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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시집 리뷰:여문 듯 성성하게 낮은 데로 훑고 지나는 소리 할(咶)-정훈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6.09.17|조회수39 목록 댓글 0

사이펀이 주목한 시집

 

여문 듯 성성하게 낮은 데로 훑고 지나는 소리 할()

성선경 시집 『풍죽』(파란, 2026) 론

 

 

정훈(문학평론가)

 

 

성선경 시집 『풍죽』(파란, 2026)은 시퍼런 바람에 오랫동안 누워 지평에 걸린 누런 노을을 훔쳐보는 석불의 눈처럼 한정 없는 세월이다. 이 ‘세월’은 파란만장의 풍파를 훑은 시간의 빛바랜 지층보다는 오히려 여러 번 씻기어 물때 벗겨진 멀건 우윳빛의 자갈, 그 깊고도 먹먹한 고요가 이룬 소리가 출입한 커다란 문으로 짜여 있다. 문 열고 들어서면 필부(匹夫)의 잠방이처럼 널브러진 호흡이 보인다. 거칠게, 혹은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생각이 하염없이 먼 길을 가는 듯 들고나는 사내가 겪은 삶의 질감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대개 삶의 지혜라든지 은은한 성품의 빛깔 같은 수사는 이에 낄만한 여지가 못 된다. 시집의 표제어인 ‘풍죽’이란 두 음절에서 전해지는 묵직하면서도 결연한 매무새를 보라. 아무래도 이러한 말맛, 혹은 어취(語趣)라고도 할 수 있을 말에서 독자는 그간의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곧추세워 바짝 차린 정신의 자취를 찾고만 싶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시집에 실린 시편들이 얼기설기 세워 둔 진실의 잔솔가지를 매만지며 허허실실(虛虛實實)의 묘책마저 건지는 효과를 던진다. 이러한 아이러니, 공심(空心), 대책 없는 건짐의 읽기를 쥐다 보면 어느새 우리 사는 꽉 찬 듯 헐렁한 이 세계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찾으며, 그리고 무엇 하나 새기는 일이 값진지 천천히 체득하는 묘미 또한 없지 않다.

 

문득 새벽에 깨어나 책상에 앉았는데

벽에 걸린 풍죽을 지긋이 훔쳐봤더니

그 구도가 마치 아름다울 미()처럼 보인다

한갓 대나무도 만고풍상을 겪어

그것을 슬기롭게 이겨 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것인가?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염화시중

내 삶의 길이 보인다

시인 도종환은 이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읊었는데

풍죽도 그러하단 것인가?

이른 새벽 문득 깨어나

새로운 삶의 한길을 보는 이 기쁨

대나무가 대나무로만 보이지 않는

이 아름다움을 간송 선생께서도 이미 보셨겠지?

한갓 대나무도 만고풍상을 겪어

그것을 슬기롭게 이겨 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것

저 바람에 흔들리는 풍죽이 오늘 새벽

아름다울 미()처럼 보인다.

 

「풍죽 2」

 

“한갓 대나무도 만고풍상을 겪어/ 그것을 슬기롭게 이겨 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것인가?”란 의문 하나 가득한 시편이지만, 이러한 의문의 길에서 찾아낸 깨달음이란 “저 바람에 흔들리는 풍죽이 오늘 새벽/ 아름다울 미()처럼 보인다”이다. 여기에는 “한갓 대나무”조차 “아름다울 미()”로 화하는 그림을 보는 시인의 눈에 초점을 맞추어도 되는 묘미도 발견하게 되지만, 어쩌면 하나의 대상이 객관적인 대상을 넘어 심법(心法)의 일부로 여길 때 홀연 생겨나는 깨달음이 들어 있겠다. 그러니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염화시중/ 내 삶의 길이 보인다”고 한 것이고, 화자가 걸어가야 할 삶의 행로에 온갖 풍상을 겪고서도 지혜롭게 이겨내고 처신할 때의 마음가짐을 연년세세 잊지 말아야겠다는 뜻을 실어야겠다는 심산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풍죽’이란 아무래도 시인을 꽉 붙잡아 둔 채 놓지 않으려는 존재의 의미와도 같다. 바람 맞은 대나무란 필시 틈틈이 꺾이면서도 부러지지 않고, 세찬 소리 부딪치며 거죽을 할퀴어도 끝내 내놓지 않는 제 은밀한 뜻을 견지하는 이치의 다른 이름이 아니고 무엇일까? 시인이 그러한 풍죽의 자태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느꼈던 소식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대숲에는

실바람같이 일렁이는 마음이 있어

귀엣말같이 속살거리는 마음이 있어

도마 소리 밥 냄새 끊고

속리(俗離)를 한 듯

한세상 어쩌면 선계(仙界)에 들어

영영 구름같이 절로절로 흘러서

자취 없이 흩어질 듯

진주 남강 변의 작은 대숲

지척 간이라도 여기는 별유천지

이 작은 대숲에도 일렁이는 마음이 있어

귀엣말같이 속살거리는 마음이 있어

고함 소리 경적 소리 다 잊고

영영 속리한 듯

아니 이대로 한세상 선계에 들어

자취도 없이 영영 흩어질 듯

하마 속세는 다 잊은 듯

몇십 리 대숲이 아니래도

대숲에 들면 대숲에만 들면

지척도 아주 천리만리인 듯

진주 남강처럼 절로절로 흘러서

관향(貫鄕)도 잊고 나이도 잊고

아니 영영 속리한 듯.

 

「다시 대숲」

 

‘자연주의’가 문학예술에서 널리 오랫동안 작가들의 창작 방법 내지 주제로 각광받았다. 근대 이후 소설에서 인간과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을 묘사하면서 세계의 실상을 사실적인 시선으로 형상화한 ‘자연주의’가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귀의하는 포즈를 취하는 넓은 의미의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 성향을 말한다. 선비의 기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대나무는 우리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 가운데 하나다. 시집 『풍죽』은 이런 대나무를 위주로 한 시편들이 여럿 있는데, 위 시 「다시 대숲」도 ‘풍죽’ 연작의 일부이다. “이 작은 대숲에도 일렁이는 마음이 있어/ 고함 소리 경적 소리 다 잊고/ 영영 속리한 듯/ 아니 이대로 한세상 선계에 들어/ 자취도 없이 영영 흩어질 듯/ 하마 속세는 다 잊은 듯” 상상하는 화자의 심사는 일부러 헤아리지 않아도 훤하다.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이 마음이 대숲에 들어도 날아가지 않고 묻어있는 먼지 같은 번뇌로 가득 차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러니 대숲에 들거나, 장바닥 같은 세간(世間)에 붙어 눌러앉으나 매일반인 점은 변하지 않는다. 대숲 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이나 세속의 돌처럼 이리저리 뒹굴며 다니는 마음이나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세속에 고여 있을 때는 몰랐던 마음의 자리를 대숲이 생생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고 보는 게 옳겠다. 그래서 “대숲에 들면 대숲에만 들면/ 지척도 아주 천리만리인 듯/ 진주 남강처럼 절로절로 흘러서/ 관향(貫鄕)도 잊고 나이도 잊고/ 아니 영영 속리한 듯”하다는 진술에 들어 있는 이중적인 의미를 짐작해 보는 것도 의미 없지는 않다. 대숲에 들어 알아차리는 마음과, 그 마음이 본래 시간도 공간도 없는 영원한 공(空)의 영역에서 생겨난 자리의 한 부분이라는 것과, 그래서 대숲에든 세간에든 명약관화한 참 자리를 붙들고 속리(俗離) 여부와 관계없는 고요한 공간에 언제든 들고 싶어 하는 바람을 읽게도 된다.

 

꽃답다 여기면 꽃 같고

풀 같다 여기면 풀 같은

사람의 일을 어이 다 알며

사랑의 결말을 어이 다 알리

 

지나간 시간이 아름다웠다면 아름다운 대로

지나간 시간이 괴로웠다면 괴로운 대로

 

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 자세가 처연하다

 

화장을 한 것 같기도 하고

화장을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한

 

풀도 아니고 꽃도 아닌

바람에 흔들리는 음력 구월의

저 사랑 그림자

 

한 계절의 바람이 다 지나가도록

누군가를 기다린다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면

 

그 잎과 줄기는 이미 쓴맛이 들었겠다

 

꽃답다 여기면 꽃 같고

풀 같다 여기면 풀 같은

사람의 일을 어이 다 알며

사랑의 결말을 어이 다 알리.

 

「쑥부쟁이」

 

지천에 널린 쑥부쟁이를 소재로 한 시다. “꽃답다 여기면 꽃 같고/ 풀 같다 여기면 풀 같은” 식물이다. 그런 쑥부쟁이를 인생의 참맛을 일으키는 방편으로 삼는 시인의 눈길도 노련하지만, 기다림이거나 그리움의 의미 한구석에 꽂아 넣는 잰 손길도 눈여겨볼 만하다. 어쨌든 쑥부쟁이든 쑥대머리든 우리 인생이란 게 왜 이리 자명한 듯 늘 아지랑이 핀 골목을 더듬거리며 걷는 것처럼 갈팡질팡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래봐야 한 편의 시를 읽었다, 자위하며 잠방이 속을 드나드는 바람처럼 게으르게 하루를 넘어가는 인생 고개일 뿐이겠지. 『풍죽』이 전하는 말씀은 대개 이렇다. 이런 헛헛한 소리도 필시 ‘할딱고개’ 정상에 맞서 불어오는 바람마저 능히 적막한 달밤에 흐르는 대금 소리 마냥 흘려보낼 수 있었던 생의 단단한 뿌리였기에 가능한 말씀이지 않을까. 시인은 이 세계의 빈틈없이 엄숙한 표정들에 질색한 듯 덤벙거리며 걷는다. 이러한 덤벙거림이란 대체로 ‘같기도(道)’의 일주품(一住品)쯤은 거뜬히 넘긴 자라야 취할 수 있는 품새이다. 부드럽게 흘러가듯 절도 있게 다음 자세를 취하는 묘색(妙色)이야말로 이번 시집의 묘미요, 단단한 듯 비어있는 곳을 샅샅히 훑고 지나가는 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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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훈|문학평론가.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등단. 평론집 『두 사람이 걸어오는 저녁』 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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