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한영채
여름 숲 외
비 개인 아침 매미들 목 놓아 운다
그 숲으로 가는 길
모자 속으로 말매미 울음이 우르르 몰려
우듬지 바람이 덩달아 운다
동쪽에서 싸르락
서쪽으로 싸르르르
솔 이파리 동서로 쓰러지는데
시베리아 어느 침엽의 거리를 맨발로 질주하는 것 같다
고개 숙여 걷는 저 여자
목줄 맨 개 한 마리 따라간다
청량한 물빛이 푸른 잔디 맨발을 간지럽힌다
밟을수록 단단해지는
진흙이 발가락 사이 비집어 오른다
등뼈처럼 휘어진 메타세퀘이아 뿌리에
잘근잘근 맨발이 누른다
키 큰 그 숲에 말없이 걷는 그림자
고개 숙여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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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혹은 일그러짐
산 너머 서녘 하늘이 물감을 푼다
강이 낭자한 출혈이다
절체절명의 찰나가
여섯 시와 일곱 시 사이를 가로지르고
북쪽과 서쪽 강변이 가슴에 불을 붙인다
에게해에서 보았던 그 검은 일출
파랑이 보라로 휘몰아치는 일몰
그사이 붉은,
표현되지 않는
표현할 수 없는
지평선 혹은 물의 감정이
일몰 혹은 일그러짐
숨어서 심장은 더 붉어져 오는
닿을 수 없어 아득히 먼 곳
서녘은 시간의 표정으로 일그러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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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채
2006년 《문학예술》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모량시편』,『신화마을』,『모나크 나비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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