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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교양

엄마의 전 재산

작성자희망의미소(박영훈)|작성시간17.03.29|조회수74 목록 댓글 0

울각시가 아야해요.
환절기 악질 감기에 걸렸어요.
1년에 한두 번 빠질까 말까 하던 학교도 조퇴해서 병원도 가고 약도 이만큼 먹고 있습니다.
울각시가 애기가 돼 버렸습니다.
''꽈배기도 묵고 싶고, 찹쌀 도너츠도 묵고 싶고, 소보루 빵도 묵고 싶고, 밤빵도 묵고 싶고...''

그제 퇴근길에 빠바에 들렀는데 찹쌀 도너츠가 생각 안 나서 그냥 도너츠를 샀다고 한 소리 듣고, 밤빵을 안 판다고 그냥 들어가서 울각시를 시무룩하게 만들었습니다.
꽈배기랑 소보루마저 없었으면 저 쫓겨났을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팥죽이 묵고 싶다고 해서 이수역 남성시장에 있는 '소문난집'에 갔습니다.
좀 더 위에 있는 국수집만큼 맛난 집이네요.
맛난 팥죽과 팥칼국수에 만두까지 먹고 나니 뭔 일인지 뚱해 있던 울딸도 기분이 풀렸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뻥튀기도 샀고요.

역시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울적할 때는 맛난 거 먹어 주는 게 직빵입니다.
어제 뚜레주르에서도 밤빵을 못 샀는데 오늘은 서울시내를 다 뒤져서라도 기어이 사가야겠습니다.
서울 하늘이 어제보다 파래졌습니다.
울각시가 사 준 꼬까옷을 입고 출근했습니다.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네요. ~^.^~

♥엄마의 전 재산♥

세 여자가 있었다. 그녀들은 자매였다.
어느 날, 평소 당뇨병을 앓고 있던 그녀들의 엄마가 쓰러졌다.
엄마는 길고 긴 혼수상태 끝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지만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예감한 얼굴이었다.
엄마가 깨어나자마자 한 말은 세 자매에게 충격을 주었다.
''내가 죽으면, 대학에 집을 기증할 생각이다.''
딸들은 말렸지만 엄마는 결심이라도 한 듯 완고했다.

엄마의 전 재산, 빌라 한 채.
엄마가 평생 서울역 앞 두 평짜리 작은 우동집에서 악착같이 우동을 팔아 겨우 마련한 집이었다.
가난과 사투를 벌이며 겨우겨우 모아 온 돈.
엄마의 모든 것이었던 그 집을 기증하겠다니 세 자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병실에서 나온 세 자매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의 힘으로 번 돈이 아니면 결국은 도망가게 되어 있다고 엄마가 그랬잖아.''
둘째 딸이 망설이는 두 자매에게 말했다.
평생을 구두쇠처럼 살았던 엄마, 꽁보리밥에 김치만 먹으면서도 이웃에게는 흰 쌀밥을 대접할 만큼 주변에 대한 엄마의 베풂은 남달랐다.

젊은 나이에 서울로 상경한 후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도 없이 살아왔던 엄마는 오갈 데 없는 세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기로 했다.
그렇게 그녀들은 딸이 되고, 자매가 되었다.
세 자매는 알고 있었다.
평샘 대학 근처에도 못 가본 엄마가 집안 환경이 어려워 마음 놓고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안타깝게 여겼다는 사실을.
그리고 고단한 삶 가운데서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주던 엄마, 엄마의 그 사랑이 그녀들을 키워냈다는 것을.

자매들은 엄마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누구 하나 넉넉지 못한 삶이었지만, 엄마에게서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만큼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
세 자매는 한 마음으로 재산 상속 포기 각서를 썼다.
엄마가 기증한 것은 집뿐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자신의 시신까지도 의과 학생들의 교육용으로 기증했다.
그렇게 엄마는 모든 것을 나눠주고 세상을 떠났다.
풍요롭지 않았던 엄마의 삶.
그러나 뜨끈한 우동 한 그릇 같은 엄마의 온기가 세 자매뿐 아니라 세상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서울역 앞에서 천막을 치고 20여 년간 우동 장사를 하다 2007년 83세를 일기로 타계한 김복순 할머니와 세 딸의 실제 사연입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전 재산인 시가 2억 7천만 원 상당의 빌라와 시신을 경희대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경희대는 '김복순 장학재단'을 세워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뭉클_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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