서 다급히 통화하고 있고, 남편은 밖에서 그것을 보면서도 유리를 깨지 못해서 부인(婦人)이 죽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유리는 강화(强化)유리로 되어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 그 옆에 포클레인 같은 것이 있었더라면, 누가 뭐라고 해도 남편은 그것을 운전해서 그 유리를 깨고, 부인(婦人)을 건져내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모든 사람이 죽어가는 병에 걸렸을 때, 어떤 특출한 의사(醫師)가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처방을 써 주었다면,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처방을 지키려 하고, 그것을 변질시키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어떤 성공(成功)이나 부귀영화(富貴榮華)보다도 그 병을 치료하는 그 방법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바로 우리 모든 인류가 죄(罪)라는 병에 걸려서 마귀(魔鬼)의 쇠창살이 있는 구덩이에 갇혀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중환자 중의 중환자였고, 마귀(魔鬼)의 인질(人質)중에서는 최악(最惡)의 인질(人質)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원(救援)자 되시는 예수님은 자신의 온 몸이 상처를 입어서 피투성이가 되어가면서, 심지어는 자신이 죽어가면서 우리를 그 죄의 속박(束縛)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 속박에 갇혀 있는데, 그들을 건져내주기 바란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에게 전해주신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나 기독교는 많은 어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戰爭)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고, 경제(經濟)도 끝없이 추락(墜落)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사명(使命)을 감당해야 할 교회는 더 이상 세상에 빛도 비추지 못하고 있고, 소금의 짠 맛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마치 거대한 썩은 호수같이 변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당부하신 방법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만이 유일하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나 목회자들은 이 방법을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람을 건져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지금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가 부흥이 일어나고, 기독교인들이 번영(繁榮)하고, 성공(成功)할 때마다 반복(反復)해서 일어났던 문제입니다. 그 문제의 원인은 바로 복음(福音)의 변질(變質)입니다.

 

만약 사람이 상한 음식을 먹었다면, 아마 그 사람은 배가 아프다가 토하고 설사를 하고, 결국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면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어떤 사람이 진짜 약(藥)이 아닌 변질된 약(藥)을 먹는다든지, 아니면 잘못 처방된 약(藥)을 먹는다면, 병이 낫기는 커녕 발작(發作)을 일으키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와 교회가 바로 이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었던 복음(福音)은 상한 복음(福音)이었고, 변질된 복음(福音)이었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 개인이나, 우리 사회가 낫지 않는 것입니다.

 

Ⅰ.복음이 변질될 수 있는가?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깊은 웅덩이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구출을 받았다면, 거기를 떠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해적(海賊)이나, 테러범들에게 인질(人質)로 붙들렸다가 기적적으로 구출을 받았다면, 그 역시 거기서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자기가 빠졌던 그 웅덩이에 많은 사람이 빠져 있고, 아직도 친구들이 여전히 테러범들이나, 해적(海賊)들에게 인질(人質)로 붙들려 있다면, 그는 그곳을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 끝까지 남아서 마지막 한 사람이 살아서 돌아올 때까지 무슨 도움이든지, 주려고 할 것입니다.

 

더욱이 만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와 똑같이 죽어가는 병에 걸려 있다면, 그는 절대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다른 곳에 가서 장사를 하거나, 공부를 해서 성공(成功)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큰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는 가운데 살아난 사람에게는 트라우마(trauma)가 있습니다. 그들은 밤에 자려고 하면, 자기 옆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의 비명(悲鳴)이나, 신음소리가 계속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죄(罪)의 병에 걸리고, 마귀(魔鬼)의 인질(人質)이 되어서 끝도 없는 쇠창살이 있는 구덩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자신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그 쇠창살에 손과 발이 찔리면서 옆구리가 찔리면서 우리를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직도 이 구덩이에 빠져 있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고 하면서 그들을 건져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福音)과 성경 말씀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4절)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려고, 자기 자신을 우리 몸값으로 주셔서 우리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곧 복음(福音)입니다.

 

여기“이 악한 세대”라고 하는 것은 마귀(魔鬼)가 지배하는 악(惡)한 세상을 말합니다. 거기에다가“우리 죄를 대속”한다는 것은 우리의 몸값으로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송두리째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救援)받았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福音)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귀(高貴)한 복음(福音)이 상(傷)할 수 있고, 변질(變質)될 수 있을까? 그런데 바로 이 복음(福音)이 변질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罪)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우리가 좀비에서 살고 나서 보니까 이 세상에 좋은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만, 거기에 추가해서 다른 것도 믿게 되었는데, 그것은 곧 교회와 개인의 성공(成功)이었습니다. 즉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福音)에다 추가해서 자신의 성공(成功)과 세상의 번영(繁榮)이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 복음(福音)자체가 상(傷)한 음식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음식을 먹는 자마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보기에도 좋고, 맛도 있어서 잘 먹는데, 얼마가지 않아서 배가 찢어질 듯이 아프고, 구토와 설사가 나서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까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먹고, 링거주사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상(傷)한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몸이 반응을 하기 때문에 아파서 견딜 수 없어서 병원으로 가지만, 영혼(靈魂)의 식중독(食中毒)은 느끼지도 못하고, 아프지도 않은 것입니다.

 

영혼(靈魂)의 식중독(食中毒)은 전부 남만 원망하고, 욕하게 되어 있지, 자기가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더욱이 이런 설교를 들으면 교인들이 다 죽어 있는데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처지에 있는데, 진정으로 예수님의 복음(福音)을 붙드는 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사람들이 세상으로 달려가서 성공(成功)하고, 학위(學位)를 주렁주렁 걸치고, 부자(富者)가 되고, 난리를 치는 것을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 봐야 다 죽을 것이라는 결과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고 난 후에도 자기 자신의 위치(位置)를 지킬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곧“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길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영혼(靈魂)이 살아나는 실험(實驗)을 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가르치고, 전하면, 새로운 생명이 나타나고, 변화(變化)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실험(實驗)을 해도 폭발적인 능력은 잘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즉 지옥(地獄)의 권세(權勢)를 폭파(爆破)해야 할 텐데, 실제로는 우리에게는 경제적(經濟的)인 어려움과 질병(疾病), 박해(迫害)나 어려움이 찾아올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 대신에 오히려 이 세상에서 폭발적(爆發的)인 축복(祝福)이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세상에 나갔을 때, 세상일들이 잘 풀리면, 돈을 많이 벌거나, 세상 적으로 잘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축복(祝福)이라고 생각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놓고, 세상 복(福)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세상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축복(祝福)이 아니고, 복음(福音)이 변질(變質)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福音)의 역사가 크게 일어날 때마다 늘 일어났던 일이며,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주신 것이 너무나도 놀라 워서 아무리 이 세상에서 폭죽(爆竹)소리가 들리고, 성공(成功)의 소문이 들려와도 문(門)을 걸어 잠그고,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진정한 부흥(復興)이 일어나는 비결(肥潔)을 실험(實驗)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교회 안에서 세상 성공(成功)의 물결이 밀려오게 됩니다. 사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즉 가난하던 주(主)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성공(成功)하고,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던 학생들이 좋은 학교를 나와서 유학(留學)을 하고, 교수가 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멈추어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즉 과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주시기 위해서 죽으셨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굳이 세상의 성공(成功)이나, 물질(物質)의 복(福)을 외면하거나, 반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죽으시면서 주신 복음(福音)에 다른 것을 물 타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Ⅱ.이같이 속히 떠나

갈라디아 지방 사람들은 오랫동안 사탄(詐誕)의 지배(支配)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에게 복음(福音)을 전하는 자들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복음(福音) 전하는 자들에게서 들었던 소식은 전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식들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을 대신해서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지금까지 누군가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더욱이 죽기까지 사랑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른 사람으로부터“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인들도 남편에게 구박(毆縛)이나 받았든지, 아니면 “그 정도 밖에 하지 못하느냐?”는 소리나 듣든지,“밥 내놔라”하는 소리를 들었지“사랑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하나님이 자기들을 사랑하신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복음(福音)을 믿고,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남편도 사랑하고, 아이들도 사랑하고, 자기 자신들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에게 물질적(物質的)인 복(福)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리고는 갑자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1:6절)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사람이 아무리 좋은 것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면, 좀 기다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좋은 음식점에 들어가 음식을 먹으려고 해도 주문을 하고는 좀 느긋하게 기다려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구두점에서 구두를 사려고 하든지, 혹은 옷을 사려고 할 때도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이나, 사이즈를 고르려고 하면, 점원이 창고에서 가져오는 시간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은 주문(注文)만 해 놓고는 물건을 보지도 않고, 너무 빨리 가계를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은혜(恩惠)를 받았으면, 과연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하는지, 어떤 축복(祝福)을 주실 것인지, 좀 기다려봐야 하는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주문(注文)만 해 놓고는 기다리지도 않고, 행(行)하니 밖으로 가버리는 손님과 같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들 외(外)에 더 멋있어 보이는 것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할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福音)을 떠난 것은 전혀 나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생각했던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바에야 더 철저하게 잘 믿어보자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을 믿고, 세례(洗禮)받는 것은 너무나 쉬운 것 같았고, 차원(次元)이 낮은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바리새인들의 교육(敎育)은 아주 체계(體系)가 있어 보이고, 철저해 보였습니다. 즉 그들은 금식(禁食)을 가르쳤고, 안식일(安息日)을 철저하게 지키게 하였고, 어느 수준에 올랐을 때, 할례(割禮)를 받게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律法)이 있었고, 제사(祭祀)가 있었고, 규율(規律)이 있었고, 엄청난 물질적(物質的)인 복(福)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똑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하나님을 믿는 것을 철저하게 훈련(訓練)을 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지방에 들불같이 유행했던 것이 바로 예수도 믿으면서 할례(割禮)도 받는 것이었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이렇게 한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福音)을 믿었고, 유대인들에게도 인정(認定)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철저한 신앙 훈련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나 교인들이 교만(驕慢)해지기 시작했고, 세상에 덕(德)을 끼치지 못하고, 욕을 얻어먹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교인들끼리 싸우기 시작하고, 감투(敢鬪)쓰는 것을 좋아하고, 성령(聖靈)의 역사가 소멸(掃滅)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갈라디아 교인들은 전혀 인식(認識)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너무나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너무 잘 믿는 것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신앙에 초급(初級)반이나, 고급(高級)반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꾸 실험(實驗)을 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이나, 세상의 학식(學識)을 더 갖다 붙이기 이전에 하나님 말씀의 본래 뜻에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땅!”하고 맞추게 될 때, 우라늄이 연쇄반응(連鎖反應)하듯이 폭발적(爆發的)인 능력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能力)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폭발적(爆發的)으로 나타낼 때까지 이것만 붙들고, 죽자고 실험(實驗)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은 세상의 성공(成功)이나, 물질적(物質的)인 복(福)으로 달려가는데, 너무나 빨랐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福音)이 오면서 오히려 이 세상에서 폭발적(爆發的)인 축복(祝福)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나, 종들이 이 세상의 축복(祝福)이 진짜 복(福)인 줄 착각(錯覺)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위로(慰勞)의 축복(祝福)이지, 진짜 복음(福音)의 폭발(爆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福音)을 듣고, 너무나 빨리 이것이 옳다 혹은 틀리다 판단하고, 자기 갈 곳으로 가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주문(注文)했으면,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으므로 걱정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 가지는 것이 아닐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주문(注文)을 했으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1:7절)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福音)은 없다고 분명히 단정(斷定)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하나님의 주신 말씀 외(外)에는 생명(生命)이 없고, 축복(祝福)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福音)에다 좋은 것을 섞어서 첨가(添加)하면, 더 좋은 복음(福音)이 나오지 않을까? 사도 바울은 그것은 불가능(不可能)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영혼(靈魂)의 문제가 너무나도 복잡(複雜)하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외(外)에는 절대로 다른 것으로는 우리 영혼(靈魂)을 고칠 수 없고, 하나님의 복(福)을 받을 수 없다고 아주 힘을 주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지 어떤 사람이 전문가(專門家)도 아니면서 복음(福音)을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판단해서 무엇인가를 섞어서 더 좋은 것이라고 주는데, 그것은 변질(變質)된 복음(福音)이나, 상(傷)한 음식이기 때문에 그것을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더 잘 믿으려고 하고,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하고, 더 높아지려고 했지만, 영혼(靈魂)에 무식(無識)한 결과로 상(傷)한 음식을 먹은 결과 입니다. 우리 영혼(靈魂)에는 다른 복음(福音)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 외(外)에는 아무것도 우리를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죽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Ⅲ.다른 복음은 저주

사도 바울은 우리 눈에 더 좋아 보이는 것에 의해서 얼마든지 변질(變質)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福音)이 너무 시시하게 보이고, 차원이 낮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사도 바울 자신에게도 이런 유혹(誘惑)이 있었고, 천사들에게도 이런 유혹(誘惑)이 있었고, 다윗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이런 유혹(誘惑)이 있었던 것입니다.

1:8절)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참으로 두렵고,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福音)을 보면, 너무나도 단순(單純)하고, 뻔한 말씀입니다. 즉“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누구든지 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그러고 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예수를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하면, 이미 영생(永生)을 얻었기 때문에 이제는 윤리적(倫理的)인 삶만 살고, 선교(宣敎)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즉 우리는 천국(天國)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天國)에 들어간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구원(救援)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영(靈)곧 하나님의 성령(聖靈)이 우리 안에 오셔서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하나씩 하나씩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자아상(自我像)을 바꾸시며, 우리의 성품(性品)을 바꾸시고,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하나씩 바꾸어나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聖靈)은 우리의 지성(知性)과 감성(感性), 모든 행동(行動)이나 표정(表情), 습관(習慣), 대인(對人)관계, 마음의 상처(傷處)나, 고통(苦痛)을 대하는 태도(態度)나 모든 것을 다 바꾸어 가십니다.

 

이것은 엄청난 성형(成形)수술이고, 이것은 엄청난 대역사(大役事)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전쟁(戰爭)을 막아주시고, 자살(自殺)을 막아주시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것은 도무지 돈으로 환산(換算)할 수 없는 능력(能力)입니다.

 

거기에다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들의 자존감(自存感)을 주십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이 시시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케케묵었다고 생각해서 세상을 따라가면, 마귀(魔鬼)의 독(毒)가스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즉 우리는 이 세상의 음란(淫亂)을 이길 수 없고, 순간적인 충동(衝動)을 이길 수 없고, 허무(虛無)를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자기 자신이라도 변질(變質)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혹시 교만(驕慢)한 마음이 들어서 세상의 학문(學文)이나, 유행(流行)이나, 연기(演技)를 복음(福音)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저주(咀呪)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인기(人氣)나, 세상의 학문(學文)으로는 마귀(魔鬼)의 독(毒)가스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천사(天使)일 수도 있습니다.

 

천사(天使)가 얼마나 아름다우며, 능력(能力)이 있습니까? 그러나 혹시 천사라도 미쳐서 예수님의 복음(福音)대신에 천사의 사상(思想)을 전한다든지, 혹은 다른 맹세(盟誓)의 어떤 지식(智識)을 전한다면, 그 결과는 역시 저주(咀呪)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영혼(靈魂)은 너무나 정교(精巧)하게 만들어져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말씀 외(外)에는 절대로 저주(咀呪)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9절)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처음부터 타락(墮落)한 목회(牧會)자는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두 복음(福音)에 감격(感激)하고, 가난하고, 겸손(謙遜)한 마음으로 믿었는데, 유명(有名)해지고, 사람들의 인기(人氣)를 끌게 되니까 복음(福音)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福音)도 믿지만, 거기에 성공(成功)을 더 추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저주(咀呪)였습니다. 즉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의 말씀 통치(通治)가 너무 답답해서 반역(反逆)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더 발전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파멸(破滅)이 되는 저주(咀呪)였습니다.

 

또 솔로몬은 어렸을 때, 왕(王)이 되면서 일천번제를 드렸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智惠)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공(成功)하고 보니까 세상은 너무 나 넓었고, 지식(知識)의 세계는 너무나 무한(無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신앙(信仰)에다 세상의 번영(繁榮)을 추가(追加)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역시 저주(咀呪)였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는 거의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너무하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을 배반(背叛)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난 저주(咀呪)였습니다.

 

누구든지 처음 받은 복음(福音)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외(外)에 다른 복음(福音)을 전하면, 그 결과는 저주(咀呪)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成功)하고, 유명(有名)한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복음(福音)과 섞을 순 없고, 복음(福音)과 바꿀 순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가르침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교훈으로 더 잘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가지고, 끝까지 지키고, 실험(實驗)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유혹(誘惑)과 저주(咀呪)를 물리치는 균형 잡힌 성숙한 성도님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선한 동역자 안내

지인(知人)을 회원으로 초청하여 진리의 복음 창고에 저장된 생명의 양식을 함께 공유하는 예배공동체, 가정예배, 또는 전 세계 어느 누구에게나 상대편 카페에게 마우스로 복사해서 전하므로 소중한 영혼을 살리는 선한 동역 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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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잡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진리의 복음 확신을 갖기 위해

※cell 리더☞ 선택과목(26주), 전도인☞ 필수과목(3년)을 필한 후, 자격증을 취득하십시요.

2-3명으로 구성된 예배 공동체 cell 리더는 거주지와 성명, 스마트폰(카톡)으로 신청하세요.

             다음카페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카톡 선교회 010-8772-0191(영원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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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ll 가족 주일 낮 예배 순서(견본)를 참고 바랍니다.

 

※ 예배는 성도의 기본 의무요,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입니다.

아직 셀 예배가 진행되지 않은 성도는 코로나가 약화되는 중에 있으니, 가까운 건전한 교회를 찾아 예배하시고 혹 동탄과 가까운 분은 선교센터가 세워지기까지 *주다산교회*로 전화하고 오시면 만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복음

                   다음카페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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