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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 시인의 시 특강

송진 시창작범 27-시는 천 개, 만 개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4.03.28|조회수22 목록 댓글 0

송진 시인의 시 창작법 27

 

시는 천 개, 만 개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

-온 몸에 실타래처럼/감기는/모든 근원의 슬픔- 시에게 스며들기- 다른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송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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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二十七, 아주 없는 것 아니다

 

“수보리야, 네가 만약 생각하기를 「여래가 구족한 몸매具足相구족상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겠느냐.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여래가 구족 한 몸매를 갖추지 않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지 말라.” “수보리야, 네가 만약 생각하기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이는 모든 법이 끊어져 아주없음을 가리킨다」고 한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이는 모든 것이 다 끊어져 없어진 것斷滅相단멸상이 진리라고 말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니라.”

- 금강반야바라밀경 / 요진 삼장법사 구마라집 역 / 선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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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고요한 가운데 찾아드는 새의 지저귐이거나 꽃의 향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고요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 방심放心하거나 무언가를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리기에만 분주하다면 시가 참빗처럼 촘촘한 결의 곁을 잘 내어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는 우리가 느끼는 그 모든 걸 같이 느끼고 숨 쉬고 먹고 자고 합니다. 무명의 이 시대에 시를 쓰는 사람들은 푸르고 긴 귀를 가진 존재입니다. 만물의 소리가 다 들리지만 다 들리지 않고 만물의 소리가 다 들리지 않지만 다 들리는 그런 존재들이지요. 모든 소리가 끊어졌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모든 소리가 들린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허공처럼 공해져 귀가 열리고 지혜로움이 열려 더 깊이 있고 좋은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시를 잘 쓰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시를 꾸준히 날마다 사물시 한 편 씩 적으시길 바랍니다.

 

⁍ 왜 사물시를 적어야 하는가

‣ 사물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연줄입니다. 사물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분주한 생활 속에서 놓쳤던 감정들이 되살아납니다. 예를 들어 로봇 시계나 노란 장미 한 송이를 마주 보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마주 보던 감정이 처음에는 단지 시간이나 생김새를 보거나 향기를 맡기 위한 감정에서 로봇 시계가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는지 로봇 시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그 로봇 시계가 이 공간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노란 장미 한 송이가 새벽에 눈을 뜨면 이슬과 애벌레와 새들과 무슨 대화를 나눌까 따위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감정들을 문장으로 쓰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면 깊이 가라앉아있던 무의식이나 기억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내가 알 듯, 알지 못했던 내면의 지도를, 정신의 징검다리를 하나둘 놓아주는 것이 사물시 입니다. 사물시를 날마다 한 편 두 편 아니 세 편 네 편… 열 편 쓰다 보면 어느새 사물을 바라보던 시선이 사물의 내면의 물결에 닿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시가 온전히 나의 내면의 물결에 닿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하철 자판기에서 뽑은 400원 밀크커피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한 남자가 툭, 나를 치고 지나갔다

커피가 잠시 술렁, 거렸다

그는 나를 치려고 친 건 아니다

그의 뒤통수는 방금 전의 행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듯 했다

그의 어깨에 천천히 다가가

저...

그의 뒤통수는 옆으로 돌아보지 않고 직진한다.

그의 뒤통수는 무척 바쁜 모양이다

방금 들어온 열차에서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 케이런장수풍뎅이, 메리골드, 뱀호박꽃이 오르내리고

열차가 출발했다

그와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다

그의 뒤통수는 그의 뒤통수를 연다

드라이버를 꺼내 스크린 도어 풀어진 밸브를 죈다

그의 뒤통수는 그의 뒤통수에서 입술 마른 수건을 꺼내 스크린 도어 천장을 닦는다

그의 뒤통수는 그의 뒤통수의 문을 닫는다

저 여보세요

그의 뒤통수는 문이 열린 채 앞을 보고 걸어간다

나는 그의 뒤통수의 열린 문과 점점 멀어진다

죽순과 대나무처럼..

이거 갖고 가셔야 하는데요..

그가 땀을 닦다 무심코 내 새끼손가락에 걸어둔 수 건 한 장

나는 황급히 메트로복지회관 4번 출구 계단으로 내려갔다

 

송 진 _ 「시간의 얼룩은 사라지지 않는다」

 

 

⁍ 직접 쓰기 시간입니다. - <사물시를 산문시나 자유시로 한 편 쓰기>

 

 

우리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갑니다. 탐진치貪瞋癡 욕심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고 어리석음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알 수 없는 일의 노예가 되어 알 수 없는 농부에게 끌려다니는 어리석은 한 마리 소가 될 것입니다. 이럴 때 누가 시를 쓰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체적인 생의 시작의 벨이 울린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태어났으며 왜 여기 있는가. 그리고 태어나기 전의 나는 누구이며 내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를 화두로 잡고 고민하고 생각하면 내면이 열려 의외로 세상에 부딪히는 일, 다른 사람과의 문제도 쉽게 풀립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 다른 사람의 일에는 적게 간섭하는 것 그런 습관들이 시를 쓰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덜 공허하게 만들어줍니다. 나의 밀도를 높이는 일. 그게 시가 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죽을 때는 아무리 보물이 많아도 두고 가야 합니다. 아무리 권력이 높아도 두고 가야 합니다. 아무리 땅이 많아도 두고 가야 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고 시를 쓰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발자취가 될 것입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나의 뿌리, 나의 근원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열심히 ‘나’를 참 구해야겠습니다. ‘나’는 한 개의 붉고 푸른 사과 한때는 껍질이었다가 한때는 속살이었다가 한때는 씨앗입니다. 2024년 갑진년 청룡의 해에는 날마다 사물시 한 편 쓰겠다는 각오로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한 편의 사물시와 시작노트를 쓰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여기에 머물러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게 다가가는 가느다란 식물의 덩굴손에 비치는 햇빛 한줄기가 되어 줄 것입니다.

 

<>

 

그 곳에서

상상이라도 하셨는지요

 

여기는 플라스틱 인어가 살고 있습니다

 

공중 화장실에는 뜨거운 물 찬물이 나와

시원하고 따듯합니다

 

새들은 제 어깨를 남북처럼 넘나들며 지저귀지요

 

파도소리가 소라과자 먹는 소리처럼 야경이 아름다운 아이펙은

더 이상 왕도 없고 대통령도 없습니다

 

미리 아셨는지요

미리 아셨겠지요

 

고양이를 마취하고 미용하는 펫 센터장과

귀여운 개가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평등의 시간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혼술과 혼밥

이거 제대로 잘 사는 거 맞니

출입금지 암석 아래 바다에게 물어봅니다

 

바다는 파도 소리

갈매기는 갈매기 소리

 

여기가 동백섬이 맞긴 맞나봅니다

동백나무 꽃봉오리마다 동백섬이 많이도 열렸습니다

 

눈썹마다

손톱마다

 

겹겹입술은 / 뭔가 말이 하고 싶어 / 목도리 두른 붉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립니다

 

송 진 _ 「동백섬 조매화鳥媒花 -해운 최치원 선생님께 드리는 시편지 1

 

산책을 하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손으로 만져보고 혀로 맛을 보는 모든 것이 시의 재료가 됩니다. 사실 시에서는 온몸의 감각기관이 하는 일이 구분이 없습니다. 때로는 귀로 냄새를 맡기도 하고 코로 맛을 보기도 하고 눈으로 흐르는 물결을 만지기도 하고 손으로 바람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고정관념을 한 번 무너뜨려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잊고 살았던 감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관찰력과 유추해보는 습관들도 좋겠지요.

 

▶시 쓰기 시간: 산책하면서 시 한 편 써 봅니다.

 

얼음을 넣어 다니던 물병에 따듯한 물을 넣어 다닙니다. 짧은 반바지를 벗고 긴 청바지를 입습니다. 배롱나무꽃은 배롱나무꽃이 지닌 꽃빛으로 말라가고 햇살이 손목 위를 지나갑니다. 아, 이런 것이군요. 시간이라는 것은.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군요. 우리들에게도 이런 시간들이 늘 같이 함께 그림자처럼 있습니다. 시간들과 같이 자고 먹고 일하고 쉬고 웃고 울고 아프고 때로는 기지맥진하게 때로는 활기차게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변하지 않는 더없이 원만하고 지혜로운 시간들이지요. 한 그루의 나무가 제자리에서도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고 할 일을 다하듯 우리도 멀리 가지 않아도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를 놓지 않고 늘 시의 정신과 함께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시를 쓰고 또 써서 시와 함께 있다는 생각조차 텅 비어 있으면 시는 어느새 우리의 마음 끝에 손끝에 다가와 연필을 움직입니다. 자판을 치게 하고 한 편의 시를 출력하게 합니다.

 

<>

 

우리는 사랑하는 시늉을 하느라 침대 위를 뒹굴고 외로움은 찌고 말린 말미잘 홍삼처럼 파란 제비꽃 카펫 위에 널려 있지 사각팬티는 어디로 갔는가 처음부터 입지 않은 팬티를 어디선가 찾아 좁은 입구를 기웃거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시늉을 하느라 전 생애를 보내고 있어 다른 일을 했더라면 하는 어쭙잖은후회 따위는 없으리 어차피 이 일만큼 가치 있는 일도 아닐 테니 제비꽃 접시에 풀어놓은 향들이 미래를 찾아가고 있어

 

송 진 _ 「우리는 사랑하는 시늉을 하느라 침대 위를 뒹굴고」

 

 

◈ 한 편의 시와 시작노트 쓰기 예시 ◈

 

제목: 해운대, 8월 27일이라는 시간의 미행

 

지은이: 송 진

 

목젖을 지나가는

아기울음처럼

풀벌레처럼

파도소리처럼

점점점점

등대불빛처럼

원목테이블을 톡톡치는 사춘기 소녀처럼

지하철 맨 끝 칸 노랑머리 소년 욕설처럼

찰칵

찰칵

찰칵

캐논 카메라 셔터 소리처럼

겨드랑이 젖은 곳을 들여다보는

울긋불긋 꽃단풍 민소매 원피스처럼

카페 스타벅스 검은 코드를 빼고 하얀 노트북 뚜껑을 덮는

여덟 개 손가락들의 소프라노처럼

 

하늘빛 티셔츠 배부른 중년남자가

배부르지 않는 오렌지 티셔츠 어린 남자를 오래 끌어안고 있는

 

파도와 포말과 오륙도와 등대와 유람선과 선착장과 해안선과 흑맥주와 물병이

모래알처럼 잔잔하게 바다를 어루만지고 철썩이고

 

조우하고 떠나가는 세상의 모든 우주적 물질

 

「해운대, 8월 27일이라는 시간의 미행」 시작노트

송진 운명의 시 1039

2017년 8월 27일 / 불기 2561년 7월 6일 / 단기 4350년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적어야 한다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여야 한다

 

이 느낌

다시는 돌아오지 않든지

돌아돌아 돌아오겠지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적어야 한다

무조건 적어야 한다

하늘에 천 개의 날개가 있다

하늘에 오렌지 구름 새들이 날고 있다

 

오렌지 구름과 당나귀 하늘과 감의 가을

 

개와 고양이와 나귀와 검은 말

 

태어남과 죽음

 

삶과 진행적인 요소들

 

머큐롬과 요오드딩크

 

같거나 다르거나 다르거나 같은

 

보랏빛 가지꽃 속에는 하나의 둥근 태양이 솟아있다

 

 

• 주변을 잘 살펴보면 모든 것이 다 시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숨소리 하나, 나무 그늘 하나, 버려진 양말 한 짝, 구름 한 점 소홀이 하지 말고 황금덩어리를 만난 듯 보고 만지고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늘 황금덩어리를 가진 부자입니다.

 

⁍ 스스로 쓰기 : 위의 <보기>처럼 시 한 편, 시작노트 한 편 적어봅니다.

 

써 보아요.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이면 더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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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진 | 1999년 김춘수, 이승훈 등 심사로 《다층》 제1회 신인상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나만 몰랐나봐』, 『시체 분류법』, 『미장센』, 『복숭앗빛 복숭아』,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플로깅』, 『럭키와 베토벤이 사라진 권총의 바닷가』(2023년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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