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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최 정 - 반 토막 외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4.03.16|조회수18 목록 댓글 0

신작시 | 최정

 

 

반 토막

 

 

 

졌다

완벽하게 졌다

 

매년 기록을 깨는 폭우와 폭염

풀은 비가 내리는 대로 자라고

벌레들은 어찌 점점 많아지는 걸까

 

비가 와서 일 못하고

너무 더워 나갈 엄두는 안 나고

 

감자 반 토막

미니 단호박도 반 토막

고추는 따기 전에 전멸

 

사실 갱년기 내 몸도 반 토막

덩달아 머리숱도 반 토막

 

지구가 몸살 중이라

반 토막만 걷어 가라 하니

유구무언有口無言

 

이왕 토막이 난 김에

내 마음이라도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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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비가 올 때마다 물을 먹어

커질 대로 커지더니

간신히 들어 올릴 만큼 커지더니

 

속이 꽉 차 더는 불릴 수가 없는지

꼭지 부근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

 

저리 상처가 났으니 썩어 버리겠다 싶었다

 

불볕이 며칠 이어지자

늙은 호박은 투명한 진액을 뱉기 시작했다

진액을 잘게 이어 붙여 상처를 덮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 스스로 꿰맸다

 

엄마는 늙은 호박을 장롱 위에 올려 두고

겨우내 노란 호박죽을 끓였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이깟 고단함쯤은 거뜬하게 꿰매야 한다는 듯

 

여자에겐 이만한 게 없는 겨

 

삭신이 쑤신다며 호박죽 쑤며

농사에 지친 몸을 노랗게 풀던 엄마

 

나도 해마다 늙은 호박을 심는다

푹 끓여 내린 호박즙 엄마처럼 노랗게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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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

충북 충주 출생으로 2008년 시집 『내 피는 불순하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산골 연가』, 『푸른 돌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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