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2018-05-31 작성자 문화재청
조선시대에 댓글이 있었다고?
이런 댓글이 조선시대에도 성행했다. 세책점(貰冊店,도서 대여점)에서 빌려 읽던 소설책 속 낙서가 대표적 이다. 책의 표지나 속지, 본문 속 여백 등 공간이 있는 곳 어디에든 낙서를 가해 놓은 것이 보이는데, 거기서 당대 독자들의 비평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 세책본 소설에 대한 독자 반응뿐 아니라 당대인들의 관심사와 의식 상태까지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세책본에 적힌 댓글들은 세책(도서 대여)을 매개로 한 공론장(公論場)과 같았다고 할 것이다. 일정한 주제에 대한 비판적 댓글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실물이 전하는 세책 소설만 해도 총 90여종에 이르고, 여기에 남겨진 낙서만 해도 1,500여 건이나 된다.(유춘동, 2015) 세책본 소설 속 낙서야말로 책 대여자가 책을 매개로 남긴 의견, 곧 아날로그 댓글과 같다.
조선 후기 세책본 댓글 요지경
그렇다면 세책본 소설에 담긴, 그 많은 낙서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이를 몇 가지 유형으로 대별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보인다.
첫째, 책 주인에게 대여료가 비싸다거나 일부로 분책해 돈 버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며 소설책 자체에 불만을 토로하는 ‘불평형’ 댓글이 그러하다. • 책 주인 들어보소. 이 책이 단권인 책을 네 권으로 만들고 남의 재물만 탐하니 그런 잡놈이 또 어디 있느냐? • 이 집 책을 세 번만 갖다 보면 책 보는 사람의 집 기둥뿌리가 간 데 없고 네 번만 보면 거지 되어 쪽박을 차고서
둘째, ‘재미는 있으나 잘못된 글자와 낙서가 많으니 다시 보수하라’는 식으로 세책업자를 상대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칠 것을 주문하는 ‘훈계형’ 댓글도 적지 않다. • 이 책 주인 보소. 이 책에 낙서가 많으니 다시 보수하여 세를 놓아 먹거라.
셋째, 훈계형 글 뒤에는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성 욕설이나 비판이 뒤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 주인의 조상이나 모친을 들먹이거나 다른 고객을 대상으로 궤변에 가까운 욕설을 가하는 ‘욕설형’ 댓글이 많다. 이때 욕은 성(性)적인 것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 이 책 주인은 볼지어다. 책이 재미있어 잘 보았다마는 책 주인의 모(母) 생각이 절로 나서 기별하오. 니 부디 네 어미를 단장시켜서 이 글씨 쓰신 양반에게로 시집보내라.
넷째, 음화 등 저속하고 풍자 가득한 그림으로 욕설을 대신하는 ‘음화형’도 있다. 남자의 성기를 그린다거나 인형극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하는 나체 인형인 홍동지를 그려 놓고 ‘조그마한 홍동지’, ‘큰 홍동지’라고 적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 그 한 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중 화장실이나 대학 화장실의 벽과 문에 온갖 음화와 욕설, 그리고 사회 비판 메모 등이 유행했었는데, 그 내용과 낙서 심리가 세책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섯째, 오늘날 인터넷상의 댓글마냥 이전 사람이 남긴 낙서에 대해 꼬리를 물고 답을 하거나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의 ‘리플형’도 있다. 예를 들어, ‘이 책 보는 사람 개자식’과 같은 욕이 많이 보이는데, 여기에 이어 ‘이것 쓴 사람 개자식’이라 쓴다거나 ‘이 글시 쓴 자식은 개자식의 자손이니 누구든지 그리 아시오’라거나 ‘만약 이 낙서 보고 욕하는 놈은 내 아들이라’는 식으로 조금씩 말을 바꿔가며 댓글에 대해 댓글을 다는 표현이 그렇다.
여섯째, 당대 인물과 사건에 대해 시사적 의견을 개진한 ‘시사형’ 댓글도 적지 않다. 시사성이 강한 댓글은 대개 1910년 경술국치 이전 시기에 집중적으로 달린 것으로 보인다. 지식인 또는 당대 정세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이들이 세책본 소설 지면을 적극 활용해 여론 조성과 함께 계몽을 내세웠다. • 차시(此時)가 하시(何時)오? 약육강식하고 우승열패하는 이십 세기라 하노라. (중략) 지금 세계는 강한 자에게 권리를 다 뺏기기 쉽거늘 너는 어찌하여 농상공업을 다 버리고 이따위 되지 못한 책세를 노아 먹느냐. • 우리 대한국 이천만 동포들아. 언제나 자주 독립하여 일본을 함몰하여 다 죽이고 언제나 대한 동포끼리 살어 볼가. 이 책 보는 동포들은 이 글을 보고 아무쪼록 정신을 차려서 일본을 다 죽이고 삽시다.
일곱째, 낙서라고 하지만 글씨 연습을 한다거나 유행가를 적거나 편지(서간) 내용을 옮겨 적는 식의 메모 또는 글쓰기 연습 수준의 댓글들도 자주 보인다. 소설책 제목을 열거해 놓는다거나 ‘가갸거겨’를 반복적으로 적 기도 하고, 일본어나 영어 등 외국어로 간단한 단어나 무의미한 표현을 적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당대에 유행하던 노랫말을 적어 놓는다든지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인 ‘쑥대머리’나 잡가 『유산가』처럼 당대 하층민 사 이에서 인기 많았던 대중가요 가사를 적기도 했다. 편지 쓸 때 자주 사용하는 관습적 표현을 연습 삼아 적어 놓은 것들도 있다. • 일기 고롭지 못하온대 존체 안강하옵시며 택내 제절이 두루 안강하옵신지 쥬야 궁금이외다.
여덟째, 세책본 소설책이 낙서와 음화의 공론장이 되는 것을 세책업자가 가만 둘 리 없었다. 낙서 많은 책 자체는 상품 가치가 떨어질뿐더러 댓글로 개진된 비판적 내용에 대해 일정한 해명이 필요하다 싶어 세책업자가 직접 나서서 댓글에 대해 반격을 가했다. 댓글에 대한 일종의 재반박으로 세책업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세책 고객 중에도 낙서가 심하다 판단 했는지 고객 입장에서 자정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하는 글도 보인다. • 이 책에다가 욕설을 쓰거나 잡설을 쓰는 폐단이 있으면 벌금을 낼 것이오니 이후로 깨끗이 보시고 보내주소서. • 이 세책 보는 사람들은 곱게 보시고, 책에다가 낙서하지 마시고, 책에다가 칙칙하게 글씨 쓰지 마시고, 무식하게 욕설을 기록지 마시기를 천만 비옵니다. 그리고 관민 아사하는 지경에 어찌 이야기책만 보시오.
댓글, 성숙한 의사소통 문화의 척도
이 밖에도 댓글의 내용과 성격은 다양하다. 이들 낙서와 음화는 저작권 개념이 없고 작자미상인 책을 빌 려다 읽던 세책 독서의 익명성이 초래한, 독자 일반의 가감 없는 의식 표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한적이지만 향유자 쌍방 간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일정하게 사회적 반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인터넷 댓글과 상당 부분 오버랩된다. 필사자가 필사 중간, 또는 말미에 자신의 소회를 밝히거나 작품 내용에 대해 일방적으로 품평을 가한 것도 있다.
댓글을 다는 심리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다만 인터넷상이나 세책본 소설책에 댓글을 다는 것은 익명성에 기대어 자기 의견이 지지 받기를 바라는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대면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의사 표출을 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그러나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이, 악의적으로, 개인의 분풀이용으로 무책임하게 댓글을 다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의사소통 문화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댓글 다는 문화를 통해 조선 후기 신분 사회와 21세기 한국 사회가 여전히 닮은꼴은 아닌지 성찰해 볼 일이다.
글. 이민희(강원대 국어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