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김 령
합리적 의심 외
시인의 첫 등단작 제목을 맞히시는 분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요저요, 빅풋요
동네 책방 북토크 행사장
상으로 딸려오는 시집을 받고
가슴에 화르르 꽃이 핀다
수없는 호구짓, 사기를 당하고
눈앞의 시집 한 권, 볼펜 한 자루에
큰 횡재라도 한 듯 부풀어 오른다
다들 하품하는 교직원회의 교장선생님 훈화 도중
졸다 깨서 나도 모르게 손 번쩍, 상품권을 받고
스카프를 받고 동료들 눈총도 받았다
단발머리 시절, 수업 시간 끈으로 엮인 듯
선생님의 눈초리를 쫒다 질문을 예상하고
반쯤 미리 손을 들었지
좁은 골목 접촉 사고, 뺑소니로 신고돼
잔뜩 주눅 들어 받는 교통안전 교육
여름 한낮 물속 같은 고요를 깨고 저요저요,
아마 저쪽에서도 저요저요, 손을 들고
이쪽으로 건너왔을 것이다
아무도 자원하지 않는 이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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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지런히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지는 법이어서
아니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을 핑계를 댄다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사람 목숨은 건졌지 않냐고
전 재산 집을 잃고, 자신 명의 대출금만 남아도
아직 젊으니까, 돈은 또 벌면 되니까
살아남을 위로를 필사적으로 한다
까마득한 절벽 위태로이
미끄러운 발밑, 힘이 빠지는 팔
필사적인 매달림이 필즉사로 끝난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
지나고 보면 너무나 분명한 필사의 길로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들
육 개월을 못 버티는 간판들
간판과 내용물이 다른 가게들
구름의 그림자는 흰색이어서
그것이 우리를 덮칠 때까지 알지 못한다
구름은 멀고 높고 빠르다
거리에 뒹구는 검은 봉지처럼
바람이 부는 대로 사람들은 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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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 2017년 <시와 경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대상(시)을 받았으며 시집 『어떤 돌은 밤에 웃는다』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