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채수옥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앙꼬 외
독일마을을 걸었다. 비행기가 아니고 배도 아닌 자동차를 타고 가볍게 도착한 남해에는 없는 독일이 붐비고 있었다. 없는 독일마을에는 없는 독일의 바람이 불고. 없는 독일의 구름이 흘렀다. 없는 애인과 팔짱을 끼고. 없는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없는 독일의 인형과 없는 모자를 써보며 웃었다. 없는 애인과 없는 팔찌를 나눠 끼고. 없는 독일 맥주를 한 잔 한 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찐빵집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마주 보고 후후 불며 앙꼬 없는 찐빵 속을 걸었다. 폭신하고 달콤한 길을 뜯어먹으며 없는 앙꼬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없는 길들이 원 안에서만 뱅글뱅글 돌았다. 없는 애인이 어지럽다고 했다. 없는 길들이 엉키고 뭉쳐졌다. 없는 애인이 앙꼬 없는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없는 앙꼬에 대해 탓하지는 않았다. 없는 앙꼬 때문에 우리는 없는 이별을 속으로 결심했다. 없는 애인이 찐빵 속을 걸어 나갔다. 앙꼬는 나한테도 없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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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드
땀띠 나는 마음들을 빗방울이 쫒는다
머리에 가방을 얹고 뛰어가는 사람과
검은색 우산이 한 줄로 드르륵 박힌다
얼룩처럼 흐려지는 나와 출렁이는 푸른 나무 사이
사선으로 빗겨 가며 바코드가 찍히고
우리는 한 묶음의 여름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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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옥
2002년 《실천문학》 등단했다. 시집 『오렌지는 슬픔이 아니고』, 『덮어놓고 웃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