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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역사[고대]

동이족의 4대 정신을 계승발전시킨 거발한 한웅

작성자여명의북소리|작성시간18.02.01|조회수237 목록 댓글 1

동이족의 4대 정신을 계승발전시킨 거발한 한웅


 

 

거발한 한웅은 만왕중의 만왕이셨던 환국의 안파견 환인이 선포한 동이족(몽골족, 만주족, 한족)의 4대 정신 즉 일신강충, 성통광명, 재세이화, 홍익인간이라는 인류 역사에 길이 빛날 사랑과 자비 그리고 박애 정신을 환국으로부터 훌륭하게 계승 발전시킨 배달국의 초대대인 한웅[=대웅]으로서 불교의 대웅전은 바로 이 배달국[=대인국=청구국]의 한웅을 모신 사당이라는 의미에서 대웅전이라 이름하게 되었다. 우리 역사에서 이러한 한웅 정신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왕조가 바로 고구려인 데 그 결과 고구려는 우리 민족사에서 유일한 정복왕조였고 부여이래 900년간이나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일본의 경도대학의 우에다 교수는 "지금까지의 동양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평양에서 서남으로 24Km 지점에 있는 덕흥리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 때문이다." 거기서 발굴된 사료 때문에 동양사를 새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덕흥리 고분에서 무슨 내용이 발견되었기에 동양사를 새로 써야 한다는 엄청난 말이 나올수 있을까? 

무덤의 주인은 고구려 고국원왕, 소수림왕, 호태왕(=광개토 태왕) 등 3대에 걸쳐 벼슬한 유주자사 진으로서 무덤의 기록이나 벽화로 보아 북경을 포함한 현 중국 대륙의 북서부 일대와 내몽고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관할하는 고관이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고구려의 강역이 한반도의 북부 지역만이 아니라, 중국 동북부에서 내몽고에 이르는 지역까지 세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덕흥리 고분으로부터 동양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동안, 중화사필에 의해 얼마나 많은 우리 역사가 왜곡, 은폐되어 왔는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한사군의 위치, 패수(=현재의 난하), 요하(=현재의 요수;현재의 요하는 구려하이었음)의 위치 등 한 마디로 중화사필에 의해 우리 역사가 얼마나 유린되어 왔는지를 한 번에 알게 해주고 있는 역사적 증거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도강록 중에, "후세사람들이 한사군을 아무 생각없이 무턱대고 평양 근처니 뭐니 하며 압록강 안쪽에다 몰아 넣고, 또 浿水를 그 근처에서 찾아 압록강을 패수라 하거나 혹은 청천강을 패수라 하며, 혹은 대동강을 패수라 하는 바람에 조선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고 하는 대목이 나오는 데 실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는 덕흥리 고분을 비롯하여 여러 자료를 기반으로 동양의 고대사를 재조명하려는 등 더욱 야단인데 정작 그 동안 재야사학자들을 기록사학으로 매도했던 우리나라 실증 사학계에서는 잠잠하기만하다. 물론 실증사학이라 해봐야 유물고증학이 아닌 문헌고증학에 불과한 것으로서 우리 민족의 주활동 무대가 한반도가 아니라 바이칼호에서 한반도 북부 및 연해주에 이르는 대강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물, 유적을 찾아 발로 뛰지 않고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 중국과 일본 학자들이 그네들 역사 위주로 연구해 놓은 사서들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이 주석이나 달며 인용하고 자빠졌으니 어찌 그것을 실증사학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한단고기를 두고, 한국사와 일본사는 히브리, 바벨론, 아카드, 역사의 후손이라 서술하여 고도의 전략적 차원에서 수만권의 주해서들을 한반도에 무료 배포한 "가지마 노보루" 등의 무수한 역사왜곡에 또 다시 말려들지 않으려면, 한국사학계도 실질적이고, 체계적이고, 거시적인 고대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해야 한다. 

근자 일본사학계에서는 한단고기를 평가해 말하기를 "만주와 몽고에서 중국 및 서역까지 비춰주는 주옥같은 보물이라"라고 극찬한다고 한다. 도리어 우리나라에서는 위서니 뭐니 하면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데도 말이다. 일본의 오향씨 등 양심있는 사학자들은 단군조선이 중원을 지배했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구려 때까지만 해도, 인류사에 길이 빛날 한웅 정신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었으니 어찌 찬란한 역사를 펼치지 않았으랴! 

중국과 일본은 역사의 위조와 은폐에 관한 한, 단연 세계제일이라고 해야 한다. 실제로 사마천의 '사기'는 이와 같은 실크로드, 중원지배를 감추기 위한 음모적 역사위조였다. 그래서 한민족의 이름도 한의 이름을 빌린 것에 불과한 것이 라고 역설한다. 한편 한국사학계에서는 부도지, 한단고기, 규원사화를 비롯한 여러 한민족 상고사에 관한 역사서를 위서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연구가 되고 있지 못하다. 식민지시대 한민족 역사왜곡에 힘쓴 일본의 학자들도 할 수 는 없다. 이제 한민족도 자신의 고대문화를 주체적으로 흡수 연구하여 조상들의 정신문화를 되살려야 하겠다. 

단재 신채호나 박은식, 정인보, 안호상, 윤치도 등 몇몇의 재야사학자들이 찾으려했던 한민족의 민족혼을 한국사학 뿐아니라, 전 민족이 민족혼 부활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민족혼 부활운동이란 자민족 위주의 세계주의 표방을 말한다. 민족주의나, 민족혼 부활운동은 결코 국수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의 내용은 한단고기와 부도지를 비롯하여 한민족 고대사의 기록 문헌들에 기초를 두고 미족사학자들의 여러 이론과 주장들을 보편 타당성있게 간추려 서술한다. 

"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 처음 아만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사타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이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을 이루었으니 구한(=구이)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삼성기전 하편-- 

한민족의 기원은 제 4기 뷔름빙하기(15000~10000년전) 이후부터 시작됐다. 마지막 빙하기 이전의 역사는 기록상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전에 만남 아니사타는 지중해 근처의 흑해와 홍해라는 주잔도 있으나, 지금의 소련 영토인 바이칼호수라는 주장이 다수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구한족은 한국을 세웠으며, 백성은 부유하고 많았다. 한민족이 흔히 알고있는 "한인" 은 하느님의 준말이므로 "한임","한님"으로 읽어야 한다. 한임 계서는 천산에 올라 도를 얻으시어 오래 사셨으며 몸에는 병도 없었다. 

구 한족은 천사으로 이주하여, 제 1대 안파견하임, 제 2대 혁서한임, 제 3대 고시리 한임, 제 4대 주우양한임, 제 5대 섯제임한임, 제 6대 구을리한임, 제 7대 지위리한임으로 구성하여 한국을 건설한다. 한국은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리여리의 영토로,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 견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 사납아국, 선비국, 수밀리국의 12한국으로 구성하여, 3301년 동안 한일민족의 첫 국가 형태를 마친다. 

수밀리국과 우루국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문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수밀리국, 우루국과 수메르문경의 관계는 후술하겠다. 한국은 권산을 중심 으로한 3301년의 역사를 끝으로, 1565년의 배달나라의 초대 한웅인 거발한 (신불)한웅에게로 이어진다. 

파미고르고원과 타림분지 (타클라마칸사막)를 중심으로 건설되었던 한국의 말기에 기상 기변과 뜻밖의 흉한으로 민족이동이 일어난다. 한국의 마지막 한임께서는 황태자 황웅에게 천부인 3개를 주면서, 한민족의 우두머리로 삼는다. 한웅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안고, 태백산(강원도의 태백산이 아니고 위수와 황하강 서쪽에 있음)을 중심으로 소도와 천단을 세워, 신시를 건설하여 국호를 "배달"이라 했다. 

우리 말에 양달, 응달하면 햇볕 드는 땅, 그늘진 땅이라는 뜻이 듯이 "배달"이라는 말은 "밝은 땅"라는 뜻으로 '밝은 민족','하늘 민족'을 상기하며, 한님(=하느님)은 천부사상을 그대로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 왜 한민족을 배달민족이라 하는지 의문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제 1세 거발한한응에서 제 18세 거불단 한웅까지 실제로 존재했던 배달나라에서 유래된 것이다. 


1세 한웅천황 또는 거발한 한웅이라 하며, 제위기간 94년에 120세까지 사셨다.

2세는 거불리한웅으로 제위기간 86년에 102세까지 사셨다. 

3세는 우야고한웅으로 제위기간 99년에 135세까지 사셨다. 

4세는 모사라한웅으로 제위기간 107년에 129세까지 사셨다. 

5세는 태우의한웅으로 제위기간 93년에 115세까지 사셨다. 

6세는 다의발한웅으로 제위기간 98년에 110세까지 사셨다. 

7세는 거련한웅으로 제위기간 81년에 104세까지 사셨다. 

8세는 안부련한웅으로 제위기간 73년에 94세까지 사셨다. 

9세는 양운한웅으로 제위기간 96년에 139세까지 사셨다. 

10세는 갈고(독로)한웅으로 제위기간 100년에 125세까지 사셨다. 

11세는 거야발한웅으로 제위기간 73년에 94세까지 사셨다. 

12세는 주무신한웅으로 제위기간 105년에 123세까지 사셨다. 

13세는 사와라한웅으로 제위기간 67년에 100세까지 사셨다. 

14세는 자오지 (치우)한웅으로 제위기간 109년에 151세까지 사셨다. 

15세는 치액특한웅으로 제위기간 89년에 118세까지 사셨다. 

16세는 축다리한웅으로 제위기간 56년에 99세가지 사셨다. 

17세는 혁다세한웅으로 제위기간 72년에 97세가지 사셨다. 

18세는 거불단한웅(단응)으로 제위기간 48년에 83세까지 사셨다. ' 

"삼성기전" 하편. 


1세 한웅천왕은 함인의 뜻을 바다, 신지 현덕에게 명하여, 문자를 만들게 한다. 신지 현덕은 새의 발자욱 모양을 기본으로 녹도문을 만들어 한웅께 진성하였다. 신지 현덕이 만들었던, 녹도문은 인류 역사 기록상 세계 최초의 문자다. 녹도문은 수메르문자에도 영향을 준다. 

5대 태우의 한웅의 아들은 12명이나 있었는데 큰아들인 다의발의 6대 한웅이되고, 12번재 아들 태호 복희씨는 공명사상을 이어받아 8괘를 만든다. 중국 삼황( 황제헌원, 염제신농, 태호복희-편집자 주)의 세변째로 되어있는 태호 복희씨는 분명희 태우의 한웅의 12번째 아들이며, 한민족 ( 동이족) 이다. 태호 복희씨는 이복동생이면서 부부지간인 여와( 여희)씨는 기독교의 절대신인 여호와의 원류가 된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여와(유와,유화)씨를 모시는 사당이 있으며, 중국 종래 <풍속통의> 와 <초사 풍속통> 에는 "천지가 개벽하여 사람이 있지 아니한 데 여와씨가 흙을 두드려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 는 기록이 내려오고 있다. 현 유대교 (기독교)의 뿌리도 한민족의 고대사( 신교문화)에서 출발하여 현대 종교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 8대 안부련 한웅의 말기에 소전은 명을 받고 강수에서 병사들을 감시, 감 독하게 되었다. 소전의 아들 신농은 수많은 약초들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 다. 열산으로 이사하여, 낮에 교역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소 전의 밑에 고아인 공손씨가 있었는데,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하였으므로 헌구로 유 배되었다. 헌원의 무리는 모두 그의 후손이다. 태백일사/삼한관경 본기 제 4 중국의 삼황 중의 한명의 염제신농은 제 8대 안부연한웅 밑에서 신하를 지낸 소전씨의 후예인 동이족이다. 요즘 한의원에 가면 머리에 소의 뿔을 달고 손에 온갖 가지의 풀잎을 들고, 입에 약초를 물고 있는 이가 바로 염제신농이다. 농사 와 한방의 원조이다. 중국 삼화의 첫번째로 일컬어지는 항제 헌원은 소전씨의 미 움을 받아 헌구로 유배를 간 공손 씨의 후손이며, 동이족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 삼황 모두는 동이족이며, 중화족이 아니다. 진시황의 진나라는 진시황이 동이족이므로 동이족의 나라이지 중화족의 나라가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중국을 부를 때 비록 중국의 영어 명칭이 CHIN(진)에서 유래하여 CHINA(차이나)라고 부른다고 하더라도 중국을 지나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삼황이 중화족으로 둔갑 한 것은 중국 중화주의에 입각한 역사왜곡이 분명하다. 제 14대 자오지한웅때, 동방계로 서방족을 대표하는 호아제헌원과 치우천황과의 주도권을 놓고 탁록에서 전투가 일어났다. 동방계는 한임의 명을 바다 신시를 건 설한 한민족의 정통 후예를 말하며, 서방계는 한웅 천황의 출발(민족대이동)이 후 한임께 졸라 뒤늦게 출발한 반고의 후예를 가리킨다. 

동방계는 부권 중심의 사회였으며, 서방계는 모권 중심의 사회였다. 황제 헌원이 동방계이면서 서방계를 대표하게 된 이유는 원 출신은 동방계였으나, 모권사회인 서방계로 데릴사위로 가면서 서방계의 우두머리가 된다. 치우천황을 보고 관자가 말하기를 "천하의 임금이 싸움을 할때, 한번 노하면 시체가 들에 가득했다." 하고 말하였다. 

한민족의 역대 천황중 치우천황은 용맹하였다. 전투 도중 치우비장군단이 서방계의 후방까지 부리하게 진격하여, 전결하였다. 치우천황은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또, 철로 칼, 창, 쌍지창들을 말들어 사용하였으며, 한민족이 동이족으로 불리게 된 쇠로 된 큰 활 (다탄두식)을 사용하였다. 전하는 야사에 의하면, 돌로된 방아공이가 피바다에 의해 흘러갔다는 전투의 치열성을 말해준다. 

고대 조선은 본래 숙신으로서 숙신의 중국식 발음이 주우신인데 이는 치우신, 추신, 주신, 조선으로 변화된 것으로서 "치우의 영역"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여겨졌던 신시의 태평성대는 풍요로움이 더해질수록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질투와 시기로 얼룩져 급기야 배달족의 마지막 한웅, 거불단은 민족의 정기를 보존 하기 위해 외부인들의 신시입성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그 당시 신시는 주변의 이민족들과 외북 세력들이 암세포처럼 번져있었고, 이와 결탁한 배신자들의 반란으로 폐허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들 중 가장 큰 세력은 그 탁록벌판의 전투때 치우에게 패한 황제 공손 헌원의 후손들로 민족간의 영토분쟁과 잇권 다툼으로 배달민족과 견원지간 처럼 지내던 중국민족들이었다.거룩한 마지막 한웅은 신시를 민족의 정기를 보존하는 종교적 성지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사대문을 어느 공간의 차원에 봉인하고 이민족들의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이때 따라나선 고조선의 개국조이자 초대 단군인 왕검은 전세를 뒤집고 진정한 의미의 후계자로써의 정토성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신시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이미 신시는 저 공간 너머로 사라진 신시의 입구를 끝내 찾지 못한다.단군 왕검이 동쪽하늘을 향해 세 번 크게 절하고 마지막 한웅인 거불단이 남긴 삼부인을 땅에 내려놓자 3일 동안의 어둠이 시작되었다. 

어두운 하늘의 저편에서 하얀점이 생기고, 그 광원이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가며 다 시 태양이 어둠의 그림자를 몰아내기 시작하였다.검은 장막 사이로 태양의빛이 동쪽의 먼 땅을 비추었다. 배달족은 빛이 가리키는 동쪽을 향해 한없이 걸었다.그리고 마침내 큰 활 을 어깨에 맨 건장한 사내의 무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찬아낸 땅. 

아! 아사달(=아침 땅, 아침의 나라; 아사=아침, 달=땅)!!! 

거대한 장강과 산맥이 아래로 펼쳐진 거대한 평원, 마치 푸른용이 여의주를 물고 동쪽으로 크게 움직여 나가는 듯한 자세였다. 이들이 이때 도착한 시각은 마침 해가 뜨는 때였고, 해는 마치 이들의 발 아래서 솟아오르는 듯 하였다. 마치 이 곳이 해가 뜨는 곳,아침의 땅 처럼 느껴졌다. 단군이 이 곳을 그래서 아사달,"아침의 땅" 이라 부르고 이 곳에 정착하여 새로운 개척지로 정하였다. 

처음의 신시 주민들로만 구성되었던 개척자들의 무리들은 다른 지혜로운 사람들이 행동을 같이 함으로 더욱 더 큰 힘을 얻게 되었다. 축성에만 장장 10년. 많은 사람들이 감격의 눈 물을 흘리며 8대문이 비로서 활짝 열리는 기쁨을 나누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 려 세운 아사달의 완공을 보고 만 것이다. 초대 단군인 왕검은 지난 오해와 질시의 역사를 바로잡고자 아사달을 개방하여 모든 거룩하고 성스러운 땅의 주민들이 함꼐 하도록 하였다. 

전쟁을 피해 아사달로 온 사람들, 새로운 꿈과 희망을 찾아 온 사람들, 모두들 그들의 얼 굴 표정은 환히 빛나고 있다. 대립과 갈등의 역사 구조에서 화해와 사랑의 역사, 본격적인 의미의 인간의 역사가 이 조용한 아침의 땅 "아사달"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오! 아사달!!! 불완전하지만 끊없이 노력하는 인간들만의 역사시대가 열린것이다.! 

한편 오늘날 기를 훈련하는 단학이라는 수도학이 있는 데 이것의 기원은 거발한 한웅이 배달국을 열기 이전에 동이족이 수립한 한국연방(桓國聯邦)에서 유래한다. 즉 한국의 초대 한님이셨던 안파견(=아파기,아보기,아버지) 한인께서 "인간은 누구에게나 인간의 실체인 신성(神性 혼, 自我)가 있다"는 일신강충의 사실을 깨달으시고 이것에 터잡아 신성을 갈고 닦는 수행법을 권장하였는 데 그것이 '신선도(神仙道)’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왔으며 신선도란 '신선(=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뜻이다. 

이 깨달음의 법은 신시 배달국을 세운 제 1세 한웅천황(거발한 한웅)에게 전해졌으며 한민족의 건국이념이 들어 있는 3대 경전인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을 통하여 후대에 전달되었다. 

단군조선 제 1대 단제(단군왕검) 때에는 단학이 집대성되고 널리 보급되어, 우리 민족은 선도를 통해 심신의 단련뿐 아니라 깨달음을 추구하며 살았고, 깨달음의 문화를 꽃피워 이웃의 국가나 종족들에게 전했다. 

         (출처)http://www.khaan.net/baikal/man/geobalh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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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청아(淸兒) | 작성시간 18.02.01 깨달음의 문화를 꽃피워 널리 세계를 이롭게 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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