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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시간

너의 부모가 태어나기 전 너의 얼굴, 한 손으로 치는 박수 소리

작성자여명의북소리|작성시간21.02.03|조회수82 목록 댓글 2

'나' 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쇼,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나"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삶의 본질을 뜻합니까?

- 허먼 샌더,

 

 

"나는 누구인가?"는 사실 질문이 아니다.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는 답할 수가 없다.

이 질문은 장치이지 질문이 아니다.

이 질문은 만트라로 사용한다.

내면에서 계속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을 때

그대는 대답을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마음은 많은 대답을 내놓겠지만 그 대답을 거부해야 한다.

 

마음은 계속 말할 것이다.

"너는 삶의 본질이다. 너는 영원한 영혼이다. 너는 신성이다."

 

모든 대답을 거부해야 한다. 네티 네티(NETI NETI)

계속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마음이 제공하고 궁리하는 모든 대답을 거부하고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못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질문도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대답을 거부하면 질문은 더 이상 버틸 지지대가 없다.

그대로 무너지고 사라진다. 질문도 사라질 때 그대는 안다.

하지만 그렇게 아는 것은 대답이 아니다. 존재적 경험이다.

 

그 경험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 없으며 무슨 말을 해도 틀릴 것이다.

말을 해봤자 거짓이다.

그것은 궁극의 신비이며 표현할 수도 없고 정의할 수도 없다.

그것을 정확히 묘사할 말은 없다.

"삶의 본질"이라는 문구도 적당하지 않다. "신"도 맞지 않다.

어떤 말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것의 속성이 표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대는 안다.

씨앗이 성장하는 법을 아는 것처럼 바로 그렇게 안다.

교수가 화학이나 물리학, 지리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처럼 아는 게 아니라

꽃봉오리가 이른 아침 햇빛 속에서 어떻게 열리는지 아는 것처럼 그렇게 안다.

성직자가 신에 대해 아는 것처럼 아는 게 아니다.

성직자는 계속 "대해서, 대해서" 알며 주변만 맴돈다.

 

지식(knowledge)은 주변을 맴돌지만 앎(knowing)은 직접 관통한다.

존재를 직접 관통할 때 분리된 존재로서 그대는 사라진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는 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앎이 존재한다.

앎이란 어떤 것에 "대하여"가 아니다. 그대가 앎 자체이다.

 

샌더, 그러므로 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나"가 무엇을 뜻하는지 말할 수 없다.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그대를 알려지지 않은 것, 도표로 만들 수 없는 것,

마음에게 아무 쓸모가 없는 것으로 이끌기 위한 장치이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뿌리를 자르는 검이다.

결국 무심의 침묵만이 남는다.

그 침묵 속에는 질문도, 대답도, 아는 자도, 알려지는 것도 없다.

오직 앎만이, 경험만이 있다.

 

그래서 신비가들은 그 경험을 표현하기가 아주 어렵다.

많은 신비가가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슨 말을 해도 틀리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말 하는 순간 그 말은 잘못된다.

말을 한 신비가들은 이런 조건을 달았다. "내가 하는 말에 집착하지 말라."

 

노자는 말했다. "진리를 말하면 그것은 이제 진리가 아니다."

무슨 말을 하는 순간 그것은 가짜가 된다. 그것을 배신한 것이다.

그것은 아주 친근한 앎이며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는 마음이 만드는 모든 대답을 자르는 검처럼 작용한다.

선의 사람들은 그것이 다른 공안과 같은 공안이라고 할 것이다.

공안은 많다. 유명한 공안도 많다.

 

이런 공안이 있다. "너의 본래 얼굴을 찾아라."

 

제자는 스승에게 묻는다. "본래 얼굴이 무엇입니까?"

 

스승이 대답한다. "너의 부모가 태어나기 전 너의 얼굴이다."

 

그러면 그것에 대해 명상하기 시작한다.

"너의 본래 얼굴이 무엇인가?"

당연히 그대의 모든 얼굴을 부정해야 한다.

많은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어린 시절의 얼굴, 젊을 때의 얼굴, 중년의 얼굴, 늙었을 때의 얼굴,

건강할 때의 얼굴, 아플 때의 얼굴.... 온갖 얼굴이 줄지어 나타날 것이다.

그 얼굴들이 눈앞을 지나가며 "내가 본래의 얼굴이다."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계속 부정해야 한다.

 

모든 얼굴을 부정하면 빈 공간이 남는다.

이제 본래의 얼굴을 찾은 것이다. 비어있는 상태가 본래의 얼굴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궁극의 경험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Nothingness) 아니, 더 정확한 표현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NO-THINGNESS) - 그것이 그대의 본래 얼굴이다.

 

유명한 공안이 또 있다. "한 손으로 치는 박수 소리."

 

스승이 제자에게 말한다. "가서 한 손으로 치는 박수 소리를 들어라."

 

이것은 아주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한 손으로는 박수 소리가 날 수 없다.

스승도 알고 제자도 안다.

그런데도 스승은 "가서 그에 대해 명상하라."고 한다.

제자는 따라야 한다.

 

제자는 한 손으로 치는 박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한다.

제자의 마음엔 많은 소리가 들린다.

새가 노래하는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제자는 즉시 스승에게 달려간다.

 

"들었습니다! 흐르는 물소리... 그것이 한 손으로 치는 박수 소리 아닙니까?"

 

그러면 스승은 제자의 머리를 세게 때리고 말한다.

"바보야! 돌아가서 더 명상해라."

 

제자는 명상을 더 하고 마음에서 새로운 대답이 나온다.

"바람이 소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소리 - 분명 이것이 답이다."

 

제자는 급히 달려간다! 모든 사람이 급하다.

제자는 참을성 없이 스승의 방문으로 달려간다.

약간은 걱정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이게 답이라고 생각하며...

 

그리고 제자가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스승이 때린다!

 

제자는 깜짝 놀라 말한다.

"너무 하십니다! 단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제가 틀린 겁니까? 왜 때리십니까?"

 

스승이 말한다.

"네가 말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너는 대답을 가져왔다. 그것만으로도 네가 틀렸다는 것은 충분히 확인된다.

정말로 찾아냈다면 오지 않을 것이다. 올 필요가 없으니까.

그땐 내가 갈 것이다."

 

몇 년이 걸릴 때도 있다.

그러면 어느 날 그 일이 일어난다. 답이 없는 것이다.

처음에 제자는 그 질문에 답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지적인 앎이다.

이제는 깊은 곳에서 안다. "답은 없다!" 모든 답이 증발했다.

 

그리고 모든 답이 증발했다는 확실한 표시는 단 한 가지, 질문도 증발할 때다.

이제 제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다. 명상도 하지 않는다.

"무엇이 한 손으로 치는 박수 소리인가?"라는 질문도 잊었다.

질문은 이제 없다. 순수한 침묵이다.

 

길이 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엔 내적으로 연결된 통로가 있다.

이제 스승이 제자에게 달려가서 문을 두드린다. 제자를 안고 말한다.

 

"그래 그것이 일어났는가? 이것이 그것이다!

답도 없고 질문도 없다. 이것이 그것이다. 아, 이것!“

 

ㅡ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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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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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여명의북소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2.03 본래의 나
    내면의 소리
    감각이나 생각이 아닌 실체로...
  • 작성자바이칼 | 작성시간 21.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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