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박석구
안부 외
방동사니 몇 포기
햇빛들이 직조하는 성근 그물 안에서
바람들과 속삭인다
속삭임은 작은 개미들이 물어
대문 옆 부서져 땅에 떨어진 우편함 속으로 옮긴다
방동사니 그림자처럼
그림자라는 글씨를 그리는 것처럼
부신 햇살에 퍼렇게 잠든 오전을
잠깐씩 바람으로 토막 내는 뻐꾸기 소리
절절한 마음도 끊기고 난 우편함
발아래 저문 냉이잎에 쌓인 먼지처럼
당신은 잘살고 있느냐고
나는 잊었다고
대여섯 잎의 눈으로 흘기는 비름 한 줄기
-------------------------------------------
세월
강물을 푸른 은행잎이 되어 따라가는 아침
눈여겨보니 절정의 달개비꽃이 그리움을 보챈다
흐르는 것은 어디 강물뿐이랴
이미 흘러간 밤이슬과
철없는 시절 가벼운 숨결 늦은 사랑 기침 소리
결국 주위는 오직 적막으로 스며들어
내가 가는 길을 지켜보지만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풀잎들이 억세다
바다가 가까워지자 내 손이 풀잎이 되어 간다
-----------------------------------
박석구 2015년 《문학에스프리》로 시 등단했으며 2011년 《에세이스트》에 수필가로도 등단했다. '추억의 사립문' '사랑의 방명록'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