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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교양

아버지의 등을 밀며

작성자희망의미소(박영훈)|작성시간17.07.24|조회수488 목록 댓글 0

친구 아버지 문상 갔다가 그냥 올라오려고 했었는데, 잠시 후 동갑내기 사촌 형이 왔습니다.
전날에도 왔었지만 친구 아버님을 마을 뒷산에 모신다고 하니 이장으로서 챙겨야 될 것도 있고 해서겠지요.
간만에 내려왔는데 큰댁에도 들리고 아버지한테도 가 봐야 하지 않겠냐고 합니다.
그럼 그럴까? 하고 차 열쇠를 받았습니다.
강진읍에서 큰댁 드릴 수박 한 통과 울아버지 드릴 잎새주 한 병에 은어 튀김 안주 하나를 샀습니다.

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간 다음 잠시 내려서 걸었을 뿐인데 땀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옵니다.
종이컵에 소주 한 잔 크게 따르고 플라스틱 접시에 안주를 올려놓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작년 봄에 새로 올린 봉분 위엔 고사리가 가득합니다.
머털도사의 머리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 윗쪽으로는 노란 원추리가 무더기로 피어 있는 게 좋네요.
울엄마 건강하고, 우리 형제들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게 모두 아버지 덕분입니다.

좀 더 있다가 와야 되는데 날이 오지게 더운지라 얼른 두 잔 더 드렸습니다.
무슨 소주를 냉수 주듯이 주냐고 핀잔을 주실 것 같았습니다.
술보다는 천천히 더 있다 가라고 할 것 같은 아버지를 뒤로 하고 얼른 남은 술이랑 챙겨서 내려왔습니다.
자식들이란 게 이렇습니다.
생각해 보면 장인어른한테 가서도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습니다.
코딱지만한 시간 동안 있다가 왔으면서 아버지한테 갔다 왔니, 장인어른한테 갔다 왔니 하면서 생색을 내게 되겠지요.

큰댁에 잠시 앉아 있다가 큰엄마가 만들어 주신 설탕 들어간 콩국수 한 그릇 시원하게 먹었습니다.
설탕 들어간 국수를 먹어 본지 몇 십 년은 된 것 같습니다.
다시 강진읍으로 나오는 길에 흐드러지게 핀 백일홍을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남도 어디를 가더라도 볼 수 있는, 봄날 벚꽃처럼 흔하디 흔한 꽃이지요.
다음에는 아버지 곁에 한 그루 심어 드려야겠습니다. ~^.^~

♥아버지의 등을 밀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속에 준비해 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질 않는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 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손택수 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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