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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펀 문학토크

토크대담-대구의 시인을 만나다-박상봉 시인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4.06.03|조회수138 목록 댓글 0

16회 사이펀문학토크

 

대구의 시인을 만나다

 

박상봉 시인 | 『물속에 두고 온 귀』

 

제16회 대구의 시인을 만나다에는 박상봉 시인이 1부에 초청되어 노태맹 시인과 대담을 가졌다.

 

# 제1부 | 박상봉 시인 : 대담-노태맹 시인

 

달빛 아우라의 시편들

 

 

노태맹 반갑습니다. 박상봉 시인은 그동안 기획자의 입장에서 행사를 주관만 하시다 초청되셨으니 오늘 남다른 기분이겠습니다. 먼저 약력을 보면 1981년 「국시」를 시작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첫 시집 『카페 물땡땡』은 2007년에서야 나오게 됩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시집들의 시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고, 이번 시집의 28쪽 「일식」이라는 시는 제가 보기에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총정리’처럼 보입니다.

시인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를 위한 참 많은 활동을 그동안 하였음에도 첫 시집 발간은 왜 이렇게 늦었는지, 첫 시집 이후 두 번째 시집까지는 왜 14년이나 걸렸는지, 그동안 어떠한 일들이 시인의 삶 위로 지나갔는지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상봉 첫 시집이 마흔아홉 살에 나왔고 예순이 넘어 두 번째 시집이 나왔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게으름’이라고 질책을 받기도 하고 ‘시업에 대한 염결성이 강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글쎄요, 시인의 문학 활동을 시집으로만 평가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시를 쓰고 또 매일매일 시만 생각하고 산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시를 사는 진정한 시인’이 아닐까요?. 십 대부터 시나무에 목을 매달고 살았습니다. 죽을 둥 살 둥 썼지요. 시를 잡으려고 그 외 모든 걸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자도 떠나보내고 직업도 자식도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시만 붙들고 살면 다 이루어지는 줄로 믿었습니다.

 

사실 제가 문청이었던 그 시절에는 등단도 자유롭지 못했고 발표 지면도 거의 없었습니다.(문지, 창비 폐간 등) 또 대통령이 시해되고 계엄령 선포되고 5.18 사태가 일어나고 하는 당시 정치 사회적으로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저는 일찍이 박기영 안도현 장정일 시인과 함께 국시 동인을 결성해서 마치 레지스탕스 독립 전쟁을 하듯이 문단 활동을 치열하게 해왔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사실상 국시는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아닙니까. ‘국시’는 시를 통해서 나라의 근본을 세우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각오를 그때 동인 정신으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그게 시의 생활화 운동으로 나타났고 통신 문학이라는 독특한 국시 팸플릿 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80년대, 군사정권 아래 시대의 어둠과 질곡이 우리 사회를 전방위적으로 억눌렀지만, 그곳에서는 문학적 낭만과 청춘들의 치열한 예술적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문화기획자로서의 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구에서는 최초로 탄생한 북카페 ‘시인다방’입니다. 그 공간에서 문청들, 문화애호가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유하는 기회를 만들었고 지역 문학의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생각하며 무거운 짐을 남몰래 혼자 지고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자리를 동료 시인이나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본인의 개인적인 시 발표 무대에서는 멀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태맹 첫 시집이 2007년, 두 번째 시집 『불탄 나무의 속삭임』이 2021년에 나왔고 이번 시집 『물속에 두고 온 귀』는 2023년에 나왔습니다. 연도상으로 보면 2021년 시집과 2023년 시집이 가까울 것으로 생각되지만, 저는 2021년의 시집과 2023년의 시집에서 상당히 다른 풍경과 시적 테크네가 느껴집니다. 이번 시집은 많이 안정되어 있고, 매우 괜찮은 시집으로 읽힙니다. 각 시집들의 시간적 거리와 공간적 차이, 시인의 정서적 차이들은 어떤 것일까요?

 

 

박상봉 공간적으로 보면 첫 시집이 안에 머물러 있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밖으로 나가서 시적 공간의 자리 옮김으로 새로워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간상으로는 이번에 세 번째 시집 《물두귀》는 두 번째 《불탄나》나 첫 시집 《카페물땡땡》보다도 훨씬 더 과거로 돌아가 있습니다. 20대 나 10대 이전의 기억들이 반추돼 나타나 있고 때때로 가족 서사의 양식으로 배치돼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 생각하는 이번 시집의 대표 작품은 ‘일식’이라고 하겠는데요, 지난 40년간의 세월이 압축된 시입니다. 나의 시는 상당 부분 지나온 것, 사라진 것에 뿌리를 두고 있지요. 이는 물론 나이 듦의 정조와 깊은 관련을 맺습니다. 그 정조는 주로 지난 일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 뉘우침 등의 감정을 불러옵니다. 어쩌면 나는 사랑으로부터 멀리 도망간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사랑은 늘 일정한 간격을 두고 먼발치에 있습니다. 그대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나의 먼 나무입니다. 시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가 그렇습니다. ‘가는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는 그것은 ‘불탄 나무’이고 ‘물속에 두고 온 귀’에요. 나는 또 섬처럼 멀찍이 떨어져 고립돼 있습니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재미나게 토크를 이끈 박상봉 시인과 노태맹 시인

 

 

노태맹 대체로 시인들이 시집을 낼 때 그동안의 시들을 단순하게 뭉쳐서, 묶어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떤 방향성을 염두에 둔다고 보는데, 담백하게 질문드리면, 이번 시집 전체에서 시인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가요?

 

박상봉 초승달이 떠 있는 골목길에서 얼떨결에 키스했는데 아이가 생겼습니다.(관객들 웃음) 날이 갈수록 초승달이 차오르기 시작해 부모 손에 이끌려가서 아이를 지우는 불상사를 당하지 않으려고 몰래 부산으로 야반도주했어요. 푸릇푸릇하던 스무 살 나이는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고 스물두 살에 아이 아빠가 되었습니다. 딸아이를 안고 업고 어르고 달래며 공무원 시험이라도 쳐보려고 몸부림치던 시기였습니다. 너무 일찍 무화과 열매를 따 먹은 죄의 형량이 만만치 않아 사는 게 많이 힘들었지요. 친구들이 대학 캠퍼스에서 한껏 낭만을 누리던 나이에 우윳값 벌러 다닌다고 바빴답니다. 담요 공장에라도 가서 일하려고 면접보러 가는 날, 면접 시간 때문에 서둘러 버스를 타려고 허겁지겁 길을 건너다가 그만 무단횡단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경찰서로 법정으로 오랏줄에 엮여 끌려다니고, 하마터면 삼청교육대로 갈 뻔한 어처구니없는 일도 당했지요.

 

달빛의 푸른 아우라에 둘러싸여 있는 박꽃의 청초한 모습을 보면 스물두 살에 낳아 애지중지 키운 딸아이가 둥글게 떠오릅니다. 오래전 내 품을 떠났지만, 그 아이를 키우면서 남몰래 흘린 눈물이 지금도 가슴 아래쪽을 꼭꼭 찔러요. 설핏 잠들었는데 배에 올라타 조그만 내 젖꼭지를 물고 빨고 애쓰는 그 애처로운 모습에 왈칵 눈물을 쏟았던 그 아이가 지금은 남매를 키우며 의젓하게 한 가계를 이루고 잘 삽니다. 그 아이와 나의 일생을 반추하면서 ‘일식’에 나오는 “아이는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나를 낳았다”라는 구절처럼 저 자신이 도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까, 돌아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편으로는 잘못을 나 혼자만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하지도 속죄할 줄도 모르는 뻔뻔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세상입니다. 우리는 거짓의 공동체에 살고 있으며, 속량해야 할 일이 많다고 봅니다. 늦은 나이지만 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겁게 속죄하고 싶습니다.

 

 

김용조 시인의 시낭송

 

이복희 시인의 시낭송

 

노태맹 네. 아주 만만치않은 젊은 날의 풍경들을 들려주시는군요. 시집 표제가 된 20쪽 「물에 잠긴다는 것」 마지막 연은 ‘바다 깊은 물 속에 두곤 온 귀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데// 물에 잠긴 귀가 듣는 소리는/ 아이들 우는 소리만 들린다’입니다.

여기서 앞 연의 찾지 못한 물에 두고 온 귀와 아이들 우는 소리만 들리는 귀는 다른 귀로 읽힙니다. 앞 연의 ‘바다 깊은 물 속에 두고 온 귀’를 주어로 읽어야 할까요, 아니면 목적어로 읽어야 합니까? ‘귀가 아무도 찾지 못한 것’인가요, ‘귀를 아무도 찾지 못한 것’일까요?

 

박상봉 16쪽 「이명의 바다」에서도 귀(청력)를 잃고 듣지 못하는 시련을 겪어낸 화자가 등장합니다. 이 시들이 개인적인 경험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시입니다. 이번 시집에는 제가 경험한 사실과 감정이 녹아 있습니다. 갑년을 지내고 보니 앞날보다 지나온 날에 먼저 눈길이 가더군요. 그리고 주어와 목적어는 저도 아직 못 찾았습니다. ‘물속에 두고 온 귀’도 아직 못 찾았고 이명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그게, 웅웅 거리는 소리만 들립니다. 마치 아이들 우는 소리 같이 들려요. 사실 문법적으로 이 문장은 삑사리 나 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도 수정하자고 했는데 그냥 둔 이유는 ‘물에 잠긴 귀’가 소리를 제대로 못 듣는 소리의 삑사리 상황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묘사하고자 했습니다. 문장의 한계입니다. 그걸 극복하고자 시도한 나름의 문장 기법입니다. 좀 억지스러운가요?

 

노태맹 사실 제 질문은 시의 구조보다는 이런 것입니다. 저는 시인의 시 속에서 타자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세월호의 아이들이라는 타자가 등장한 시가 위 시입니다. 시인은 늘 혼자 있고, 타자와 마주치지 않고, 그러나 늘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43쪽의 「꽃마리」라는 시에서 ‘나는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늘 외로우신 건가요? 아니면 저의 이 규정에 대해 반박해 주실 건가요?

 

 

이날 초대시인 박상봉, 김현옥 시인

 

박상봉 그리움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요? 개도 그리움이 있습니다. 나무나 꽃들도 그리움 때문에 피고 지고 모든 인간과 동물뿐 아니라 식물과 햇빛과 공기와 먼지까지 우주의 모든 존재가 그리움에 중독된 상태 아닌가 싶습니다. 군중 속 고독이라고 했는데 외롭지 않은 사람도 있는지 되묻고 싶네요. 누군가 또는 뭔가 그리운 상태가 외로움 때문이겠지요.

 

이 시에서 물에 잠긴 화자는 실제로 어린 ‘나’입니다. 죽은 ‘나’이기도 합니다. 나의 일곱 살은 강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때 죽은 ‘나’가 지금 정말 살아 있는 건지 지금 세상이, 내가 사는 이곳이 어린 내가 죽은 곳, 그때 그 물속인지, 물 바깥으로 나온 건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정말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노태맹 시인의 약력에는 ‘시인 다방’을 운영하신 것도 있습니다. 그동안 대구와 경북에서 참 많은 시인들을 만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 40-50년 전의 시인과 현재의 시인, 과거의 시와 현재의 시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정호승문학관을 가득 메운 대구의 독자들

 

 

박상봉 시인다방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이 많고 어제 매일신문에도 나왔고 또 복사해서 제가 다 돌렸습니다. 읽어보시고요, 오늘 참석하신 분에게 한마디만 들어보시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심강우 소감?)

 

노태맹 저는 개인적으로 시인의 다음 시집이 기다려집니다. 그동안 지층으로 묻혀있던 시들이 훨씬 세련되게 드러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다음 시집은 어떤 시들로 채워질까요? 그리고 마무리에 앞서 이 자리의 독자들을 위해 자작시 한 편 낭송 부탁합니다.

 

 

자신의 시를 낭독하는 박상봉 시인

 

박상봉 저는 시 쓰는 일보다는 어떻게 하면 시가 더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시 보급 운동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앞으로 제가 하고자 하는 활동이 어떻게 보면 옛날 ‘시인 다방’을 이어가는 것이고 지금 앞산 카페거리에 있는 시집 전문책방 ‘산아래 시’에서 상주작가로 활동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시인은 오늘 아침에 시를 쓴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요. 매일 시를 쓰고 읽는 사람, 그 사람이 시인이고 작가입니다. 저도 그런 작가가 되어 늘 갱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허술하고 모자란 시편을 깊이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낭송)

 

태양 속 아이들

 

태양 속에서 아이들이 걸어 나온다

 

집을 짓는다 나는 주소를 모른다 꽃밭을 만든다 꽃 피는 커피나무를 심는다 대문이 솟아오른다 각자의 집에 문패를 단다 골목길을 연다 강물은 그즈음에서 넘치고 모두 나와서 발을 씻는다 식구들은 괘종시계를 건다 지붕 위에 빨래를 넌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풍차가 무더기로 죽는다 눈은 종점에 내리고 13월에 꽃들이 피어난다 밀물의 방패를 들고 섬들이 밀려난다 바다가 뒤집힌다 아이들은 아프리카로 간다 무지개는 사막에서 온다 태양의 중심에서 별들이 풀려난다 방안으로 들어와 달빛은 슬피슬피 운다 이미 세상엔 태양이 없다 아이들의 종적도 알수 없다 빈방이 저 혼자 집을 지킨다 둥근 물방울 속 잠은 흡반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결별한 어제를 빨아들이고 시냇물을 빨아들이고 싸리꽃 흙길을 빨아들이고 혓바늘 돋는 문장의 짧고 거친 호흡으로

 

구름 위를 걸어 다니는 둥둥 울리는 북소리

 

 

박상봉 시인이 지경광 선생의 에어로폰 연주에 신이나 즉석춤을 보여주고 있다.

 

 

노태맹 네. 이것으로 이번에 좋은 시집을 출간하신 박상봉 시인과의 토크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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