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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 명의 사람들 5회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4.06.04|조회수41 목록 댓글 0

■ 인물 에세이 ⑤

 

아흔아홉 명의 사람들

 

 

홍일표

 

 

 

서정춘 시인

“어이, 이 사람아. 괜한 소리 그만하고 감이나 하나 먹고 가세.”

어디서 서정춘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감나무에 홍시 하나 달랑 매달려 있다. 그의 시가 저러하다. 수억의 이파리를 다 떨어내고 서리 맞아 바알갛게 익은 홍시 한 알 같다. 그의 시에는 번다한 수사가 없다. 종이 위에 사리 몇 알, 보석 몇 알 뿌려놓은 것 같다. 순도 100%, 한 방, 한 쾌다. 고도로 응축된 핵의 미학이다. 짧은 몇 줄의 시 안에 내장된 에너지가 가히 핵폭탄급이다. 그의 대표시 ‘죽편’을 보라. 단 5행, 37자다. 서른일곱 자로 우주를 번쩍 들었다 놓았다. 게다가 신비롭고 아름답기까지 하니, 서정춘을 우리 시단의 문화재급 시인이라 불러도 괜찮겠다. 개인의 기호에 따라 그의 시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라. 얼핏 한 획의 선으로 끝난 듯 하나 그의 시 안에는 무한으로 이어지는 여운과 긴 파장이 있다. 시 안에 감추어진 삶의 여러 편린들도 생략과 압축을 통해 시를 겹겹의 무늬로 구조화한다.

팔순을 기념하는 시집 『하류』 또한 예외가 아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고도로 정련된 시편들이다. 눈사람이 “햇볕도나 좋은 날에 사그리로 녹아서 입적”하는 날에 편편의 시들이 거느리고 있는 매혹에 마음을 맡겨 보시라. 화톳불 같은 시의 뭉근한 온기로 온몸이 “두근두근” 해질 것이다.

 

금보성 관장

유휴열 초대전이 열리는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를 찾아갔다. 갤러리 방문 전에 금보성 관장의 미술평론 심사 의뢰를 받고 통화한 적이 있었다. 며칠 후 유휴열의 작품을 직접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에 아트센터를 찾아가게 되었다.

금 관장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의 작품 세계와 갤러리 운영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들었다. 그는 60세 이상의 화가 중 저평가되거나 소외된 작가를 대상으로 한 작가상을 제정, 운영하고 있었다. 사재로 마련한 상금은 1억원이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는 한글 조형 미술이라는 특이한 장르를 개척하여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화가이면서 아트센터 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거액의 상금을 걸고 작품상 공모를 하는 것이 놀라웠다. 작품상뿐만 아니라 두 명의 신진 작가를 선정하여 3,500만 원씩 상금을 주어 작품활동을 격려하는 일도 병행하고 있었다.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기관에서 주관하는 것도 아니었다. 온전히 개인의 사재로 운영하는 것이었고, 갤러리 대관도 무료, 그림 판매 대금도 전액 작가 몫이었다. 일반적인 관행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열정과 파격적인 행보로 미술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인물이었다.

 

전직 보좌관

“저는 개였어요. 늘 그랬어요. 개, 새, 끼! 이렇게 큰소리로 외쳐야 되는데, 늘 ‘충성!’만 외쳐댔죠. 비겁하고 비열했어요. 살기 위해서 그랬지만 돌아보면 개보다 못했어요. 권력에 기생하고, 가진 자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어요. 입으로는 정의, 자유, 민주를 외쳐대면서도 돌아서면 내 밥그릇 챙기기 바빴죠. 조직과 집단의 병풍 노릇이나 하면서 연명한 거죠. 가난하고 아픈 자들을 위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그들을 어떻게 이용할까를 생각했어요. 거짓 눈물을 흘리고 가식과 허위로 살아온 날들입니다. 타인에게 대단한 휴머니스트인 양 행세하면서 말과 글로 사기를 친 거죠.”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그만두고 백수로 지낸 지가 한 달 남짓 되었다고 했다. 보좌관은 별정직이고, 형식적인 채용 절차는 있지만 의원의 내심에 따라 채용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였다. 보좌관 상당수는 여야를 오가면서 기회를 엿보는 정치업자라고 했다. 그는 선거 운동원으로 일하다가 의원의 눈에 띄어 보좌관으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재선에 도전했던 해당 의원이 선거에서 낙선하여 보좌관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일에 대한 극도의 회의감 때문에 퇴직한 그는 요즈음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고향에 있는 연로한 부모님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귀농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 사람답게 살아 보려구요. 땅은 사람에게 거짓말하지 않잖아요. 정직해요. 땀 흘린 만큼 보답을 하구요.”

격앙된 어조로 이야기하던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분해졌다. 소주 두 병이 주량이라고 했다. 목이 타는지 앞에 놓인 조개 국물을 연신 들이마셨다.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헤어져 낙원상가를 지나 안국역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따라 운현궁 돌담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가 귀농할 괴산에 언젠가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괴산에 오면 대한민국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내장탕을 대접하겠다며 환하게 웃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잡지 발행인 손정순

1970년 청도에서 태어난 그는 잡지 발행인이다. 월간 『쿨투라』를 20년 가까이 펴내고 있으며 작가출판사도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그를 만난 것은 그가 모 잡지사에서 편집기자로 일할 때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는 편집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잡지사의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따듯했던 그는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고려대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고, 시집 『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을 펴냈다. 그 후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딸은 정신과 의사가 되었고, 아들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가 잡지를 시작한 것은 그야말로 만용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졌다. 몇 년 하다 그만두겠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그는 당차게 출판 일과 잡지사를 운영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일어섰다. 매년 펴내는 『오늘의 좋은 시』는 시단의 큰 화제가 되었다. 『오늘의 좋은 소설』, 『오늘의 좋은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거침이 없었다. 후원 단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업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어렵고 힘든 중에도 월간 『쿨투라』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문화 전문지로 우뚝 섰다. 매월 잡지를 만들어 펴내는 일은 거의 전투에 가깝다. 더군다나 취재 기사가 많은 문화 전문지는 현장 취재가 많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자리를 잡아 우수콘텐츠 잡지로 정부 지원을 받고 있고, 문화예술 분야에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제 그가 가쁜 숨을 돌리고, 시에게도 눈길을 주었으면 좋겠다. 치열한 열정의 소유자인 그는 본래 시인이었고, 앞으로도 시인으로 살아갈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병철 교수

한병철은 독자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어느 책이든 독자를 매혹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시간의 향기』, 『타자의 추방』, 『투명사회』, 『피로사회』를 읽으면서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피로사회』로 세계적인 철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은 그는 현재 독일 베를린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독창적인 저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땅의 예찬』 이다. 이 책은 기존의 철학서들과 달리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정원에서 키우는 영춘화, 얼음꽃, 노루귀, 옥잠화, 나무수국, 겹양귀비 등 여러 종류의 꽃들을 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철학적 사유를 풀어 놓는다. 지은이의 말대로 이 책은 땅과 자연을 향한 기도이며 사랑의 고백이다. 환경론자의 목소리 큰 주장이 아니다. 정원에서 자라는 꽃과 식물들을 보면서 살아 있는 유기체인 땅의 숭고함을 몸으로 느끼고 예찬하는 노래이다.

겨울꽃들은 숭고하여 신을 체험하게 하고 무 안으로 존재를 불러들인다고 하는 한병철은 ‘무화과’에 대한 단상에서도 남다른 사유의 일단을 보여준다. 열일곱 종이나 되는 무화과는 제각기 독특해서 하나의 이름으로 통칭할 수 없다고 말한다. 보편적인 명칭은 각자의 고유한 유일성과 특성을 없애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작은 손가락 존재로 축소 시키는 디지털 세상에서 땅과 생명에 대한 의미를 곰곰 되새기게 하는 『땅의 예찬』 은 여전히 한병철답다. 그는 보기 드물게 시인의 감성을 지닌 철학자이다.

 

문종필 평론가

나는 그를 잘 모른다. 그가 시인인지, 평론가인지도 몰랐다. 얼마 전 청탁 전화를 받고 그와 통화하면서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문학종간호에서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국립대 교수직을 과감히 던지고 비평 작업에만 전념하고 있는 평론가였다. 정해진 길을 걸어가다 그냥 죽기는 싫어 내린 결단이라고 한다.

등단한 지 몇 년 안 됐지만 그의 글은 현학적 제스처 없이 뼈 있는 글을 매우 정직하게 쓰고 있었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진솔한 글이었다. 대개 이런저런 눈치를 보면서 자기 안의 목소리와는 다른 얘기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이의와 반론을 제기하고, 새로운 담론 형성을 통해 주체적 이론을 펼쳐 나갈 수 있는 평론가로 보였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양심을 지닌, 허수아비나 들러리가 아닌, 근래 보기 드문 붓끝 매서운 비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안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솔직하고,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가진 게 없어도 자유로운 몸을 표현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앞으로 주목하여 바라볼 그의 이름을 우리는 문종필이라고 부른다.

 

서예가 김성덕

서예가 김성덕은 서예의 세 단계를 수파리守破離로 나누어 설명한다. 수는 기존의 모범답안 서법을 지키는 것, 파는 기존의 서법을 파괴하는 것, 리는 기존의 서체로부터 떠나는 것을 말한다.

서예의 완성 단계는 리에 있는 것 같다. 리에 이르면 글씨를 볼 때 신령스러운 광채, 즉 신채神彩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글씨의 모양을 본다고 한다. 그 단계에 이르러야 ‘글씨가 깊어진다’라고 한다.

시도 이와 같은 것 같다. 세 단계를 거쳐야 제대로 시를 쓴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대부분 수의 단계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많고, 더 정진하여 파의 단계에 이르러 어느 정도 자기 색깔을 갖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리의 단계에 도달해야 비로소 하나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의 길은 험난하다. 새로운 시의 영토를 개척한다는 것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 모든 예술 장르가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의 획을 긋는 것일 텐데 뒤에서 누가 “니는 뭐꼬?”라고 묻는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다만 걷고 또 걸을 뿐이다.

 

김태정 시인

미황사 동백나무를 만나러 다시 가야겠다. 미황사 아래 농가에서 시를 쓰며 마지막 생을 보낸 김태정 시인의 유해가 뿌려진 곳이 동백나무 밑이라 했다. “시가 저를 숨 쉬게 했던 유일한 통로”라고 했던 시인의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도 다시 찾아봐야겠다. 생전에 모 문화재단에서 5백만 원을 지원하려고 하자 쓸 데가 없다고 한사코 받지 않았다는 “망초꽃처럼 말갛던” 김태정 시인. 그녀는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토문재 근처에 있는 미황사 아랫마을에서 혼자 살다가 암 투병 끝에 마흔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뒤늦게나마 시인을 애도하는 마음 한 자락 내려놓고 가야겠다. 다음은 김태정 시인의 「동백나무 그늘에 숨어이다.

 


목탁 소리 도량석을 도는 새벽녘이면
일찍 깬 꿈에 허망하였습니다
발목을 적시는 이슬아침엔
고무신 꿰고 황토 밟으며
부도밭 가는 길이 좋았지요
돌거북 소보록한 이끼에도 염주알처럼
찬 이슬 글썽글썽 맺혔더랬습니다
저물녘이면 응진전 돌담에 기대어
지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햇어둠 내린 섬들은
마치 종잇장 같고 그림자 같아
영판 믿을 수 없어 나는 문득 서러워졌는데
그런 밤이면 하릴없이 누워
천정에 붙은 무당벌레의 숫자를 세기도 하였습니다
서른여덟은 쓸쓸한 숫자
이미 상처를 알아버린 숫자
그러나 무당벌레들은 태아 적처럼
담담히 또 고요하였습니다
어쩌다 밤오줌 마려우면
천진불 주무시는 대웅전 앞마당을
맨발인 듯 사뿐, 지나곤 하였습니다
달빛만 골라 딛는 흰 고무신이 유난히도 눈부셨지요
달빛은 내 늑골 깊이 감춘 슬픔을
갈피갈피 들춰보고, 그럴 때마다 나는
동백나무 그늘에 숨어 오줌을 누었습니다
눈앞에 해우소를 두고서 부끄럼성 없이
부처님께 삼배를 드릴 때처럼 다소곳이
무릎을 구부리고 마음을 내릴 때
흙은 선잠 깬 아이처럼 잠시 칭얼거릴 뿐,
세상은 다시 달빛 속에 고요로워 한 시절
동백나무 그늘 속에 깃들고 싶었습니다
영영 나가지 말았으면 싶었습니다

-김태정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 2004)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매혹의 지도』, 『밀서』,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중세를 적다』, 『조금 전의 심장』 청소년시집 『우리는 어딨지?』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 산문집 『사물어 사전』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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