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박설하
사이시옷 외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외갓집에선 누구도 돌아가시지 않았다
큰외삼촌 밥그릇은 슬그머니 밥상에서 사라졌고
이모들은 시집을 갔다
독상을 받은 외할아버지는
귀퉁이에 앉은 외할머니를 타박하곤 했다
까딱거리는 발가락 습성을 할머니가
개다리소반 밑으로 숨기지 못해서
기찻길을 따라 오일장에 다녔다
큰외삼촌을 떠도는 뜬소문은
人으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다가섰다 멀어지곤 했다
흐린 샛길은
슬금슬금 징검다리를 건너
오일장처럼 돌아왔다 돌아갔다
외할머니의 발가락이 치마 밖으로 나와도
외할아버지의 목청은 더 이상 대추나무를 흔들지 않았다
모든 날이 나쁘진 않았다
외갓집 가는 갈래 길은
여전히 기찻길에 걸쳐진 시옷
그땐 논문서 날린 놈이 많았지
어쨌든 돌아오긴 했잖아
흙 장화를 벗으며
외삼촌이 희끗희끗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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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허그
잠들지 못했겠다
라디오 볼륨을 너무 높여 놓았다
집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밤마실이 잦았다
업혀 다닌 심심한 밤은 두런두런
잠이 되었다
닳아빠진 숟가락으로 생무를 긁어먹는 게 고작인
몇 집 건너 숙이네 사랑방은
메주가 줄지어 매달려 있기도 했고
아랫목에서 엇갈린 발가락들이 쿰쿰 익어가기도 했다
베갯잇 봉황 깃털을 세다가
물러터진 홍시를 숟가락으로 퍼먹기도 했다
업힌 어깨 너머로 다가섰다 멀어지는
하현을 몰고 오던 밤들
당당한 할아버지는 작은할머니를 들였고
할머니는 밤마실을 들였다
나는 가슴이 작아서
한숨으로 굽은 등을 세게 안아주지 못했다
라디오 볼륨을 줄인다
물무늬 쉐타 속에서 할머니가 흐르고 있다
등에서 굽어버린 긴 밤의 실타래를 올올 머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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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하
2022년 《애지》 등단, 시집 『화요일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