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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펀이 만난 시인

배동욱 시집속 대표시-달을 보다 외 4편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4.06.04|조회수26 목록 댓글 0

사이펀이 만난 시인, 자선시 - 배동욱

 

 

달을 보다 외 4편

 

 

 

이애, 저기 저 달 좀 보아 밤이

삼단 같은 초승달의 머리채를 휘감아 쥔 밤이

온 동네를 끌고 다녀

아아 저 달 저 달 좀 보아

머리칼이 다 뽑힐 지경인데도 울지를 않아

내가 노래를 불러줄까

내가 노래를 부르면

숲의 나무들과 바다가 따라 하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하네

초승달의 머리칼을 움켜잡은 채

밤은 잠이 들고

잠들지 못하는 것들은 죄다 강가에 서서

초승달을 닮은 얼굴들을 들여다보네

아아 우리들 좀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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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집

 

 

 

누구든 오래

가슴 속에서 붉게 달구어 낸 소리는

저 먼 곳으로 퍼져 나가

바람을 만나 바람소리가 되고

비를 만나 빗소리가 되고

파도를 만나 파도소리가 되면서

꿈꾸던 별에 이르기까지

사라지지 않아

 

누구든 별을 보는 가슴마다

일어나는 소리

부르는 소리와 부르지 못하는

소리가 만나 저마다

가슴 속에 짓는 세상

끝없이 반짝이는

소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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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는 하늘

 

 

 

한때는 뜀뛰며 달리던 하늘이

내 곁에 눕는다

자꾸 눕는다

푸드득 까치가 날아오른다

그 바람에 나뭇잎도

떨어져 내 곁에 눕는다

눕기만 하면 늘 혼자가 된다

 

지나가던 길이 문을 두드리지만 무슨 상관이랴

일어나 앉거나 서기 전까지

누운 자에게는 세상도 평화이러니

 

아는 이의 시어머님이 소천召天했다

또 아는 이의 아는 이가 암 선고를 받았다

누우면 잊어라 잊어라

해도 이토록 빨리 지는데 무슨 상관이랴

 

꽃신 사다 주마 하면

웃기만 하던

치료제治療劑가 되어 주마 하면

눈물 글썽이던

그 하늘이 내 곁에 눕는다

 

종이비행기나 종이배를 접으면

그것들보다 먼저 세월歲月이 떠났다

이제 새삼 몸을 일으켜

떠나는 것들을 배웅할 수 있을까

 

낙엽落葉은 흐느껴 운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꽃신 사다 주마

낙엽落葉은 울음을 그칠 줄 모르고

돌아보면

어쩌면 이리도 많이들

서로가 서로의 곁에 누웠는가

누운 자들의 누운 평화平和여

 

바다가 내게로 온다

바다에도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는 줄

이제사 알겠다마는

내가 누우면

기억들도 평화로이 눕는다

 

국화꽃 향기가 너무 짙다

떠도는 모든 것들 이리로 내려와

고단한 날개를 접고

이제는 누워 평안平安하라

 

발 이리 내밀어 봐

꽃신 신겨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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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의 노래

 

 

 

햇살이 물수제비뜨는 江

금빛 물비늘 타오르는 불꽃에

눈이 멀고

 

강가의 숲

물결 위로 바람이 불고

고음과 저음이 일렁이는 빛의 노래

귀 밖의 귀로만 듣는

흔들리며 멈춰 선 다른 세상

모든 통증痛症이 사라지는 세이렌의 노래

 

나도 비어가는 것들의 노래가 되어

저 무수한 빛 가운데 빛으로

꿈인 듯 환청幻聽인 듯 흔들리며

오래

서 있고 싶다.

 

 

 

 

 

 

*세이렌(Seiren)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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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이 되어

 

 

 

저 먼 산 능선은

끝내 걸어 보지 못하고

바라만 보게 될 곳

 

두 뼘 밖의 것들은 모두

그러하다 오래 길들었어도

잎이 나무를 떠나듯

떠나고 떠나보내는 것들

 

태초부터 불던 바람은

세상 모든 집의 틈서리로 우우

짐승처럼 밤낮 울고

 

잘못 내린 낯선 정거장

막다름이 되레 정겨워지는

길 밖의 길에서는

神의 사랑도 때때로 사레가 들리고

어느 날 너와 내가 빈 들이 되어도

약속의 땅이 아닌 남의 땅

가난한 들 위로

한사코 해가 뜨고

별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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