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 시인의 시 창작법 30
담비가 나타나다_어린 왕자와 사막 여우는 왜 센텀에 있는 모델하우스 지붕 위에 서 있나_꽃무릇이 꽃무릇에게 무릇무릇 전하다
송 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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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三十, 진리와 현상은 둘이 아니다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선녀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가는 먼지를 만들었다면 네 생각에 어떠하냐. 이 가는 먼지가 얼마나 많겠느냐.』 『심히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왜 그런가 하오면 만약 이 가는 먼지가 실로 있는 본체적 존재라면 부처님께서는 곧 저 가는 먼지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그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하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는 먼지는 곧 가는 먼지가 아니오며 그 이름이 가는 먼지일 따름이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천대천세계도 곧 세계가 아니옵고 그 이름이 세계일뿐이옵니다. 왜 그런가 하오면 만약 세계가 실로 있는 본체적 존재라면 곧 그것은 절대의 하나의 모양(一合相)이어야 할 것이오며,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절대의 하나의 모양(一合相)도 실은 절대의 하나의 모양이 아니옵고 그 이름이 절대의 하나의 모양일 따름이기 때문이옵니다.』 『수보리야, 절대의 하나의 모양이라 하는 것은 이것을 말로 할 수 없는 것인데 다만 범부 중생들이 그것을 탐착할 뿐이니라.』
* 금강반야바라밀경/요진 삼장법사 구마라집 역/선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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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에 들어있는 귀여운 아기스님 같은 얼굴을 가진 담비는 자기보다 강한 오소리도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우단동자꽃처럼 동그랗고 맑은 눈동자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를 공부하는 우리도 그러한가요. 우리보다 강한 시를 잡아먹으려고 시의 온 몸을 비틀고 시를 잡기 위해 살금살금 기어가거나 적확하게 덮치나요. 시의 언어를 적확하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나요. 우리의 정신은 맑게 깨어있나요. 빨간 열매도 먹고 파란 열매도 먹고 개구리도 먹고 양상추도 먹고 그리고 소, 양, 염소, 사슴 같은 반추동물처럼 되새김질해 도로 뱉어낼 잡식성의 시를 쓸 준비가 되어있나요. 소중히 여기는 담비(시)를 숲에 놓아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담비(시)는 침엽수림으로 찾아 들어가 자연스럽게 살아갈 것입니다. 자연스럽다는 것. 그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는 아무리 꽁꽁 묶어두어도 자신이 알아서 자연스러움을 찾아갑니다. 결박당하는 건 힘든 일입니다. 누구나 결박당하는 걸 싫어합니다. 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는 자유입니다. 저는 시를 쓸 때 가장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시대의 말이나 행위와는 수억 광년 떨어진, 그러면서도 시대와 말이나 행위에 오늘의 별빛처럼 스며들고 있습니다. 저절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시를 써야지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냥 저절로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바다로 향하듯이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며 행운이며 불행과 가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공을 초월한, 생사를 뛰어넘은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새벽 네 시 새가 하나 둘 깨어난다 새가 깨어날 때 보일러 연통은 쉬고 있다 보일러 연통이 깨어나면 새는 쉰다 이상한 일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무슨 언약이 있었나 독약 든 병을 관 속 어디 감춰두기라도 했나 새장 속의 새는 죽어있다 연통이 막히면 새장 속의 새는 깨어있다 연통이 뚫리면 이상하다 무슨 언약이라도 있었나 비비추와 원추천인국처럼 수련은 서두는 일 없이 깨어나고 연꽃은 물방울이 있으나 없으나 적요하다
송 진_ <연통과 새>
■ 언어 연상하기
예문
◕ 언어
언어-인어-민어-연어-사해바다-지중해-열대과일-배고픔-헐벗음-이웃-공존-집성체-공동체-왕따-폭력-사회문제-자살-스물두 명의 성폭력-슬픔-죽음-극복-살인-좌절-정신병동-감옥-격리-늙음-덧없음-노인병동-식판-샐러드-샐러드오일-숨이 죽다-숨이 죽어가는 것-숨-들숨-날숨-숨의 소중함-살아있음의 소중함-물욕-물욕을 버림-삶의 가치는 물질에 있지 않다-먼지-먼지의 존재조차 귀한-평등-존재하는 것 모든 것은 고귀하다-경외심-겸손-삶의 가치의 재발견-사물의 소중함-시에게로 가는 길-시는 사물이다-사물은 시이다-시는 흐르는 물이다-물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가장 낮은 자리에 흐르는 물-물 같은 존재-물집-물집이 잡히는 꽃발바닥-물은 구하면서 낙타의 혹을 베지 마라-명분 없는 살생-이라크-IS-총과 칼-검은 복면- 억울한 죽음-비디오-국경-폭탄테러-아우성-국제적 시선-냉철한 의식-다시 시 속으로-시는 꽃이다-시는 피의 꽃이다-새는 울컥울컥 피울음을 토하다
<직접 쓰기>
◕ 언어
언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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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많이 붑니다. 낙엽들이 도르르 물소리를 내며 거리를 돌아다닙니다. 저 낙엽을 따라가면 샘물을 만나 목축임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낙엽도 바람도 목마름도 참을성이 있습니다. 시간 속에 있으나 시간을 재촉하지 않고 공간 속에 있으나 공간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달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물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듣고, 있는 그대로 말하면 시시비비是是非非 가릴 일이 없어지고 시간을 내 마음대로 당겼다 늘였다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누가 그걸 하는가하면 바로 자기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마음도 시詩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당겼다 밀었다 서운했다 기뻤다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항상 여여如如하게 평상심을 유지하면 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고 합니다. 그 지어내는 마음이 없어지면 텅 빈 허공이 있을 뿐입니다. 갈증이 나면 물을 마시고 머리가 가려우면 머리를 긁습니다.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시詩에게 걸어갑니다.
<시>
겨울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차가운 별 뒤쪽 공간에서 잠이 든 딸기바구니를 들고 별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다가 미끈, 와르르 딸기를 쏟았습니다. 딸기는 별 사이와 별 사이로 떨어져서 유선형으로 선분으로 직각으로 돔형으로 떠돌아다닙니다 딸기의 몸에 소름이 돋은 것이 보입니다 딸기의 혀가 유성처럼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통통한 두 뺨과 빼빼로처럼 마른 두 팔…… 아마 그 팔들은 하얀 하늘을 긴 가위로 싹둑 싹둑 자르고 생리대를 만들고 기저귀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에서 별똥별처럼 쏟아지는 생리대’ 그런 기사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성공단에서 만들었다는 유니폼을 입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 귀에 닿던 안전모가 그립습니다. 중국으로 인도로 날아다니던 유니폼을 만들던 공장 굴뚝 연기들 안녕 마치 내가 연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배우가 된 건가요 하하 아니라구요 그러면 그렇지요 나는 딸기 같은 닭살커플을 그리워하는 중국인입니다 베갯잇 눈물을 위하여 배추전을 잘 부치는 일본인이기도 하지요 혼자서 냉탕 속에 퐁당퐁당 잘 노는 다문화가정의 다섯 살이기도 합니다 아직 생리를 하지만 생리를 하지 않을 수도 생리통을 겸한 임신의 통증을 자장가로 다스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자장능력은 꽤 멋진 말의 말이기는 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잇몸에 구멍이 뚫리는 청동기 시대 부채이기도 합니다
송진_ 「나에게는 자장이 있어」
◉ 상상력의 즐거움
발상의 전환은 새로운 상상에 눈뜨게 합니다
스스로 언어의 기준을 풀어헤치고 무장해체할 수 있다면 언어는 언어를 잉태하고 인어는 인어를 낳을 것입니다 상상력은 자주 결핍을 느낍니다 화초에 물을 주듯이 상상력에 단비를 뿌려주면 좋겠습니다. 이제 자신만의 방법으로 낯설지만 원래 있었던 길을 찾아나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 SFLW오감시창작글쓰기로 상상력을 키웁니다
S: song (음악, 노래, 시)
F: feel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
L: love (배려, 소통, 공감)
W: writing (쓰다)
<딸기 한 개의 상상력>
여기, 딸기 한 개가 있습니다.
딸기 한 개를 플라스틱 칼로 안전하게 자릅니다.
반쪽은 먹어보고 반쪽은 손으로 만져봅니다.
딸기 냄새를 맡고 모양을 바꾸어봅니다
딸기 한 개의 각도는 구슬만화경 속
• 시각- 딸기는 터널이다. 딸기는 콧구멍이다. 딸기는 화산이다. 딸기는 장화다.
• 후각- 사천 감곡리 비닐하우스에 들어간다. 수많은 딸기들이 별처럼 엎드려 있다.
딸기들에게 털실로 짠 초록 모자를 하나씩 씌워준다.
• 미각- 입덧을 하는 딸기들. 딸기를 씻어 딸기에게 준다.
딸기 먹는 노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기린의 뒷모습.
• 청각- 에밀레- 성덕대왕신종이 울린다. 보신각 종이 울린다.
용두산 공원 시민의 종이 울린다.
해림사 범종이 기지개를 켜고 잠자리와 다람쥐들의 밥을 들고 겨울산으로 올라간다.
• 촉각- 푹신푹신한 이층침대 구멍마다 쏟아지는 온천수.
침 흘리는 배고픈 새들의 까만 눈동자와 하얀 혓바닥.
빛깔과 씨앗에 대하여
‣ 흰: 아이들의 배고픈 혓바닥 (영양결핍)
‣ 붉은: 자라나는 반항, 욕망, 순수,
경계(성장통), 아이의 성장통(청소년의 사춘기), 어른의 성장통 (어른의 사춘기)
‣ 씨: 배고픈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
씨와 씨 사이의 거리감
<시>
-立
딸기와 딸기사이에 핏자국이 나뒹굴었다
딸기의 피비린내가 훅- 풍겼다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몰라
나는 정신없이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훌쩍이고 있는 딸기도 있었다
사이좋게 셋이 붙어있는 딸기도 있었다
다시
다시
잊었던 유머가 회복된다면
-春
가능한 일이다
나는 나에게 매달려 있는 손가락에게 힘을 주며 말했다
그 바람에 목이 삐걱거렸다
물수건으로 핏자국을 닦는다
피비린내가 바람의 목뼈를 부러뜨린다
푸른 꽃잎 한 장
오늘의 목격자이자 증인이다
송 진_「딸기 -立春」
◈스스로 해보는 SFLW오감시창작글쓰기
(예시)
재료: 깻잎 한 장
제목: 깻잎 한 장 과의 무의식 여행
깻잎 한 장을 바라본다. 만져본다. 관찰한다. 조금 뜯어서 먹어본다. 맛을 느껴본다. 냄새를 맡아본다.
⁍ 깻잎으로 문장 쓰기 : 오감 활용
• 깻잎을 바라본다 (시각)
- 깻잎은 손전등이다
- 깻잎은 스탠드전등이다 껐다 켰다
- 깻잎은 핫팩이다
- 깻잎은 버선이다
- 깻잎은 어린아이의 손바닥이다 손금 따라 여행하는 기차의 발걸음이다
• 깻잎을 먹어본다 (미각)
- 개미가 입안에서 으깨지는 느낌이다.
- 거미가 입안에서 돌아다닌다
• 깻잎을 냄새 맡아본다 (후각)
- 외할머니랑 사천 시골길을 걸어가다가 무밭에 앉아서 오줌을 눈다. 똥을 눈다. 외할머니가 깻잎 몇 장을 주면서 부드러운 쪽으로 닦으라고 한다. “할머니, 왜 깻잎을 줘요? 나는 부드러운 휴지가 좋은데……”
• 깻잎을 돌이나 손등에 문질러보거나 후-불어보거나 뺨이나 허공에 팔랑거려보기도 하고 손톱으로 비벼보기도 하고 깻잎을 잘게 뜯으며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청각, 촉각)
- 망상에 시달리던 철수는 망상을 하늘색 보자기에 싸서 후 불어 멀리 멀리 대서양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 깨 서 말이 집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 뚝, 뚝, 허리뼈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내가 정거장 풀밭에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 팔랑이는 나비 떼들이 서면 극장 앞 광장에 화명수목원의 나무처럼 모여 노랗게 노랗게 촛불을 밝혔습니다.
- 고소한 참기름을 넣고 비빈 열무비빔밥 앞에서는 중학생 딸의 입도 아- 벌어집니다.
<깻잎 시 한 편 쓰기>
……//무수한 경계를 달려 여기에 누워있습니다//무수한 친구들이 나대신 죽음을 선택했습니다//무수한 선택들의 눈동자가 우리의 삶과 죽음을 지켜보았고//우리가 몸담았던 빨간 소쿠리들 //빈 트럭에 텅 빈 관처럼 실려 갑니다//덜컹 덜컹//나는 어디로 실려 가는 걸까요//여기저기 앙상한 뼈마디가 만져집니다//달콤한 유혹에 빠진 벌들의 행진이//바다와 바다사이//수중터널처럼//이어지고 또 이어집니다//……
송 진 _「깻잎, 또 하나의 방식」
◈스스로 해보는 SFLW오감시창작
재료: 깻잎 한 장
제목:
(깻잎 한 장)을 바라본다. 만져본다. 관찰한다. 조금 뜯어서 먹어본다. 맛을 느껴본다. 냄새를 맡아본다.
• 깻잎으로 문장 쓰기 : 오감 활용
• 깻잎을 바라본다(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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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깻잎을 먹어본다 (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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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깻잎을 냄새 맡아본다 (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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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깻잎을 돌이나 손등에 문질러보거나 후-불어보거나 뺨이나 허공에 팔랑거려보기도 하고 손톱으로 비벼보기도 하고 잘게 뜯으며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청각,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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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깻잎 시 한 편 쓰기>
(깻잎 앞에서 “아-” 소리 내면 어떤 생각(느낌)이 떠오르나요? “아-” 자신의 목소리나 옆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거울 앞에서도 동굴 안에서도 울림을 느껴봅니다. 울림은 또 다른 세계로 가는 삐걱이는 나룻배입니다.)
봄의 문이 열리는 입춘이 내일입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내일의 입춘을 지나 어제의 오늘에, 오늘의 내일에 향한 은밀한 거울 앞에 서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거울꽃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 거울꽃을 써 놓고는 거울꽃이 되었다고 위안할 뿐이지요. 우리는 아끼는 것(사물, 인간, 비인간, 동식물, 자연)에 대해 쇠로 만든 침대를 들고 망망대해에 서 있는 것처럼 절망하기도 하고 볼륨감이 좋은 침대에 누워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편안해하기도 합니다. 그런 존재의 집을 짓는 자가 바로 ‘나’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동백은 동백대로 피고 동백씨앗은 동백씨앗대로 맺고 다들 알아서 제 갈 길을 홀로 잘 걸어가고 있는데 ‘나’는 나’를 모르고 어디선가 날아온 우편엽서 한 통에 마음이 설레입니다. 문득 거울꽃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오만가지 상相을 내려놓고 거울꽃의 좁은 통로 속으로 들어갑니다. 달팽이관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들려오는 아련하고도 신비로운 목소리를 받아 적기 시작합니다.
<시>
말벌이 머리가 큰 종이 인형 눈에 앉았어
아이들이 종알종알
버스가 지나가고
마차가 지나가고
종일 네가 나타나지 않아도 좋아
이런 변명은 무슨 변명
대지에 꽃이 피지 않아도 좋아
이미 오래 전에 여러 번 죽고 여러 번 살아 온 목숨
아이들이 벤치꽃에 앉아 아빠를 기다리고
오래 전에 말벌은 지구의 눈동자를 떠맡았지
레이스 양말에 빨간 구두가 잔디처럼 자란다
보랏빛 머리방울 같은 새들이 머리 위를 맴도는데
행여나 칭칭
네가 열 번도 더 죽은 아빠라면
행여나 칭칭
네가 백번도 더 죽은 엄마라면
나와주겠니
이 지난한 지구의 끝자락을 아기가 응애
태어나는 첫 자락처럼 투명한 유리 기둥을 흔들어 줄 수도 있겠다
아빠,
바빠.
엄마,
맘마.
망막의 손실이 개이득 될 수 있는 순간들이
불운의 불쏘시개처럼 재빠르게 지나가고
행여나
송 진_「여자 아이 둘 종이 인형 넷」
◉ <내가 아끼는 사물>이 무엇일까 단어를 적어봅니다. 그리고 그 단어로 문장을 상상하여 자세히 적어봅니다 - 그리고 <사물시> 한 편 씁니다.
(예문)
내가 아끼는 사물
‣ 화살- 길을 걸어 갈 때 항상 너와 같이 걸어간다 (사물의 의인화)
‣ 길고양이- 파란 화산재를 뒤집어쓰고 나타나는 말랑말랑 젤리 (사물의 형상화)
‣ 운동화- 연못 속으로 침몰한 한 척의 배 (사물의 내면화)
‣ 가방- 들여다볼 수 없지만 들여다볼 수 있는 난산의 순간 (사물의 깊이)
‣ 국어사전- 날마다 천 개의 쌀가마니를 씻고 크고 작은 돌을 가려낸다 (사물의 이미지)
⁋ 직접 쓰는 시간입니다
“써 보아요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이면 더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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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 문장 사이 독자가 직접 시를 쓸 수 있는 공간을 비워두었습니다. <날마다 한 편의 시와 시작노트 쓰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환경과 능력에 따라 날마다 문장 한 줄, 낱말 하나라도 쓴다면 감각이 유지되어 시가 쉽게 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노트에 써도 되고 휴대폰이나 달력에 써도 됩니다. 시는 오묘한 세계입니다. 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날마다 꾸준히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호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어느덧 다음 호는 마지막 연재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늘 건안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송 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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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
1999년 김춘수, 이승훈 등 심사로 《다층》 제1회 신인상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했다. 시집으로 『지옥에 다녀오다』, 『나만 몰랐나봐』, 『시체 분류법』, 『미장센』, 『복숭앗빛 복숭아』,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플로깅』, 『럭키와 베토벤이 사라진 권총의 바닷가』(2023년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