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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역사[고대]

삼신상제의 사자使者를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

작성자솟대지기|작성시간13.04.16|조회수179 목록 댓글 0

삼신상제의 사자使者를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

 

 우하량의 삼족기 유물

 

 동북아 역사의 시원문명을 꽃피웠던 홍산문화의 유적지 우하량

 에서는 채색된 상태의 삼족기三足器 문양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삼신三神의 창조변화의 정신이 문화양식으로 전화된 것

 이라 볼 수 있다.

 

 삼족기三足器는 특히 배달시대에 삼신 사상에 뿌리를 두고 문화

 양식으로 나타난  역사정신의 유물이고,  이를 계승한 고구려에

 이르러서는 삼족오三足烏 문양이  역사문화의 중심축을 이루게

된다.

 

<우하량의 삼족기>

 

  

 삼족오는 삼신三神 문화의 소산

 

 삼족오는 삼신상제三神上帝에 대한 숭배 사상을 담고 있다.  삼신사상은 밝음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동방 한민족의

 광명이세光明理世 정신을 나타낸 동방 한민족의 통치정신이고,  삼신의 이념이 집단적인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동

 북아 동이족의 문화양식으로 전화되어 나타난 것은 삼족오의 문양 내지는 유물들을 꼽을 수 있다.

 

 환인천제, 환웅천황, 단군왕검의 국조삼신은 하늘에 있는 천지만물의 주재자 삼신상제를 경배하였고, 역사와 문명

 의 무대에서 삼신의 정신을 계승하여 나라를 건국하고 겨레를 성숙하게 했다. 이때부터 삼신상제는 하늘의 상징인

 ‘태양의 빛’을 뜻하고,  그 빛이 대리자 혹은 삼신상제의 사자로서  태양 새인 삼족오가 자리매김 될 수 있었던 것이

 다.

 

 삼족오는 태양 속에 그려진 세발 달린 까마귀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광명 속에 살면서 삼신의 세계와 인간세계를

 이어주는 신성한 새(神鳥)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 의미를 분석해보자면, 삼 족오은 몸통이 하나(一神)이지만 발은

 세 개(三神) 달린 새로서 하늘과 땅, 인간세계를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삼족오는 신과 인간

 의 세계를 서로 연결해주는 ‘삼신의 심부를꿈 내지는 대리자’ 를 상징한 것이다. 이것은 곧 삼신상제의 직계 자손임

 을 알리는, 천자天子 문화의 비밀이 들어있는 문양이라 볼 수 있다.

 

 

 삼족오의 성립과정

 

 삼족오는 고대 중국의 요서지역 문화와 중원의 채도문화가 만나면서 유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미 기원전4000

 년경의 앙소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기에서부터 여러 가지의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굴되기도 하였다.

 

 

<3수 세계관의 중원 전파...>

 

<앙소 도기의 삼족오...>

 

 삼신의 대리자, 혹은 태양조로서의 삼족오는  중원의 상商, 주周,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근근이 이어지다가 한

 漢나라에 이르러 음양오행론과 결합되면서 남방 화火를 상징하는 주작朱雀으로 변형되거나 봉조鳳鳥 혹은 봉황鳳

 凰으로 변형 발전된다. 그 이후 삼족오의 문양은 고구려에서 화려한 모습으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삼족오 유물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 있는 고구려의 각저총角抵塚이나 무용총舞踊塚의 벽화에는 하늘의 태양을 상징하는 일원一

 圓이 그려져 있고, 그 속에 세발 달린 새가 그려져 있다. 분명 삼신상제의 대리자인 삼족오의 모습이다. 이렇게 삼

 신하느님을 숭배하는 곳곳에는 삼족오 문양이 새겨져 있다.

 

 특히 고구려는 타국과의 전쟁에 임할 때는 천자가 삼신하느님의 후예임을 알리는 삼족오 깃발을 내걸기도 하였다.

 또한 평양의 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뚫음무늬금동장식품’ 이 보여주듯이, 천자의 장식품은 태양 안에 세발

 달린 새를 그려 넣거나 절묘하게 조각해 넣기도 하였다.

  

 

<고구려 오회분 4호묘의 삼족오...>                                 <해뚫음무늬금동장식품 삼족오...> 

 

 삼족오의 형상은 삼신상제의 적자임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한 문화양식이다.  그것은 삼신상제의 신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족오의 문양으로 부활한 고구려의 유물유적은 곧 동북아 지역의 강대한 천자국天子國이었

 음을 대표적으로 드러낸 사례일 것이다.

 

 삼족오 문양의 문화양식은 백제로 넘어오게 되며,  지난 1971년에 처음 발굴된 무령왕릉의 유물들 가운데 ‘환두대

 도’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으로 흘러간 삼족오

 

 이후 삼족오의 문양은 한반도 도래인을 통해서 일본으로 넘어가 성왕盛旺을 이루게 됐다. 일본의 쿠마노 본궁대사

 입구에 걸려 있는 삼족오 깃발이 그 실례이다.

  

<일본 쿠마노 본궁대사의 삼족오...>                               <일본 천왕 즉위식 때 예복...>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1989년 아키히토천황이 등극 의식을 치루면서 입었던 왕의 예복이다.  예복의 소매에

 는 왕을 상징하는 용의 형상과 어깨에는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태양의 상징인 삼족오의 문양과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 형상이 돋보인다. 

 

 왕실 예복의 이러한 문양은 일본 고대의 왕실에서 전통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인바,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의  신

 물을 통해 삼신상제의 적자임을 나타내 보이고 그 권위를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신", 문계석 지음, 상생출판, 174~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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