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시|박윤배
박하사탕 외
가랑비 내리는 애련리 철교 아래서
물안개와 손가락 걸며 나누던
그날의 약속은 어디로 갔나
나 돌아갈래, 돌아갈래
나 돌아갈 수만 있다면 돌아갈래
느리게 달려온 은모래가 기타 줄 퉁기고 가던 날
백사장 흔들던 차가운 손안에
아무도 몰래 건네준 편지
그날의 그리움은 어디로 갔나
천등산 흘러내린 새파란 물길에
산꿩은 떠나지 못해 저리 울고
그 자리 남은 찔레꽃 하얀 손수건은
뜬구름에 베인 발목의 상처도
포근히 싸매어 주려나
그날의 사랑은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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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고독의 한 장면
침대 머리맡 사각 통 안의 휴지가 뽑혀나가며
비명을 지른다 해도
통은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죠
화끈하게 시큰하게 건너뛰다가 달콤 혹은 몰캉하게
주저앉는 게 저들의 사랑 방식이라 해두죠
살구나무에서 날아간 새와
꽃을 떠나보낸 기억을 가진 살구나무는
그립다 말하지 않죠
씩씩 숨을 몰아쉴 때까지 배불리 내가 당신을 파먹어도
당신은 아직 내가 양손에 쥔 살구
컴컴한 어둠 속에서 또 누군가가
당신을 번갈아 파먹으려고 살금살금 달려올 테니
허공에 사각의 집을 둔 당신을 무슨 수로 가둘까요
뽑혀진들 그 자리에 서서 분홍 꽃이 흘리는 눈물은
살구가 가렵던 자리를, 머물던 새가 흔들던 자리를
살냄새 불러온 흰 바람이 닦아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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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배 1962년 강원도 평창출생으로 198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 『쑥의 비밀』, 『얼룩』, 『붉은 도마』, 『연애』, 『알약』, 『오목눈이 집증후군』이 있다. 대구시인협회상. 금복문화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시창작원 <형상시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