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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이상국 시집

작성자|작성시간05.06.24|조회수24 목록 댓글 1
"나무들도 엉덩이가 있다"
시인 이상국 다섯 번째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펴내
 이종찬(lsr) 기자

▲ 시인 이상국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마산문화문고
ⓒ2005 창비
"감자를 묻고 나서
삽등으로 구덩이를 다지면
뒷산이 꽝꽝 울리던 별

겨울은 해마다 닥나무 글거리에 몸을 다치며
짐승처럼 와서는
헛간이나 덕석가리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천방 너머 개울은 물고기들 다친다고
두터운 얼음옷을 꺼내 입히고는
달빛 아래 먼길을 떠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잠이 안 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 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
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
가래를 돋워대고는 했는데

그런 날 새벽 여물 끓이는 아랫목에서
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보면
마당에 눈이 가득했다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


- 26~27쪽,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모두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한번도 삶의 텃밭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그 주변을 갈매기처럼 맴돌며 살아가는 시인이 있다. 그 시인이 태어났을 때만 하더라도 그곳은 3.8선 이북 북한 땅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시인의 목소리에는 독특한 북한 말투가 주저리 주저리 매달려 있다. 언뜻 그 목소리만 들으면 서늘하고 춥게 느껴질 때도 더러 있다. 하지만 곰곰이 곱씹어보면 그 독특한 말투 속에는 강원도 양양에서 살아가는 민초들만이 누릴 수 있는 억센 삶의 자잘한 결이 묻어 있다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다.

시인 이상국. 그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몸살을 앓는다. 서울 등 전국 각지에 있는 문인들이 여름휴가를 맞아 부나비처럼 날아들어 그를 찾기 때문이다. 한때 나 또한 그가 살고 있는 속초 앞바다에서 '여름문학학교'를 한답시고 신세를 톡톡히 진 적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결 같았다. 전화를 걸기만 하면 늘 제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었다. 숙소가 없어 쩔쩔 맬 때면 금세 숙소를 마련해 주었고, 그곳에서 지내다가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는 항상 웃는 얼굴로 나타나 걱정거리를 한꺼번에 씻어주곤 했다. "왁자지껄 만났다 흩어지는 바람과/ 흙 묻은 안부를 말아 국수를 먹는"(봉평에서 국수를 먹다) 것처럼 그렇게.

"나무는 몸이 아팠다
눈보라에 상처를 입은 곳이나
빗방울들에게 얻어맞았던 곳들이
오래전부터 근지러웠다
땅속 깊은 곳을 오르내리며
겨우네 몸을 덥히던 물이
이제는 갑갑하다고
한사코 나가고 싶어하거나
살을 에는 바람과 외로움을 견디며
봄이 오면 정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했던 말들이
그를 못 견디게 들볶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헌데 자리가 아플 때마다
그는 하나씩 이파리를 피웠다"

- 11쪽, '봄나무' 모두


지난 1998년, 네 번째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로 제1회 '백석문학상'을 받은 이상국(59) 시인이 7년만에 다섯 번째 신작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창비)를 펴냈다. 1976년 <심상>에 시 '겨울 추상화'를 처음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30년만이다.

모두 5부에 71편의 신작시가 실려 있는 이번 시집은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윤태의 말마따나 "우선 표나게 다가오는 시어는 '별'"이다. 눈에 띄는 시 제목만 눈대중으로 가려 뽑아도 그러하다. '별 만드는 나무', 표제가 된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이 별에서 내리면', '하나뿐인 별에서' 등이 그것들이다.

시의 제목에는 별이 들어 있지 않지만 시 속에 나오는 별들도 제법 있다. "산을 내려온 바람이/ 멧돼지처럼 옥수수밭을 뒤지고 다니는 저녁" 멍석마당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별들"(여름)이나 근대국을 먹으며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빛"(입동), 달동네에서 바라보는 "달"(달동네), "먼바다 불빛"(멀리서 보는 불빛) 등이 그러하다.

"시는 재미로 만나거나 어울려 즐겨야 좋은데 그것에다 내 존재와 세계를 다 싣고자 하니 서로 힘들다. 그러나 그 일마저 없었더라면 무엇으로 이 썰렁한 세상을 건넜을까 생각하면 시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고맙다."
- '시인의 말' 몇 토막

평소 산업화로 파괴되는 농촌의 현실과 분단, 실향민 문제를 즐겨 시의 소재로 다루던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는 왜 그토록 별에 매달리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윤태는 이상국 시인이 말하는 별은 "환경파괴 등으로 신음하는, 우주 유일의 초록별 '지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설악산 수렴동 들어가면
별 만드는 나무들이 있다
단풍나무에서는 단풍별이
떡갈나무에선 떡깔나무 이파리만한 별이 올라가
어떤 별은 삶처럼 빛나고
또 어떤 별은 죽음처럼 반짝이다가
생을 마치고 떨어지면
나무들이 그 별을 다시 받아내는데
별만큼 나무가 많은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산에서 자본 사람은 알겠지만
밤에도 숲이 물결처럼 술렁이는 건
나무들이 별 수리하느라 그러는 것이다"


- 15쪽, '별 만드는 나무들' 모두

사람들 때문에 밤마다 망가진 별을 수리하는 나무. 지구촌의 환경오염을 막아주는 그 소중한 나무들을 사람들이 또 다시 망가뜨리고 있다. "고로쇠나무에 상처를 내고/ 피를 받아내"고 있다.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도/ 무엇이 모자라서 사람들은/ 나무의 몸에까지 손을 집어넣는지"(성자) 시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시인 이상국은 누구인가
양양, 속초 사람들의 삶을 보듬는 시인

▲ 시인 이상국
ⓒ창비
"이상국 형은 내가 아는 시인들 중에 가장 쉬운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우주에서 천연의 원료를 그냥 퍼다 쓰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질료의 평이함 속에 깃든 생의 깊고 오묘한 의미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곽재구(시인)

시인 이상국은 1946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1976년 <심상>에 시 '겨울 추상화'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동해별곡> <내일로 가는 소>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가 있다.

지금, 속초에 살면서 만해마을 운영위원장을 맡아 매일 진부령을 넘어 백담사 만해 마을로 출퇴근하고 있다.

'백석문학상', '민족예술상', '유심작품상' 받음.

/ 이종찬 기자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별은 너무 몸이 무겁다/ 특히 아메리카나 유럽 쪽으로 돌 때면/ 별은 망가질 듯 삐걱거린다/ 쓸데 없이 가진 게 많아서 그렇다/ 지구라는 별은 원래 조금 삐뚜룸하게 걸려 있는데/ 한쪽에만 자꾸 짐이 실리면 아주 기울어서" 언제 큰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

시인은 말한다. 지구란 별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나서야 한다고. 이제는 사람 중심의 이기주의를 깡그리 버려야 할 때라고. 사람에 의해 "황폐된 땅들은 갈아엎고 땅콩을 심거나/ 한 만년 묵밭으로 쉬게 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지구란) 별이 견딜 수 있을지"(하나 뿐인 별에서)도 큰 걱정이라고.

"전깃줄에 닿는다고
인부들이 느티나무를 베던 날
아파트가 있기 전부터 동네를 지키던 나무는
전기톱이 돌아가자 순식간에 쓰러졌다
옛날 사람들은 가지 하나를 꺾어도 미안하다고
나무 밑둥에 돌멩이를 던져주었고
뒤란 밤나무를 베던 날
아버지는 연신 헛기침을 하며
흙으로 그 몸을 덮어주는 걸 보았는데
느티나무의 숨이 끊어지자 인부들은
그 커다란 몸을 생선처럼 토막내 싣고 갔다
이파리들의 그늘에 와 쉬어가던 무성한 여름과
동네 새들이 깃들이던 하늘의 집을
그렇게 어디론가 싣고 가 버렸다"


- 18쪽, '하늘의 집' 모두

사람들은 대자연을 너무 쉽게 여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조금만 불편을 주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오래된 느티나무라도 가차없이 베내버린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나무들도 엉덩이가 있"(그곳)어 볼일을 볼 때마다 이 세상이 사람이 맡기 좋은 향기로 가득 찬다는 그런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은 채.

"나무를 베면

뿌리는 얼마나 캄캄할까"


- 76쪽, '어둠' 모두

시인은 어둠을 밑둥이 싹둑 잘려나간 나무에 견준다.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어둠이란 다름 아닌 사람의 끝없는 이기심 때문에 지구란 별에 서서히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다. 즉, 이대로 사람들이 대자연을 끊임없이 피괴해 나간다면 끝내 지구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시인은 삼라만상 하나하나를 자신의 몸처럼 여긴다. "제 몸이 집"이고 "안방이고 변소"인 무 한 뿌리조차도 "어느날 농부의 손에 뽑혀나갈 때/ 저들은 순순히 따라 나갔을까, 아니면/ 흙을 붙잡고 안간 힘을 썼을까"라며 생명의 존엄성을 지적한다. "군데군데 솎여나간 자리를 보면/ 아직 그들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손을 넣어보고 싶"(무밭에서)을 정도로.

"흐르는 강이 나이를 자시면
무엇이 되는지
양양 남대천 물너름에 와서 보아라
한때는 살을 내줄 것 같던 사랑이나
몸을 내던지며 울던 슬픔도
생의 굽이굽이를 돌며 치이고 닳아
이제는 모래처럼 순해졌으니
산그림자 속으로 새들 돌아가고
저무는 강둑에서 제 몸 비춰보는 저것,
자식낳이 다한 어머니처럼
거대한 자궁을 열어놓고
혼잣노래 하는
저 오래된 연민을 보아라"


- 20쪽, '연민' 모두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는 환경오염으로 점점 시들어가는 지구촌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랑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이 별에서 내리면/ 다른 별은 없을까"(이 별에서 내리면)라는 싯귀가 마치 '이 별에서 내리면 끝장이다'라는 것처럼 읽히는 것 또한 시인의 지구촌에 대한 더 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도 시인은 "낫살이나 먹고/ 이미 깍을 머리도 없는데/ 어디서 본 듯한 면상을 자꾸 물에 비춰보며/ 산으로" 들어간다. 오죽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두렵고 무섭게 여겨졌으면 시인의 눈에 "물은 산을 내려가기 싫어서/ 못마다 들러 쉬고/ 쉬었다가 가는"(백담 가는 길) 것처럼 보였겠는가.
2005/02/25 오후 3:08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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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잔디밭 | 작성시간 05.07.16 좋은 정보입니다..책을 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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