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배경희
썸바디 외
오늘은 약국에서 파란 알약을 삽니다
늘 먹던 흰색 약은 수평으로 지루했어요
생활을 이어갑니다
온몸이 아프도록
겨울햇빛 받으며 소파가 됩니다
하늘과 흰 구름, 새들이 고입니다
난간에 앉은 까마귀
먼 곳을 응시합니다
유리병에서 산딸기가 구름처럼 폭발하고
더 아픈 당신이 모든 알약을 끊는다고요
늘 하던 이야기가 집니다
터진 여름이 끈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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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죽음
한순간 비명소리
숲속을 찢어놨다
가슴이 뛰었고 그림자가 몰려왔다
공중에 검은 물감을 뿌려놓은 까마귀들
거칠어진 침묵 속에 검은 눈을 보았다
살아있는 들풀이 바람에 흔들리듯
솜털이 맨드라미처럼 연민으로 일어섰다
피 묻은 개를 보고 열심히 닦았는데
지워지지 않는 피에 고개를 돌렸다
온종일 은사시나무가
이쪽저쪽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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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희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흰색의 배후』, 『사과의 진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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