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김지율
비인간 외
-어떤 문장에도 사라진 누군가의 이름을 붙인 적이 없다
눈을 뜰 때마다 지는 꽃이 함정
이후부터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천천히 이유가 생겼다
모르는 개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든다
창밖을 내다 본다 누군가의 발자국이 전쟁과 평화,
전쟁과 평화를 외치며 그 골목을 도망치듯 쫓겨 다닐 때 점점 깊어지는 것은
구덩이가 아니다 거기에도 사람이 있어요
지나가는 사람이 놓은 돌 위에 지나가는 사람이 되어 돌을 놓는다 천 명 중의 한 사람과 만 명 중의 두 사람이 밤보다 더 깊은 강 속으로 숨으러 들어가면 나보다 개가 먼저 집에 와있었다 그 밤 강 건너 숲에는 다시 폭설이 내렸다
햇살 아래서 목을 숙이자 안부를 묻는 듯 목이 구부러진다 겨울을 지나며 나는 더 작아졌고 잘 가라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개처럼 짖지 않았으므로
제발 거기, 거기에도 사람이 있어요
다시 폭설이 내렸다 어떤 일이 일어난 미래처럼 발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자 서서히, 문득 새로운 발이 생겼다 개와 사람의 발밑으로 하얗고 둥근 그림자가 지나간다
빠져나가는 길은 오직 통과하는 것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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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징후들
바다를 보러 갔다 내가 모르는 바다와 갈매기와 내가 모르는 파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바다 옆에는 내가 모르는 여관이 있었고 그 앞으로만 걷는 개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바람이 새처럼 날아와 창문에 부딪혀 툭툭 떨어졌다 꿈에서 깨면 왜 슬플까 혼자서 부서지는 나의 절벽을 사랑이라 말한 당신은 어쩔 수 없는 것은 기후라고 했다 바다를 보러 갔다 부서지는 것은 부서지는 곳에만 있다 문 뒤에 숨어 있으면 알게 되는 것들 내가 모르는
밤바다 밤
바다 밤바다와
내가 모르는 쓸모와 내가 모르는 물고기 내가 모르는 연들이 날아간 해변 힘껏 내지른 소리들이 어둠 속을 헤매다 우리가 잠시 바다였을 때 내가 모르는 세 개의 농담과 세 개의 망치와 내가 모르는 새의 가난한 발이 닿는 곳은 기적 나는 쥐고 있던 흰 돌멩이를 내가 모르는 바닷속으로 힘껏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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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율
경남 진주 출생으로 2009년 《시사사》로 등단했다. 시집 내 이름은 구운몽, 우리는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