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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의 완성이라고 해서 무아의 체(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작성자덕광(지등화)|작성시간26.06.10|조회수34 목록 댓글 0

무아의 완성이라고 해서 무아의 체(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 게송을 해석해드리겠습니다.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세상이치 알고 보면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자성무소유라. 이건 무아(無我)의 완성을 이야기합니다.

자성(自性)은 무슨 말이냐?

이게 대단히 어려운 용어입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돼요.

박사학위 받은 사람, 지금까지 그 어떤 학승이나 큰스님들도

이걸 완벽히 몰라요.

자, 이렇게 까지는 자성(自性)을 알아요.

본래로 청정하고 가없는(한량없는) 공덕을 갖추고 있고,

팔정도 육바라밀 등 여러 수행법으로 공부할 때 얻을 수 있는

그 모든 공덕이 다 갖춰져 있단 말이어요.

일찍이 난 것도 없고(나지도 않았고) 또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이거 중요한 거예요. 자성이 그렇습니다.

난 것도 아니고 죽을 수도 없어요.

불생불멸(不生不滅)이어요.

선(善)도 없고 악(惡)도 없고 나(我)도 없고 너도 없고

허공같이 텅 비어 있고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생각이 끊어져요.

심행처멸(心行處滅)한, 그러면서 있다 없다를 초월해 있는 사람들

개개인의 마음자리를 자성이라고 합니다.

거기까지는 압니다. 거기까지는 아는데

그 이상 자성에도 체(體)가 있다는 것은 몰라요.

영혼체이지요. 자성에도 체가 있다는 것은 몰라요.

그래서 이런 자성은 무소유라. 그 자성은 무소유라.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무소유(無所有),

여러분 그 어느 큰스님의 한평생을 들어보니까 무소유로 살았더군요.

그러지요? 많이 들어왔지요? 무소유로 사신 분이다.

가진 것이 없어. 무소유, 소유한 것이 없어.

가진 것이라고는 기껏 누더기 옷 한 벌하고 두루마기하고

발우하고 수저 등 그것밖에 없더라. 무소유로 살았더라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보다도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무소유는 어떻게 해석해야 되느냐?

세상 법(諸法)을 공(空)으로 봐야 돼요.

다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공(空)으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집착함이 없어요. 착(着)이 없다 그겁니다.

여자를 봐도 착이 없고 돈 뭉치를 봐도 착이 없어요.

권력 명예 지위 등에 착이 없어요.

대통령이 ‘당신 내일부터 총리해주시오.’하고 전화해서

간곡히 청하면 이 귀로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해서

물에 가서 씻어버릴 정도예요. 알겠습니까?

명예 권력 지위에 대해서 조금도 욕심 내지 착이 없어요.

착이 없으려면 욕심이 없어야 되는 거요.

이 육신에 대한 착도 없어요.

중생은 이 육신에 대한 애착이 제일 강합니다.

이 육신에 대한 애착도 없어요.

산적이 ‘돈 없으면 네 목이라도 내놓으라.’고 하면

‘나 돈 없으니 내 목을 가져가시오.’라고 해요.

어린 아이처럼 착이 없어요. 등등.

이 세상 모든 것에 착이 없어요. 이게 무소유예요.

그러니까 아! 그 큰스님 방에 갔더니 라디오도 있고 TV도 있고

핸드폰도 있고… 뭐 없는 것 없이 살던데 뭐.

그러나 그런 가운데 착이 없는 거예요.

일체에 착이 없으면 그게 진짜 무소유라. 자성은 무소유라.

우리의 마음자리는 그래요. 그렇다 그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시해법성(如是解法性)

여기서 자성과 법성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 정도로 가서 깨치면(그 정도로 가면, 그 정도의 법위에 가면)

 

즉견노사나(卽見盧舍那)

부처님을 직접 본다 그 말이어요.

그때 이제 진짜 부처님을 본다 그 말이어요.

 

이 마음은 허공같이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지닌 것이 없다.

이 마음, 성자의 마음 붓다의 마음에는 그 어떤 곳에도 착이 없어요.

그러니까 불과를 증한 붓다는 마음이 항상 허공과 같습니다.

청정하고 허공 같은 거예요. 붓다는 그래야 돼요.

이 거짓 몸뚱이의 행복, 여러분 돈을 하루에 그냥 일확천금을 얻었단 말이어요.

기막힌 세상의 미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단 말이어요.

또 평양감사를 하루아침에 임명 받았단 말이에요.

그 행복은 다 오래가지 않아요.

왜냐?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갈 수 없어요.

그래서 수행을 많이 한 분들은 일체 법을 공(空)하게 봅니다.

집착이 없어요. 그런 의미입니다. 이걸 무아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자성무소유의 경계를 무아의 완성이라고 봅니다.

무아의 완성이라고 해서 무아의 체(體)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32상 80종호로 거룩하고 장엄한 몸으로 계셔요.

그걸 꼭 알아야 돼요. 앞에서 말씀드린 자성의 체,

부처님의 그 거룩하고 단엄한 상이 있습니다. 불신(佛身)입니다.

자, 용수(龍樹)는 그것까지 없다고 했어요.

전부 개공(皆空)이니까. 아직 멀었지요.

무착(無着) 세친(世親)은 삼신설까지 정립했어요.

보신(報身)이라는 것을 알았단 말이어요.

자, 다겁생으로 보살행을 하고 다겁생으로 지혜를 증장하는 공부를 했고,

이걸 유식학에서는 전이(轉移)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수행한 보답으로 붓다의 몸이 생긴다는 것까지 알았어요.

그것까지는 말을 해요.

말을 하지만 세친은 어떤 분입니까?

구사론의〈파집아품(破執我品)〉에서 절대로

우리 인간은 실체가 없다고 그러잖아요.

인간은 실체가 없고 모든 법도 체(실체)가 없다는 거예요.

대승불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해요. 제법 무자성·공(空) 그럽니다.

그러나 유식에서는 불신까지 이야기를 했으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그 불신하고 다릅니다.

유식철학엔 정토도 없어요. 자성의 체, 영혼체도 없어요.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불신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몰라.

논리적 이론적으로는 보살행을 하고, 공부를 해서

이 팔식·허망한 식·제8아뢰야식이 완전히 단절되는 것을 전이라고 해요.

그렇게 되면 불신이 생긴다고만 이야기하지 구체적으로 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식학파에서 삼신설을 정립했지만

우리 현지사 같이 투철하게는 몰랐습니다.

불신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0점도 안 주지요.

 

출처:2018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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