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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희 <주부·평택 공동육아협동조합 회원> |
2002년 월드컵을 시작으로 온 국민의 축제가 되어 온 월드컵. 그러나 내게 월드컵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로 이미 시들해져 있다.
독일 월드컵이 열리던 2006년 6월에는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 옆에서 살고 있었다. 붉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밤새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연일 들려오는 평택 대추리 싸움 소식에 마음이 많이도 불편했었다.
미군기지 활주로를 옆에 낀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던 나는 철조망을 따라 미군들이 버린 쓰레기 속에서 아직 분냄새가 남아 있는 화장품 뚜껑을 가지고 소꿉장난을 하며 놀았다.
동네 오빠들한테 뜻도 모르는 ‘기브미 쵸코렛’이라는 말을 배워 함께 깔깔대기도 했던 것 같다. 전투기가 지나갈 때 마다 잠자는 어린 동생들의 귀를 꼬옥 막아주어야 했고 이미 헐값에 수용된 땅에 기한을 연장하며 농사를 짓고 계시는 아버지의 깊은 시름에 대해 누구도 화 내지 않는 삶을 보면서 그렇게 나도 화를 잘 못내는 어른이 되어갔다.
대추리가 불편했던 것은 화 낼 줄 몰랐던 우리 부모님들의 삶에 대한 피하고 싶었던 내 유년의 기억이다.
2002년 6월13일. 그때 나는 거리에 있었다. 아마도 그날 한국, 포르투갈 전이 열렸을 것이다. 어린이집을 함께 보내는 부모들과 평택 시내에 모여 축구경기도 보고 거리에 나가서 밤새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쳤다.
그러던 중 미선이, 효순이가 장갑차에 치여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타깝긴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촛불집회가 아닌 TV앞에서 그해 6월을 보냈다.
반미구호를 외치는 것도 부당한 소파(SOFA)협정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에도 나와 내 부모들의 삶은 이미 너무 패배의식이 짙어 있었다. 부당한 것이 세상에 그것뿐이랴 했다. 그런데 처벌받을 줄 알았던 미군2명이 무죄판결을 받자 나는 비로소 격분했다.
미선이, 효순이를 다시 만난 건 판결이 난 겨울이다. 당시 나는 대안 교육을 공부하면서 초등학교 아이들의 방과후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 아이들에게만은 패배의 역사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내 이득이 없으면 나서지 말고, 적당히 세상 따라가면서 살라고 할 수 없었다. 어린이집 부모들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촛불집회를 다니고 나도 잘 몰랐던 SOFA협정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송년잔치 때 함께 준비해서 올린 공연이 ‘점아 점아 콩점아’ 라는 노래극이다. 이 노래는 1979년 부마항쟁이후 경상도에서 구전되어 온 노래라는데 모두를 남이 아닌 자기의 피붙이로 여기는 마음이 담겨 미선이 효순이 진혼가로 불렸다.
촛불을 들고 한 아이가 한 소절씩 부르면서 무대로 입장하고 나중에 모두 함께 합창을 했다. 평소에는 천방지축이었던 아이들이 그 공연을 준비하면서 고맙게도 마음을 모아 미선이, 효순이를 함께 추모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이제 미선이, 효순이 만한 나이로 이쁘게 잘 자라주었다. 홈스쿨을 하는 아이들도 있고 대안학교에 진학한 아이, 외국에 유학 가 있는 아이, 그리고 현실의 공교육 속에서도 연꽃처럼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내 딸아이도 이제 미선이, 효순이처럼 꽃 같은 소녀가 되었다. 6월 13일 오늘, 미선이 효순이 부모들은 지금 아이들 제사상에 올릴 밥을 짓고 있을까?
해마다 더 애달프게 추모의 마음의 모아지고 있는 이 아이들을 위해 2012년 10주기를 맞아 미군이 세운 그때의 추모비가 아닌 우리들의 추모비를 건립한다는 메일이 와 있다.
추모비 건립에 참여한 이들을 보니 정당이나 단체도 있지만 동네 친구, 동네 어른, 주민 등의 참여가 애틋하다.
죽음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 이 아이들의 죽음을 잊지는 말자고 말하고 싶다. 죽은 이들은 늘 살아있는 자들의 삶을 이렇듯 채찍질한다. 그래서 모든 이의 죽음은 숭고하고 애달프다.
2010년 6월. 이미 강자들의 것이 되어 버린 월드컵 무드에 이번에도 나는 쉽게 달아오르지 못할 것 같다. 민족과 국가라는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군사, 경제 질서의 체계에 ‘애국’같은 감정을 덧붙혀 ‘공동체’인양 하는 환상에 빠지고 싶지 않은 것이 내가 월드컵에 흥미를 못갖는 이유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이라고 하는 축구!
손을 쓰지 않는 유일한 구기종목으로서 가장 민중적이고 공동체적인 경기 축구! 축구를 통해 저항과 단결을 도모했다는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20세기 이후 분열과 반목으로 혼란스러웠던 아프리카 민족주의 운동에 축구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경기임에 틀림없다.
축구를 사랑한다면 승자의 환호속에 묻힐 패자들의 상처도 생각할 줄 알고 누군가를 부당하게 패배하도록 만드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는 있어야 하겠다. 이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우리가 그 아이들의 어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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