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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부처라고 보는 선종의 불신관

작성자덕광(지등화)|작성시간26.06.11|조회수26 목록 댓글 0

마음이 부처라고 보는 선종의 불신관

 

지난시간에 선종에서는 어떻게 불신을 보는가?

마음이 부처라고 한다. 이 정도로만 이야기했지요.

앞에서 스님이 여러 학파(교파)를 이야기하고

현교 밀교를 다 이야기하고 실로 역사 이후

그 어떤 학승도 큰스님도 불신을 확실히 모른다.

붓다에 대한 정의를 확실히 모른다.

이렇게 말했는데 우선 선종(禪宗)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겁니다.

선종에서는 부처 없다고 합니다.

《법화경》〈비유품〉에 확실히 나오지요.

사리불존자 말씀입니다.

‘나는 들어와서 지금까지 공부를 했는데… 깨달았지요.

그리고 증득했지요.

해서 나는 이제 완전히 멸도에 이르러 부처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오늘 나한테 너는 다음 어느 생에 나와서 보살도를 성만(盛滿)하여

불과를 증하리라. 붓다가 되리라.’

하는 수기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 사리불존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이 있어요.

“하! 불신을 얻어야 붓다구나.

32상 거룩한 빛의 몸(인격적인 불신)을 얻어야 붓다구나.”

하는 고백을 합니다.

왜? 불신을 얻어야 부처님도 상대방을 볼 수 있잖아요.

천(天) 인(人) 아수라 내지 팔부중 내지 귀신도 다 볼 수 있잖아요.

저 유정들이 불신이 있어야 부처님을 뵐 수 있잖아요.

아무것도 없으면 봅니까? 아무것도 없다는데 뭘 봅니까?

아무 형상도 없고, 말씀을 들을 수도 없다면 어떻게 상대를 교화합니까?

“아! 불신을 갖춰야 부처가 되는구나.”

하는 것을 고백한 것이 있어요. 불신을 갖춰야 되거든요.

그런데 선종에서는 끝끝내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자, 조금 자세하게 말하고 결론으로 내려갑니다.

선종에서는 앞에서 내가 말했던

자성 인간성품 마음자리를 부처라고 본 거예요.

이걸 법신(법신불)이라고 그래요.

또 다시 말하면 본래로 청정해서 만법이 갖추어져 있는 자리,

마음자리를 법신불로 봐요.

선도 악도 없는 자리,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그 자리를 법신부처라고 봐요.

모습이 없어요. 법신은 이렇고

 

그 다음에 화신불은 성품이라고 하는 법신자리에서 일어나는

착한 한 생각을 화신불로 봐요.

다시 말하면 법신자리 성품자리 마음자리에서 일어나는 착한 한 생각을

화신불이라고 봐요.

이 화신과 법신을 깨치지 못한 중생들은 악한 것을 생각하면

업을 지으니까 결국 지옥을 만들고 착한 법을 생각하면 착한 행을 하니까

천당이 되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 양변, 악한 생각 착한 생각의 이 양변을 뛰어넘어

실체가 없는 무아라는 것을 깨달아 작용하는 것을 보신이라고 봅니다.

곧 계속 절대 선으로 가는 것 그것을 보신이라고 한다, 그럽니다.

그래서 법신 화신 보신은 결국 마음이어요. 마음 하나입니다.

마음이 곧 삼신불이오 자성불이라고 합니다.

선에서는 결국 마음이 부처라는 거요.

따로 부처가 없다고 주장한단 말이어요.

임제와 같은 중국 선종의 큰스님,

그분은 달마 혜능과 같은 큰스님이어요.

임제는 머무름이 없는 마음, 머무름이 있다는 것이 집착(착)이어요.

머무름이 없는 마음 또 물들어 있지 않은 마음(무념)이 삼신이다 그래요.

결국 마음이 부처다 그겁니다. 마음이 부처다.

우리 현지사에서는 절대 아니다.

그것은 유치원 수준밖에 안 된다.

부처가 없어버리니까 나는 심교(心敎)라고 했지.

마음이 부처라고 떠드니까 심교라고 때려버린 거요.

1,300년 정도 조계종 선불교가 한국 불교계를 완전히 장악한 거요.

이 불교계를 향해서 ‘그건 심교다! 그건 아니다!’ 라고

이 자재만현스님은 지적했습니다.

선불교의 상징적인 큰 인물 곧 중국 선종의 임제스님은

법신 보신 화신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란 마음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마음자리(마음)가 곧 부처다 하는 것이 선종의 주장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현지사는 그 주장은 절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고 나는 조계종을 뛰쳐나온 거예요.

나는 뛰쳐나오기 전에 일찍이 벌써 선종의 모든 교학이(교리가)

아니라고 본 거예요. 이건 아니다.

들어와서 참선을 오래도록 해서 견성을 하고 깨달았다고 한

그런 사람들은 절대 다수가 부처님이 없다고 한다고요.

마음이 부처다. 불·보살 없다.

지옥 극락도 마음이지 따로 극락이 있고 지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귀신? ‘좋아하네! 없어!’ 선종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걸 단호히 반대하는 거요.

아니다! 지옥도 극무간 무간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 등으로

나누어서 보는 데는 우리 현지사 뿐이어요.

저 인도의 힌두교에서도 이렇게까지 못 봤어요.

육도윤회를 벗어나는 세계도 힌두교에서는 잘 몰라요.

윤회를 벗어난다는 세계는 있는 줄 알아요.

그러나 우리는 아라한의 세계 더 올라가서 무루대아라한의 세계

더 가서 정토보살의 세계 더 나아가서 약사정토세계

더 나아가서 붓다의 세계, 이렇게 자세히 보는 데가 현지사예요.

그리고 중생들, 이 세상 사람들은 뭘 모르거든요. 이치를 몰라요.

다음생이 있는 것도 몰라요.

확실히 아는 스님으로서 중생들을 인도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중생들을 보니까 마음이 탐진치로 꽉 차 있어. 욕심으로 가득해.

그래가지고 그냥 오욕락을 좇아 그렇게 분주하게 사는데

그러다 보면 집착해서 결국 업을 지으니까 삼악도로 가는 거요.

삼악도가 있다는 것이 현지사의 주장입니다. 그렇게 살지 말라.

 

출처:2018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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