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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한영희-동물의 숲 외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4.06.04|조회수56 목록 댓글 0

사이펀 신작시|한영희

 

 

 

동물의 숲

 

 

 

눈 뜨면 섬 풍경을 한 바퀴 둘러본다 사과를 따고 꽃밭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다 밤사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엉성한 낚싯대와 잠자리채를 만든다 바닷가에서 산호 연잎성게 방석고둥 소라를 줍고 낚싯대를 바다에 던진다 입질이 오면 순식간에 A 버튼을 눌러야 한다 초롱아귀 도미 농어 전갱이 넙치 복어 클리오네를 낚아 너굴 상점에 판매한다 운이 좋은 날에는 산갈치와 철갑상어를 잡아 박물관에 기증한다 해녀가 되어 굴 가리비 해삼 던지니스크랩 문어를 잡아 올린다

 

섬을 사랑해 꽃씨를 뿌리고 어린나무를 심는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밤이면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빈다

 

사과를 팔고 해산물을 팔고 곤충을 팔아 평생 모아야 이룰 수 있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사흘 만에 아들에게 선물했다

 

고양이 강아지 돼지 얼룩말 독수리 소 까치를 불러 아름다운 섬나라를 건설하고 중독된 섬에서 로그아웃했다

 

며칠 후 돼지가 꿈에 찾아와 나를 깨우고 효과음들이 앵앵거리기 시작했다

 

뚜뚜뚜뚜 딴따라 딴

띠리링 띠띠 또르르

 

손대지 않기로 했지만 동물들이 눈 속에서 출렁거려 전원 버튼을 다시 또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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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새로 태어나고 싶었어

 

무등산 아래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떠드는데

지나가는 농담처럼

나도 슬쩍 떠들었지 뭐야

 

작은 날개를 팔딱거리며 멀리 날지 못해도

괜찮아

 

어릴 적 별명이 딱새였던 것 같기도 해

조그맣고 마른 여자아이가 쉼 없이

혼잣말을 했거든 쫑알쫑알

 

엄마가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 물었어

 

어른이 되면서 말들을 입속에서 굴리다

삼키는 버릇이 생겼어

 

그 대신 푸른 가슴의 이야기를 써

 

날고 싶어 멀리 가까이 멀리

설중매의 숨결과 달콤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

 

나무로 태어나고 싶은 김시인과

나는 딱새가 되어

 

겨울에만 찾아오는 철새를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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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희 2018년 투데이신문 직장인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 『풀이라서 다행이다』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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