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데이빗
(Jonathan David)
네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거 알아
사실 나도 그녀가 좋아
그리고 그녀가 널 좋아하는 것도 난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나만 무슨 전쟁터에 떨궈진 것 같은 건 아냐
세상엔 그보다 더 끔찍한 일도 있는걸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내 목마엔 지금도 자리가 있어
네가 데이빗이라면 나는 조나단이었지
넌 지금도 왕이야
실은 나도 그녀 생각을 한 적이 있어
그녀가 찾아오면 내가 달아나는 꿈도 꿨어
난 그녀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했었지, 하기야 뭐 잘못 짚은 거였지만
네가 이런 결과를 바라지 않을 거란 건 알아
하지만 어쨌든 괜찮아
우리가 헤어질 것 같진 않으니까
우리가 결코 사랑을 모르게 될 것 같진 않으니까
그런데 그녀는 널 향해 미소짓겠지
그리고 네 손을 잡겠지
그렇게 넌 사랑에 빠지는 수밖에 없겠지
나도 언젠가는 해내고 말 테니까
네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거 알아
사실 나도 그녀가 좋아
그리고 그녀가 널 좋아하는 것도 난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나만 무슨 전쟁터에 떨궈진 것 같은 건 아냐
세상엔 그보다 더 끔찍한 일도 있는걸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내 목마엔 지금도 자리가 있어
네가 다윗왕이라면 나는 너의 요나단이었지
넌 지금도 왕이야
하나하나 떠올려 보는 사랑의 기억들, 그 속에서
우리가 진지했던 적이 있었냐고?
난 진지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네가 가야 할 때
그 심정은 네가 던지는 돌들에 다 드러나 있지만
난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우리가 헤어질 것 같진 않다는 걸
우리가 결코 사랑을 모르게 될 것 같진 않다는 걸
하지만 그녀는 널 향해 미소짓겠지
그리고 네 손을 잡겠지 그렇게 넌 사랑에 빠지겠지,
다른 방법은 없어
사람들은 말하지
"우리는 영원할 거야"라고
"우리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하지만 난 변했는걸
동네 신문에 실린 너와 그녀의 소식
너희는 곧 결혼해서 여길 떠날 거라는
넌 결혼해서 날 떠날 거라지
탁상시계나 가지고 꺼져
(Take Your Carriage Clock And Shove It)
회의실에서, 평소 과묵하기만 했던 그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생각한다
그는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하자
그의 귀에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그는 줄곧 복종하고
저들의 요구를 참아내는 것밖엔 하지 않았다
그녀는 독사처럼 앉아서는 아무 관심도 없이
시계를 내밀고
그는 받는다
"명예를 생각하면 이래선 안 되겠지만 명예 따위 개나 주라지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언제나 불평만 늘어놓았소
나는 맡은 일을 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당신은 우리가 망가지게 그냥 내버려뒀고"
그는 회의실의 문을 잠갔다
그런 후 오래된 컨트리 곡의 한 장면처럼 몸을 돌렸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테이블 위로 꼿꼿하게 높이 솟은 그는
지금 이 모든 것에 도취되어 있다
"당신은
우리가 일을 호전시켰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를 찾았었소
화재가 나서 우리가 불 속에서 당신을 구해주었을 때도
우리가 한 그 모든 행동에 돌아온 당신의 보답이란 고작
끔찍했다는 말 한 마디뿐"
"당신이 우리 모두를 그토록 혹사함에도 불구하고
밤이 가고 낮이 가고 또다시 밤이 가도록 나는 계속 일만 했소
이제 난 죽을 거고, 당신이 울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니
제발 그냥 날 혼자 내버려 두시오
그리고 당신 눈물은 당신 자신 몫으로나 아껴 두시지
우리는 멀미가 날 정도로 지금까지 충분히 흘려 왔으니까
이제 당신,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 때 빨리 꺼져 줘야겠소"
한 사람의 명예로운 경력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망신스러운 불명예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침묵 속에서 그는 자신의 넥타이를 끄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눈앞에 벌어진 대소동을 지켜보았다
중거리 달리기 선수의 고독
(The Loneliness Of A Middle Distance Runner)
지금 아주 잠시 짬을
내어 올해 우리가 한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해
개는 누워 있고 비는 쏟아지고
나는 또다시 흡연자용 철로 아치 아래에 있어
미래는 화려한 총천연색으로 보이고
그건 바로 행복한 영혼의
피와 혼돈과 부패의 색깔이야
그리고 행복한 영혼은
필드를 달릴 거야
비가 잦아들 때까지
기차표엔 도착지점이 쓰여 있지만
그게 우리가 꼭 나타나리란 뜻은 아냐
철길 저 앞쪽엔 분기점이 있고
우리는 철도원에게 선로를 바꿔달라고 돈을 준 뒤 출발해
미래는 멋지고 경이롭게 보이고
그건 바로 사람들의 상품을 팔려고 꾸미는
비즈니스맨의 음모가 보여주는 경이지만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잖아
아, 넌 신경 쓰지 참, 나도 알아
그래 넌 신경 써, 내가 잠시 깜박했어
미해결인 채 남은 뿌루퉁한 오후에
저런, 넌 네 자신에게 두통만 선사하겠지
그래서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무대에 오른 꿈을 꾸면서 복수를 해
"너 <중거리 달리기 선수의 고독> 본 적 있어?"
그가 경주를 끝내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나는 무대를 나왔어
"지금 봤잖아"
나는 역으로 걸어갔어
오늘밤 네가 날 따라왔으면 좋겠어
lyrics by Belle And Sebastian
translation by Moon Young Sung
작년의 [Fold Your Hands Child, You Walk Like A Peasant]에 이은 벨 앤 세바스찬의 신보가 드디어 이렇게 발표되었습니다. 아, 물론 앨범이 아니라 EP지만요. '벨 앤 세바스찬이 [조나단 데이빗]을 노래한다'라고 인쇄된 이 EP에는 모두 세 곡이 담겨 있는데요, 각각 [jonathan David], [take Your Carriage Clock And Shove It], 그리고 [the Loneliness Of A Middle Distance Runner]이 그것들입니다. 그럼 각 곡을 쓱 한번 훑어볼까요.
Jonathan David
조나단 데이빗. 또는 요나단과 다윗. 에헴, 여기서 잠시 기나긴 인용이 있겠습니다.
다윗: 기원전 1010년에서 약 970년, 이스라엘을 다스린 왕으로 예수의 조상인 이새의 아들이다. 사 울 시대의 인물로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그를 하느님이 선택한 왕으로 만드는 기름부음을 받았다. 궁 정 음악사로 들어간 그는 돌팔매를 던져 블레셋 거인(골리앗)을 죽임으로써 유명해졌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깊은 우정을 나눴으며, 역시 사울의 딸인 미갈과 결혼했음에도 왕의 질투 때문에 계속 추적을 당하고, 사막으로 도망다녔다. 사울이 죽자 다윗은 처음에는 남쪽 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나중에는 북쪽까지 아우르는 왕이 되었다.
사울: 통일 이스라엘 왕조의 초대 임금인 그는 특히 전쟁터의 장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울은 하 느님의 신임을 잃어 왕권을 상실했고, 그 왕권은 다윗에게 돌아갔다. 신경증과 불안에 시달리던 사울은 다윗에 대한 아들 요나단의 우정에 적대적이었고, 여러 번에 걸쳐 다윗을 죽이려 했다(예컨대 다윗 자기 딸 미갈과 혼례를 치른 밤에도).
요나단: 사울 왕의 아들이자 다윗의 친구인 그는 여러 가지 이야기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블레셋사람들에게 나라가 점령되자 사울의 뜻대로 요나단은 이스라엘 해방 전쟁을 이끌어 승리를 거둔다. 이후 그는 다윗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다윗을 위해 갑옷과 무기를 벗어주었다. 그리고 사울에게서 다윗을 보호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설에 의하면 (사울의 암살 음모를 피해) 다윗을 도망가게 한 것 도 바로 요나단이었다고 한다. 블레셋인들에게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자신에게 여 자들의 사랑보다 더 훌륭한 우정을 보여주었던" 사람을 위해 슬피 울었다. 이 우정에 충실했던 다윗 은 자기 집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받아들였고, 자기의 가족 묘지에 요나단의 뼈를 묻어주었다.
이상 『성서문화사전』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 인용해 봤는데요(여기 참조된 원문들은 대부분 구약의 사무엘서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사실 우정과 사랑이 혼재된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성서의 영역을 넘어서 꽤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지요. 나중에 오스카 와일드도 이 일화를 자신의 변론으로 인용한 적이 있으니까요. 이 곡 [jonathan David]은 표면적으로는 조나단과 데이빗이라는 두 청년의 얘기지만 다른 여러 남자들을 놔두고 하필 이 두 이름을 선택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역시 위의 요나단-다윗 왕 일화와 무관하지만은 않습니다.
단, 이 곡은 데이빗(다윗) 쪽이 아니라 조나단(요나단)의 열렬한 우정/애정의 시점이라는 점이 두드러지는데요, 사실 이 곡은 내용상의 관계와 함께 따져볼 때 꽤 재미납니다. 우선 고풍스런 의상과 분장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이 등장한 재킷을 보면, 뒤의 두 사람은 아무래도 다윗과 그의 여자친구/애인이고 앞의 청년이 요나단의 역할인 듯 싶지요 - 이 중 뒤에 선 다윗 역의 남자는 밴드 멤버인 트럼페터 믹 쿡이구요. 그런데 이 곡의 비디오를 보면, 앞서의 다윗이었던 믹은 어느새 조나단(요나단)의 입장이 되어 있고 데이빗(다윗) 역은 보컬인 스튜어트 머독이 맡고 있습니다. 또한 이 비디오에서 조나단의 애정의 대상은 곡과는 달리 데이빗이 아니라 그 두 사람 사이에 선 한 여성이구요. 그리고 믹(조나단)을 누르고 머독(데이빗)이 이 사랑 게임의 승자가 되지요. 이렇게 이 한 곡을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다 보면 이게 과연 요나단-다윗 이야기인지, 영화 『쥘 앤 짐』의 이야기인지 헛갈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밴드 멤버들의 화려한 연기력(이라기보다 능청일까요)이 빛나는 뮤직비디오는 분명 이 곡의 감상을 흥미롭게 교란시키는 추천작이라 하겠습니다.
더불어, 이 곡의 메인 보컬은 기타리스트인 스티비 잭슨이 맡고 있습니다. 지난 "Fold Your Hands Child, You Walk Like A Peasant" 앨범에서의 [Wrong Girl]의 장본인, 기억하시죠?
Take Your Carriage Clock And Shove It
탁상시계나 갖고 꺼져. 좀 심한 말이죠? shove it은 '관둬', '꺼져', '포기해' 등의 의미를 갖는 속어입니다. 상대를 모르고 뱉었다가는 뺨 맞을 표현이겠죠. 이 곡은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상부에서 하라는 대로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일하던 회사에서 어느 날 갑자기 해고당하고 만 어느 성실하고 과묵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평소 별말 없고 점잖던 이 사람도 지금까지 속으로 쌓인 울분을 끝내는 참지 못하고 자신이 회사를 떠나는 그날 이렇게 폭발시켜 버린 것이지요. 인생의 한 단면에 대한 서글픈 폭로라고나 할까요.
저도 하나 폭로하자면, 번역은 저렇게 되어 있지만 carriage clock이란 게 꼭 탁상 시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원래 1800년 경 나폴레옹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이동용 시계로, 마차나 열차의 충격 같은 것에도 영향받지 않고 시계의 항구적 메카니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당시에 최초로 개발된 것이라고 합니다. 크기도 작고 위에는 휴대가 가능하도록 주전자처럼 손잡이가 달린 형태였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시계 공학이 발달하면서 고풍스런 장식적 기능으로만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지요. 현재에도 많은 기념품 가게나 골동품점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인기 아이템이고, 또 오로지 그 장식적인 기능을 위해 옛 모델을 그대로 재현한 것부터 요새의 탁상시계와 진배없는 형태까지 다양하게 현대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시계가 이 곡에서 언급되는 거냐구요? 서구에서는 보통 오랫동안 근속하다가 퇴사하는 사원이 있을 때 공로패 비슷한 것으로 회사에서 하사하는 은퇴 기념품에 이 시계가 단골 품목이라고 하거든요.
The Loneliness Of A Middle Distance Runner
중거리 달리기 선수의 고독. 지금까지 오랫동안 벨 앤 세바스찬의 라이브 명곡으로 회자되어 온 바로 그 곡인데, 이번에야 비로소 이렇게 음반화되었습니다. 이 기타 솔로, 정녕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이 곡은 아마도 『장거리 달리기 선수의 고독(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이라는, 5-60년대 영국 젊은 세대의 분노와 좌절을 표현했고 나아가 영국의 사회주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앨런 실리토우(Alan Sillitoe)의 유명한 소설 작품(이자 그 소설이 실린 단편집 제목)에서 그 타이틀과 맥락을 빌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예전부터 문학/영화 관련 참조가 적지 않았던 벨 앤 세바스찬이니 만큼 별로 놀랄 일은 아니지요.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이 소설에서 주인공 (도둑) 소년은 그 천부적인 달리기 실력으로 인해 자신이 수감된 소년원 소장의 체면을 세워줄 달리기 경기의 선수로 차출되어 나가지만, 그 소년은 그런 목적에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패배한다고 합니다 - 이 사실이 이 곡의 마지막 부분을 어느 정도 설명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덧붙여 말하면 이 소설 작품은 1962년에 영국에서 토니 리처드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데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소설도 영화도 구하기 힘들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영화화된 실리토우의 다른 작품인 카렐 라이츠 감독의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 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 역시 영국 영화사에서 즐겨 거론되곤 하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사족: 벨 앤 세바스찬의 이 곡과는 달리 이 원작의 타이틀 [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를 그대로 갖다 곡을 쓴 다른 뮤지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머나… 아이언 메이든!
이상입니다. 도움이 되는 설명을 드린다는 게 그만 방해가 되는 장광설이나 되지 않았는지 염려스럽군요. 그럼 즐겁게 들으시길. 그리고 원하신다면, 따라 불러도 보시길.
010704. 벨 앤 세바스찬의 어떤(혹은 그때 그) 팬 드림.
사족 1:빨강앨범 첫곡 육상스타(track & field는 육상)에 이어 중거리 달리기가 나오다니 머독이 육상 휀인가요? -.-
최악으로 썰렁해서 죄송(--)(__)
사족2:오늘 퍼플에 갔었는데 벨 새싱글을 보고 멋적어하기만했을뿐 구입하지는 않았어요. 러퍼스 웨인라이트 2집과 베쓰 오튼 1집을 샀는데 아무래도 우진형 싱글 돌리신거 후회할거같아요^^(그래도 결국은 살거예요 하하)
사족3:멋진 해석과 해설의 문영님께 끝없는 감사를:-) 여기 들어오시긴 들어오시나요? 하핫 아참!
사족4:http://alesmusic.com/ 홈페이지가 열렸네요. 다들 한번씩 놀러가요~ :)
(Jonathan David)
네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거 알아
사실 나도 그녀가 좋아
그리고 그녀가 널 좋아하는 것도 난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나만 무슨 전쟁터에 떨궈진 것 같은 건 아냐
세상엔 그보다 더 끔찍한 일도 있는걸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내 목마엔 지금도 자리가 있어
네가 데이빗이라면 나는 조나단이었지
넌 지금도 왕이야
실은 나도 그녀 생각을 한 적이 있어
그녀가 찾아오면 내가 달아나는 꿈도 꿨어
난 그녀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했었지, 하기야 뭐 잘못 짚은 거였지만
네가 이런 결과를 바라지 않을 거란 건 알아
하지만 어쨌든 괜찮아
우리가 헤어질 것 같진 않으니까
우리가 결코 사랑을 모르게 될 것 같진 않으니까
그런데 그녀는 널 향해 미소짓겠지
그리고 네 손을 잡겠지
그렇게 넌 사랑에 빠지는 수밖에 없겠지
나도 언젠가는 해내고 말 테니까
네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거 알아
사실 나도 그녀가 좋아
그리고 그녀가 널 좋아하는 것도 난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나만 무슨 전쟁터에 떨궈진 것 같은 건 아냐
세상엔 그보다 더 끔찍한 일도 있는걸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내 목마엔 지금도 자리가 있어
네가 다윗왕이라면 나는 너의 요나단이었지
넌 지금도 왕이야
하나하나 떠올려 보는 사랑의 기억들, 그 속에서
우리가 진지했던 적이 있었냐고?
난 진지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네가 가야 할 때
그 심정은 네가 던지는 돌들에 다 드러나 있지만
난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우리가 헤어질 것 같진 않다는 걸
우리가 결코 사랑을 모르게 될 것 같진 않다는 걸
하지만 그녀는 널 향해 미소짓겠지
그리고 네 손을 잡겠지 그렇게 넌 사랑에 빠지겠지,
다른 방법은 없어
사람들은 말하지
"우리는 영원할 거야"라고
"우리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하지만 난 변했는걸
동네 신문에 실린 너와 그녀의 소식
너희는 곧 결혼해서 여길 떠날 거라는
넌 결혼해서 날 떠날 거라지
탁상시계나 가지고 꺼져
(Take Your Carriage Clock And Shove It)
회의실에서, 평소 과묵하기만 했던 그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생각한다
그는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하자
그의 귀에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그는 줄곧 복종하고
저들의 요구를 참아내는 것밖엔 하지 않았다
그녀는 독사처럼 앉아서는 아무 관심도 없이
시계를 내밀고
그는 받는다
"명예를 생각하면 이래선 안 되겠지만 명예 따위 개나 주라지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언제나 불평만 늘어놓았소
나는 맡은 일을 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당신은 우리가 망가지게 그냥 내버려뒀고"
그는 회의실의 문을 잠갔다
그런 후 오래된 컨트리 곡의 한 장면처럼 몸을 돌렸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테이블 위로 꼿꼿하게 높이 솟은 그는
지금 이 모든 것에 도취되어 있다
"당신은
우리가 일을 호전시켰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를 찾았었소
화재가 나서 우리가 불 속에서 당신을 구해주었을 때도
우리가 한 그 모든 행동에 돌아온 당신의 보답이란 고작
끔찍했다는 말 한 마디뿐"
"당신이 우리 모두를 그토록 혹사함에도 불구하고
밤이 가고 낮이 가고 또다시 밤이 가도록 나는 계속 일만 했소
이제 난 죽을 거고, 당신이 울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니
제발 그냥 날 혼자 내버려 두시오
그리고 당신 눈물은 당신 자신 몫으로나 아껴 두시지
우리는 멀미가 날 정도로 지금까지 충분히 흘려 왔으니까
이제 당신,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 때 빨리 꺼져 줘야겠소"
한 사람의 명예로운 경력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망신스러운 불명예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침묵 속에서 그는 자신의 넥타이를 끄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눈앞에 벌어진 대소동을 지켜보았다
중거리 달리기 선수의 고독
(The Loneliness Of A Middle Distance Runner)
지금 아주 잠시 짬을
내어 올해 우리가 한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해
개는 누워 있고 비는 쏟아지고
나는 또다시 흡연자용 철로 아치 아래에 있어
미래는 화려한 총천연색으로 보이고
그건 바로 행복한 영혼의
피와 혼돈과 부패의 색깔이야
그리고 행복한 영혼은
필드를 달릴 거야
비가 잦아들 때까지
기차표엔 도착지점이 쓰여 있지만
그게 우리가 꼭 나타나리란 뜻은 아냐
철길 저 앞쪽엔 분기점이 있고
우리는 철도원에게 선로를 바꿔달라고 돈을 준 뒤 출발해
미래는 멋지고 경이롭게 보이고
그건 바로 사람들의 상품을 팔려고 꾸미는
비즈니스맨의 음모가 보여주는 경이지만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잖아
아, 넌 신경 쓰지 참, 나도 알아
그래 넌 신경 써, 내가 잠시 깜박했어
미해결인 채 남은 뿌루퉁한 오후에
저런, 넌 네 자신에게 두통만 선사하겠지
그래서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무대에 오른 꿈을 꾸면서 복수를 해
"너 <중거리 달리기 선수의 고독> 본 적 있어?"
그가 경주를 끝내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나는 무대를 나왔어
"지금 봤잖아"
나는 역으로 걸어갔어
오늘밤 네가 날 따라왔으면 좋겠어
lyrics by Belle And Sebastian
translation by Moon Young Sung
작년의 [Fold Your Hands Child, You Walk Like A Peasant]에 이은 벨 앤 세바스찬의 신보가 드디어 이렇게 발표되었습니다. 아, 물론 앨범이 아니라 EP지만요. '벨 앤 세바스찬이 [조나단 데이빗]을 노래한다'라고 인쇄된 이 EP에는 모두 세 곡이 담겨 있는데요, 각각 [jonathan David], [take Your Carriage Clock And Shove It], 그리고 [the Loneliness Of A Middle Distance Runner]이 그것들입니다. 그럼 각 곡을 쓱 한번 훑어볼까요.
Jonathan David
조나단 데이빗. 또는 요나단과 다윗. 에헴, 여기서 잠시 기나긴 인용이 있겠습니다.
다윗: 기원전 1010년에서 약 970년, 이스라엘을 다스린 왕으로 예수의 조상인 이새의 아들이다. 사 울 시대의 인물로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그를 하느님이 선택한 왕으로 만드는 기름부음을 받았다. 궁 정 음악사로 들어간 그는 돌팔매를 던져 블레셋 거인(골리앗)을 죽임으로써 유명해졌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깊은 우정을 나눴으며, 역시 사울의 딸인 미갈과 결혼했음에도 왕의 질투 때문에 계속 추적을 당하고, 사막으로 도망다녔다. 사울이 죽자 다윗은 처음에는 남쪽 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나중에는 북쪽까지 아우르는 왕이 되었다.
사울: 통일 이스라엘 왕조의 초대 임금인 그는 특히 전쟁터의 장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울은 하 느님의 신임을 잃어 왕권을 상실했고, 그 왕권은 다윗에게 돌아갔다. 신경증과 불안에 시달리던 사울은 다윗에 대한 아들 요나단의 우정에 적대적이었고, 여러 번에 걸쳐 다윗을 죽이려 했다(예컨대 다윗 자기 딸 미갈과 혼례를 치른 밤에도).
요나단: 사울 왕의 아들이자 다윗의 친구인 그는 여러 가지 이야기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블레셋사람들에게 나라가 점령되자 사울의 뜻대로 요나단은 이스라엘 해방 전쟁을 이끌어 승리를 거둔다. 이후 그는 다윗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다윗을 위해 갑옷과 무기를 벗어주었다. 그리고 사울에게서 다윗을 보호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설에 의하면 (사울의 암살 음모를 피해) 다윗을 도망가게 한 것 도 바로 요나단이었다고 한다. 블레셋인들에게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자신에게 여 자들의 사랑보다 더 훌륭한 우정을 보여주었던" 사람을 위해 슬피 울었다. 이 우정에 충실했던 다윗 은 자기 집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받아들였고, 자기의 가족 묘지에 요나단의 뼈를 묻어주었다.
이상 『성서문화사전』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 인용해 봤는데요(여기 참조된 원문들은 대부분 구약의 사무엘서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사실 우정과 사랑이 혼재된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성서의 영역을 넘어서 꽤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지요. 나중에 오스카 와일드도 이 일화를 자신의 변론으로 인용한 적이 있으니까요. 이 곡 [jonathan David]은 표면적으로는 조나단과 데이빗이라는 두 청년의 얘기지만 다른 여러 남자들을 놔두고 하필 이 두 이름을 선택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역시 위의 요나단-다윗 왕 일화와 무관하지만은 않습니다.
단, 이 곡은 데이빗(다윗) 쪽이 아니라 조나단(요나단)의 열렬한 우정/애정의 시점이라는 점이 두드러지는데요, 사실 이 곡은 내용상의 관계와 함께 따져볼 때 꽤 재미납니다. 우선 고풍스런 의상과 분장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이 등장한 재킷을 보면, 뒤의 두 사람은 아무래도 다윗과 그의 여자친구/애인이고 앞의 청년이 요나단의 역할인 듯 싶지요 - 이 중 뒤에 선 다윗 역의 남자는 밴드 멤버인 트럼페터 믹 쿡이구요. 그런데 이 곡의 비디오를 보면, 앞서의 다윗이었던 믹은 어느새 조나단(요나단)의 입장이 되어 있고 데이빗(다윗) 역은 보컬인 스튜어트 머독이 맡고 있습니다. 또한 이 비디오에서 조나단의 애정의 대상은 곡과는 달리 데이빗이 아니라 그 두 사람 사이에 선 한 여성이구요. 그리고 믹(조나단)을 누르고 머독(데이빗)이 이 사랑 게임의 승자가 되지요. 이렇게 이 한 곡을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다 보면 이게 과연 요나단-다윗 이야기인지, 영화 『쥘 앤 짐』의 이야기인지 헛갈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밴드 멤버들의 화려한 연기력(이라기보다 능청일까요)이 빛나는 뮤직비디오는 분명 이 곡의 감상을 흥미롭게 교란시키는 추천작이라 하겠습니다.
더불어, 이 곡의 메인 보컬은 기타리스트인 스티비 잭슨이 맡고 있습니다. 지난 "Fold Your Hands Child, You Walk Like A Peasant" 앨범에서의 [Wrong Girl]의 장본인, 기억하시죠?
Take Your Carriage Clock And Shove It
탁상시계나 갖고 꺼져. 좀 심한 말이죠? shove it은 '관둬', '꺼져', '포기해' 등의 의미를 갖는 속어입니다. 상대를 모르고 뱉었다가는 뺨 맞을 표현이겠죠. 이 곡은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상부에서 하라는 대로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일하던 회사에서 어느 날 갑자기 해고당하고 만 어느 성실하고 과묵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평소 별말 없고 점잖던 이 사람도 지금까지 속으로 쌓인 울분을 끝내는 참지 못하고 자신이 회사를 떠나는 그날 이렇게 폭발시켜 버린 것이지요. 인생의 한 단면에 대한 서글픈 폭로라고나 할까요.
저도 하나 폭로하자면, 번역은 저렇게 되어 있지만 carriage clock이란 게 꼭 탁상 시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원래 1800년 경 나폴레옹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이동용 시계로, 마차나 열차의 충격 같은 것에도 영향받지 않고 시계의 항구적 메카니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당시에 최초로 개발된 것이라고 합니다. 크기도 작고 위에는 휴대가 가능하도록 주전자처럼 손잡이가 달린 형태였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시계 공학이 발달하면서 고풍스런 장식적 기능으로만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지요. 현재에도 많은 기념품 가게나 골동품점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인기 아이템이고, 또 오로지 그 장식적인 기능을 위해 옛 모델을 그대로 재현한 것부터 요새의 탁상시계와 진배없는 형태까지 다양하게 현대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시계가 이 곡에서 언급되는 거냐구요? 서구에서는 보통 오랫동안 근속하다가 퇴사하는 사원이 있을 때 공로패 비슷한 것으로 회사에서 하사하는 은퇴 기념품에 이 시계가 단골 품목이라고 하거든요.
The Loneliness Of A Middle Distance Runner
중거리 달리기 선수의 고독. 지금까지 오랫동안 벨 앤 세바스찬의 라이브 명곡으로 회자되어 온 바로 그 곡인데, 이번에야 비로소 이렇게 음반화되었습니다. 이 기타 솔로, 정녕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이 곡은 아마도 『장거리 달리기 선수의 고독(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이라는, 5-60년대 영국 젊은 세대의 분노와 좌절을 표현했고 나아가 영국의 사회주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앨런 실리토우(Alan Sillitoe)의 유명한 소설 작품(이자 그 소설이 실린 단편집 제목)에서 그 타이틀과 맥락을 빌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예전부터 문학/영화 관련 참조가 적지 않았던 벨 앤 세바스찬이니 만큼 별로 놀랄 일은 아니지요.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이 소설에서 주인공 (도둑) 소년은 그 천부적인 달리기 실력으로 인해 자신이 수감된 소년원 소장의 체면을 세워줄 달리기 경기의 선수로 차출되어 나가지만, 그 소년은 그런 목적에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패배한다고 합니다 - 이 사실이 이 곡의 마지막 부분을 어느 정도 설명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덧붙여 말하면 이 소설 작품은 1962년에 영국에서 토니 리처드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데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소설도 영화도 구하기 힘들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영화화된 실리토우의 다른 작품인 카렐 라이츠 감독의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 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 역시 영국 영화사에서 즐겨 거론되곤 하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사족: 벨 앤 세바스찬의 이 곡과는 달리 이 원작의 타이틀 [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를 그대로 갖다 곡을 쓴 다른 뮤지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머나… 아이언 메이든!
이상입니다. 도움이 되는 설명을 드린다는 게 그만 방해가 되는 장광설이나 되지 않았는지 염려스럽군요. 그럼 즐겁게 들으시길. 그리고 원하신다면, 따라 불러도 보시길.
010704. 벨 앤 세바스찬의 어떤(혹은 그때 그) 팬 드림.
사족 1:빨강앨범 첫곡 육상스타(track & field는 육상)에 이어 중거리 달리기가 나오다니 머독이 육상 휀인가요? -.-
최악으로 썰렁해서 죄송(--)(__)
사족2:오늘 퍼플에 갔었는데 벨 새싱글을 보고 멋적어하기만했을뿐 구입하지는 않았어요. 러퍼스 웨인라이트 2집과 베쓰 오튼 1집을 샀는데 아무래도 우진형 싱글 돌리신거 후회할거같아요^^(그래도 결국은 살거예요 하하)
사족3:멋진 해석과 해설의 문영님께 끝없는 감사를:-) 여기 들어오시긴 들어오시나요? 하핫 아참!
사족4:http://alesmusic.com/ 홈페이지가 열렸네요. 다들 한번씩 놀러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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