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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시집-성선경 시집 <풍죽>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6.09.17|조회수53 목록 댓글 0

주목시집 성선경

 

 

시집속 대표시

 

구룡폭포에서 외 4편

 

 

 

백만 마리의 코끼리 떼가

백만 마리의 코끼리 떼가 지나가는데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는 꿋꿋함

백만 마리의

백만 마리의 코끼리 떼가

거침없이 지나가는데

오직 홀로

꼿꼿이 선 저 장대함

백만 마리의

백만 마리의 코끼리 떼가

지축을 울리며 지나가는데

홀로 선 미륵 하나

훔리치야 도래

훔리함리 사파하

백만 마리의

백만 마리의 코끼리 떼가

지축을 울리며 지나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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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자세

 

 

 

무게의 중심은 가급적 낮게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를 위협에 대해

엎드리듯 가장 완전한 방어 자세로

허점이 보이지 않게 더 단단히

서 있지만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엎드렸지만 엎드린 것만도 아닌

적들이 금방 들이닥칠 듯

어디서 적들이 올지 모를

초조와 불안을 감추며

가급적 무게의 중심은 낮게

엎드리듯 가장 완전한 방어 자세로

허점을 허점으로 가리며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를 위협에 대해

초조와 불안을 감추며

서 있지만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엎드렸지만 엎드린 것만도 아닌

, 내가 살아온 한평생

여기 백두의 자작나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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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가리성게

 

 

 

악몽을 꾼 저녁에는 새가 보인다

발이 많은 말똥가리성게의 가시처럼 돋는 소름

누군가는 말똥가리성게가 파랑새를 낳는다고 한다

나는 파랑새처럼 가벼워져서

그대에게 날아가고자 했으나

악몽은 악몽으로 끝나지 않고

말똥가리성게의 가시처럼 눈을 찌른다

악몽의 기억과 함께 늦은 아침

아침 햇살에도 가시를 세워 눈을 찌르고

낯모를 사람들 틈에서 나는 홀로 아침을 맞는다

다들 그렇게 바쁜가?

어디를 가서는 파랑새처럼 돌아오지 않고

발이 많은 말똥가리성게의 가시처럼

기억에 새롭게 돋는 소름

어제 저녁에 꾼 악몽처럼 나는 또 혼자다

발이 많은 말똥가리성게의 가시처럼 돋는 소름

파랑새는 벌써 날아가고 나는 혼자다

누군가는 말똥가리성게가 파랑새를 낳는다고 했는데

악몽을 꾼 저녁에는 새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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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죽風竹

 

 

 

사람살이로 말하자면

어려움을 당해서야 그 마음의 품새가 드러나듯

늘 푸른 대나무도 바람을 맞아야

제멋이다. 몇 해 전

서울 동대문 프라자에서 간송전을 보다가

풍죽風竹 복사본을 한 점 구해다 놓고

한참을 잊고 지내다 새삼

액자를 하여 거실 벽에다 걸어놓았다

마음 어지러운 어느 날

가만히 바라보니 내 마음이 다 환해진다

대숲에 든 듯 새소리

댓잎 부딪는 소리 들린다

역시 푸른 대나무도 바람을 맞아야

어려움 이겨낸 옛 어른 풍모 보여준다

여린 가지와 흐린 묵향墨香 속에서

어디 저런 기품이 숨어있었나?

새삼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

대숲에 든 듯

세속을 벗어난 듯

내가 잔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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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죽風竹 2

 

 

 

문득 새벽에 깨어나 책상에 앉았는데

벽에 걸린 풍죽을 지긋이 훔쳐봤더니

그 구도가 마치 아름다울 처럼 보인다

한갓 대나무도 만고풍상을 겪어

그것을 슬기롭게 이겨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것인가?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염화시중拈花示衆

내 삶의 길이 보인다

시인 도종환은 이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읊었는데

풍죽도 그러하단 것인가?

이른 새벽 문득 깨어나

새로운 삶의 한 길을 보는 이 기쁨

대나무가 대나무로만 보이지 않는

이 아름다움을 간송 선생께서도 이미 보셨겠지?

한갓 대나무도 만고풍상을 겪어

그것을 슬기롭게 이겨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것

저 바람에 흔들리는 풍죽이 오늘 새벽

아름다울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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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색즉시공色卽是空 외 1편

 

 

 

허물을 벗어버리고

새가 된 뱀이 있다

이것은 뱀일까 새일까

 

날개를 버리고

풀숲의 뱀이 된 새가 있다

이것은 새일까 뱀일까

 

뱀이 된 새가 더 새 같을까

새가 된 뱀이 더 새 같을까

 

새가 된 뱀이 뱀의 기억을 할까

뱀이 된 새가 새의 기억을 할까

 

무지개를 일곱 색깔로 정한 것은 뉴턴이다

 

밤의 어둠을 알지 못하는 한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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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빼빼 마른 멸치는 멀티 플레이어

멸치 네댓 마리로 콩나물국을 끓인다

멸치 네댓 마리로 된장국을 끓인다

 

빼빼 마른 멸치를

똥 빼고 머리 따고

맥주 안주로 먹는다

 

빼빼 마른 멸치를 먹는 그 사내도 멀티 플레이어

일당을 받고 자주 전공을 바꾼다

 

오늘은 벽돌을 나르다가

다음 날은 이삿짐 포장을 하다가

그 다음 날은 페인트공이 된다

 

사람들은 빼빼 마른 멀티 플레이어를

너무 쉽게 대한다

늘 일당이 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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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成善慶)

 

*1960년 경남 창녕 출생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바둑론」 당선

*시집『풍죽』『민화』『햇빛거울장난』『네가 청둥오리였을 때 나는 무엇이었을까』『파랑은 어디서 왔나』『봄, 풋가지行』『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까마중이 머루 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진경산수』『아이야! 저기 솜사탕 하나 집어줄까?』『옛사랑을 읽다』『모란으로 가는 길』『몽유도원을 사다』『서른 살의 박봉 씨』『널뛰는 직녀에게』

*시조집 『장수하늘소』 *시선집 『돌아갈 수 없는 숲』

*시작에세이 『뿔 달린 낙타를 타고』『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았다』『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엽서』

*산문집 『물칸나를 생각함』 *동요집 『똥뫼산에 사는 여우』(작곡 서영수)

*고산문학대상, 이용악문학상, 산해원문화상, 경남문학상, 경남도문화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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