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의 문장
석전 김경배
숲은
초록으로 쓴 오래된 원고다
나무는 굵은 문장이 되고
바위는 묵직한 마침표가 된다
그 사이
아무도 읽지 않는 여백에
이끼가 자란다
한 장의 비가 내릴 때마다
이끼는 물의 언어를 받아 적고
한 줄기 바람이 지날 때마다
침묵의 교정을 본다
높이 오르지 못한 초록이
낮은 곳을 가득 채우며
세상을 완성한다
꽃은 환한 감탄사로 피고
단풍은 붉은 쉼표로 지지만
이끼는 끝내 지워지지 않는
작은 밑줄 하나
썩어 가는 나무조차
품어 안는 그 푸른 손길
죽음의 문장 끝에서도
생명은 다시 이어진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숲이 이끼를 키운 것이 아니라
이끼가 숲의 시간을
천천히 필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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