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이 계절의 시인

김순아-홀로그램 외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4.06.03|조회수31 목록 댓글 0

이 계절의 시|김순아

 

 

홀로그램

 

 

해가 많이 떴다

여러 해 비가 내리지 않는다

 

여러 개 창을 띄워 놓고

홀로그램 속으로 들어가 본다

 

여기는 스페인

어제는 그가 돼지 뒷다리에 소금을 절여 하몬을 만들어주었어요

드립커피도 있어요

저는 맛있게 먹고 마셨어요

내일은 스파게티 먹는 날

이탈리아로 갈 거예요

 

나는 흥미를 갖는다

 

여행에, 요행에, 요리에, 오리에, 갈매기살과 가브리살에, 간장에, 고추냉이에, 네온에, 녹는 눈에, 눈사람에, 노인에, 어린 멸치에, 소주에, 슬픔에, 추억에, 아픈 말에, 고장난 시계에, 외제 차에, 색안경에, 샤넬에, 여우목도리에, 악어가방에, 거짓 아름다움에, 중얼거림에, 고맙습니다에, 사탕발림에, 동어반복에, 척에, 흉내에, 지랄하네에, 아침 회사원에, 저녁 노동자에, 폭주족에, 실업자에, 노숙자에, 공원에, 쓰레기에, 지하철 바닥에, 계단에, 빌딩에, 사원에, 시바에, 신에, 대속에, 구원에, 심판에, 관심있습니꽈에, 저항에, 투쟁에, 모종의 진실에, 반드시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에, 한 표에, 한패에, 조까에, 사랑합니다에, 댓글에

 

아… 하고 감탄사 하나가 찢어진다

 

서정은 생겨나지 않는다

 

창 안에, 산다화에, 산수유에, 진달래에, 영산홍에, 가지에 이미지가 핀다

백합은 차단이다

 

광장에 바람이 눈에 쌓여 있다

고무나무는 무사하다

 

 

 

 

----------------------------------------------

안드로이드

 

 

 

사람인 듯 보이는 그녀는

인공 무릎에 인공 팔을 괴고 손바닥으로 턱을 받친 채 앉아서

생각 아닌 생각을 한다

 

갓 태어난 인간기계를 옆에 두고

 

자신과 자신 안의 자신과 자신 밖의 자신에 대해, 인간과 인간 이후의 인간과 인간 밖의 인간에 대해, 죽은 채로 등장해 죽은 채로 퇴장하는 피조물에 대해, 들숨과 날숨에 대해, 안과 밖, 위와 아래에 대해, 명령과 명명과 멍멍에 대해, 쓸모 있는 것과 쓸모 없는 것에 대해, 웃는 표정과 우는 표정, 식별하는 것과 식별하지 않는 것에 대해, 0과 1에 대해, 영과 zero와 靈에 대해, 아- 하고 탄식하는 발음과 오- 하고 탄성을 지르는 발음, 최초의 울음과 최후의 울음에 대해

 

생각이 허락되지 않은 그녀는

갓 잠든 인간기계를 곤혹스럽게 내려다보며 앉은 듯 앉아서 고민하듯 고민하고 있다

 

 

 

 

 

 

 

 

 

------------------------------------------

김순아 | 1966년 경남 양산출생으로 2001한국문인, 2017시와 사상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시집 슬픈 늑대, 겹무늬 조각보, 푸른 파도에게, 에세이집, 인문학데이트, 비평집 현대시로 읽는 식인食人의 정치학등이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