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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선정 - 밀서 외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4.06.04|조회수40 목록 댓글 0

사이펀 신작시|이선정

 

 

 

밀서 

      

 

   

복숭아가 물러터졌다

물러터진 문화예술인을 물러나게 한 즈음이었다

 

발갛고 탐스러운 외관은 썩은 속내를 감추고 

구린내를 은닉하기 적당한 장소

 

복숭아를 세어볼까?

블랙리스트 1*

블랙리스트 2

블랙리스트 3

 

까끌까끌한 털을 세워

물러터진 반쪽이 멀쩡한 반쪽을

블랙으로 고발했네

 

복숭아 색이 예쁜 이유가 뭔 줄 아니?

부끄러움을 아는 붉은 볼을 가졌거든

썩은 복숭아 볼도 최초의 색은 아마

붉음이었다

붉음이었겠지?

붉음이었을까?

 

ㅠㅠ 15브릭스를 많이도 주입했네

달큼한 명예에 속살이 물러터지는 줄도 모르고 

아미그달린의 시안화수소로**

샴쌍생아의 몸통을 잘라낸,

 

 

 

*문화계의 '청와대 블랙리스트' 파문

**복숭아 씨앗 속에 내재된 중독성 강한 맹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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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낯선 시골 버스터미널에서 안녕을 고한다

 

조문을 마친 저녁나절의 빛은 하필 따사롭고

군데군데 깨진 타일 바닥 위 눈부신 자태로

이곳까지 배웅 온 그를 알아보겠다

 

이미 다 태워져 부서진 육신으로

그림자조차 어쩌면

밝기도 하지 당신,

 

슬픔의 향낭은 빛줄기에 매달려

눈을 고쳐 뜨고 바라볼수록 시린 향을 뿌린다

 

한번 떠나면 다신 올 일 없는

낯선 시골 버스터미널처럼

이별은 아득하고도 단호해야지

 

안녕!

 

마지막 인사를 하고

버스가 떠날 때

의식처럼 단호하게 소나기가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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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정 강원도 동해 출생으로 2016년 《문학광장》 등단했다. 계간 《동안》 , 《시와징후》 편집위원이며 시집으로 『치킨의 마지막 설법』, 『고래, 52』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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