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이펀현대시인선

최휘웅 시집-꿈의 방정식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4.04.20|조회수53 목록 댓글 0

사이펀문학상 수상시인, 최휘웅 시집 <꿈의 방정식> 발간

 

 

출판사 서평

 

2023사이펀문학상수상자인 최휘웅 시인이 시집 꿈의 방정식(사이펀현대시인선 21)을 펴냈다. 이번 시집 꿈의 방정식은 그동안 최휘웅 시인이 추구해온 현대시의 모더니티를 극대화시킨 시집으로 나이(44년생)를 못 느낄 만큼 언어적 신선감을 던져준다. 특히 사물과 사물에서의 병치적 사유와 몽환적 사유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시편들이 현대시의 또 다른 모형을 엿보는 듯하다. 이러한 최휘웅 시인의 시 쓰기는 한국 쉬르레알리즘의 대부인 조향 시인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 “나는 20대 젊은 시절, 조향 시인의 문하에서 초현실주의 시적 방법론이었던 자동기술법을 접했다.”고 시인이 밝히고 있다. 그는 조향 시인을 통한 서구의 시편들을 포함한 다양한 현대시의 기법들을 일찍이 접하고 자신의 내부 깊숙이 뿌리로 심어두었다는 것이다. 1982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하고도 줄곧 중앙(서울)을 찾아들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방법론으로 시를 쓰고 발표해 왔던 것이다. 이번 시집 꿈의 방정식은 바로 그러한 최휘웅 시인의 50여 년 시 작업의 한 준봉에 다름아니다. 하여 흔히 시집 뒤에 붙는 해설 대신 시인의 시론 내 시의 바탕화면을 실었다. 이는 독자의 이해를 높이고자 한 것으로 평소의 최휘웅 시인의 시에 대한 준비와 창작론을 엿볼 수 있다.

 

--------------------------------------------------------

 

시인의 시론

 

김춘수 시인의 무의미 시는 60연대 말 당시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경이였다. 뽈 발레리의 순수시와 시론에 빠져 있었던 그때, 김춘수 시에서 순수시의 절대 경지를 발견하고 시가 언어예술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시에서 언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이런 언어 실험이 억압된 의식을 해방시킨다고 믿었다. 윤리나 규율에 얽매여 있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해방시킴으로써 시가 보다 정화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시의 쾌락원칙과 통한다. 김춘수 시를 통해서 나는 시가 예술로 존재할 때 쾌락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

 

나에게 있어서 시는 몽상적 세계로 가는 통로다. 시의 존재가치 중 하나로 흔히 소원풀이 기능을 드는데, 어쩌면 나는 시를 통하여 현실의 벽을 넘고자 하는 기원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인간의 모든 논리적인 경계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열망이 시 쓰기의 동력이다. 앙드레 브르통은 양식이나 논리를 초월하여 꿈과 유아의 정신 상태에 가까워지는 것을 시의 이상으로 제시한 바 있다. 꿈과 유아의 정신 상태란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정이고, 순수한 내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20대 젊은 시절, 조향趙鄕 시인의 문하에서 초현실주의의 시적 방법론이었던 자동기술법을 접했다. 자동기술법은 의식을 방심放心의 상태에 놓고 의식 선상에 떠오르는 무작위적인 언어를 기술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이성의 논리는 배제된다. 이성이 비켜선 자리가 방심의 상태고, 비논리적인 무의식이 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무의식에 잠복 되었던 강박관념이나 억압감정, 그리고 리비도 같은 성도착 의식을 이성의 통제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것이 자동기술의 목적이지만 이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이 꼭 프로이드가 말한 정신 병리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방법으로 전후 문맥을 뛰어넘는, 반이성적인 아름다운 환상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이 방법론으로 시를 얻고자 고심했다.

 

-최휘웅, 시론 「내 시의 바탕화면」 중

 

--------------------------------------------------------------------------

시인의 약력

 

최휘웅 시인

시인 최휘웅은 1944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1962년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여 한국 쉬르레알리즘의 대부인 조향 시인 문하에서 현대시에 대한 수업을 받으며 모더니즘 시에 눈뜨기 시작했다. 1974년 소한진, 송상욱, 하현식, 김석, 옥영식 등과 「시와의식」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82년 월간 《현대시학》에 전봉건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1986년 유병근, 박현서, 박청륭, 하현식, 양왕용, 김성춘, 진경옥 시인과 「절대시」 동인, 1997년 박청륭, 정영태, 변의수, 김곰치, 정익진, 김언 시인과 「시21」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계간 《시와사상》 편집인(2002년~2019년), 계간 《부산시인》 주간(2017년~ 2021년 2월)을 역임했다. 수상으로는 동아대학교 교내 문학상(1968년 시 부문), 제4회 동아문인상(2008년), 제24회 부산시인협회 본상(2016년). 제8회 사이펀 문학상(2023년)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절대공간』(1975년 하현식 김석, 최휘웅 공저 시문학사), 『환상도시』(1986년 문학세계사), 『하얀 얼음의 도시』(1997년 전망), 『사막의 도시』(2001년 말ᄊᆞᆷ), 『녹색화면』(2009년 시와사상사), 『카인의 의심』(2015년 시와사상사), 『지하에 갇힌 앵무새의 혀』(2019년 빛남)가 있으며 평론집 『억압. 꿈. 해방. 자유. 상상력』(2006년 말ᄊᆞᆷ)이 있다.

 

 

-------------------------------------

시집 속의 시

 

몽상 속의 혀

 

 

 

철제 의수가 코스모스를 꺾었다 가을의 상처 깊은 곳에 발을 디민다 가을의 동공에는 수많은 물상들이 아픔을 쏟아내는 무한대의 공간이 있다

 

밤이 폭발하자 십자가 밑에 시궁창이 납작 엎드린다

 

노을이 하얘졌다

 

삼각형의 꼭짓점에 앉은 네모처럼 불안하게 비상하던 새가 오답으로 가득한 혀를 내밀었다

 

캄캄한 대낮

캄캄한 창살을 벗어나기 위하여

말에 검은 날개를 달기 시작한다

 

거짓말은 빨갛다 빨강은 검정과 동의어 그러고 보니 색의 미궁은 우리들을 헤매게 한다

 

혀가 몽상의 기억을 깨운다

그녀의 입술이 나락 끝에 있다

 

갑자기 나의 시선은 원근법을 상실한다 그러자 그녀와의 거리가 없어진다 우리의 관계는 한순간에 증발한다 그러자 생과 사는 꽃병으로부터 해방된다

 

아무리 비를 맞아도 젖지 않는 눈으로 말 하는 죽은 자가 목을 타고 올라온다 아늑한 거실에서 음습한 곰팡내가, 죽은 활자들이 지옥의 문을 열고 나온다 연기처럼...나는 우주의 시작이요 끝이다 면벽한 나는 말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지금

 

아뇩다라 삼막삼보리

 

사과를 절개하면 달콤한 입술이 나온다 철없는 장미가 가득한 세상이 열린다 악몽이 잠자는 공주를 불러온다

 

뺑소니차가 검문을 통과했다

콧노래가 가능과 불가능 사이를 횡단하고

차창 밖으로 달리는 손

 

스스로 신의 자식이 된 자들은 검은 계율과 우박처럼 쏟아지는 신의 통한을 안고 지중해를 건너 아시아에 도착했다. 시간이 덤으로 따라온다 시간의 변주를 음미하며 첼로의 어두운 내면으로 흐느끼듯 흘러들어 간 너의 모서리에 가슴이 찔렸다 보이지 않는 피가 튀고 창백한 유리가 뒹군다 수면 위로 떠오른 증거들이 비밀의 문 앞에서 서성이고 지구를 탈출하기 위한 수학공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회색 사나이.... 우주선.... 깨진 액정화면에 그녀의 혀가 나타났다

 

해 뜨면 그녀는 잠이 든다

날기의 종착점은 둥지인데

둥지가 기다리는 것은 저녁이다

 

저녁은 명치끝에 남은 아픔이고

꽃은 멍이며

삶은 흩어진 퍼즐조각인데

우리들은 밤마다 폭죽을 터트린다

 

너와 나 사이의 둑 터진 심연. 재고가 바닥을 드러낸 무심을 향하여 허허한 밤에 혀의 스위치를 켠다 찬란한 신음... 아득한 등대가 동녘 하늘 새벽 창에 희망을 새긴다 이승의 끝에 와서 비로소 그때 그 하룻밤 그 새벽이 다시 오지 않는 영원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때 나는 종말론에 젖어 있었다

 

아뇩다라 삼막삼보리

 

 

-----------------------------------------------------------

의식에서 명멸하는 시간

 

 

 

세상의 모든 관계가 증발한다

꽃병에 갇혀 산 생애도 무너진다

너는 죽은 눈으로 말하기 시작하고

산 자의 의식을 칼로 벤다

 

밤의 등에 기대어 달의 뺨을 만지다가

파도 소리 끊어진

피아노 건반 위로 불시착한다

빈 박수 소리

지구를 떠나기 위해 암기한 천체 공식이 무너진다

 

산다는 것은 죽음의 숨구멍으로 들어가는 일

나무들의 아우성을 보며 풀들이 자란다

내 귀에는 바람이 서식하고 있다

모래바람이 사막을 지나 까마득한 시간을 넘는다

 

천공을 헤매다 돌아온 하루

적멸의 진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지우고 또 지우다 저문 저녁

 

지하철은 어디로 가나?

캄캄한 불빛 어디 쯤에 정차했다가

또 다른 캄캄한 행성으로 달린다.

다 뱉지 못해 달려야 하는 고단한 여정

 

찢어진 유리의 아픈 투명함

홍수에 떠내려가는 통나무처럼

시간의 강물에서 멱을 감는다

 

초상화

인생의 주름이 들어서고

할레루야

 

바탕화면에서 가로와 세로가 만난다

만난 꼭짓점에서 날기를 시도한다

승천을 꿈꾸는 밤

바다가 찾아왔다

손 흔들 준비가 되었다

 

우리는 추락하는 해를 바라보았다

세상을 향하여 목을 찢었다

의심하는 눈

 

거친 혀가 난무하는 이곳은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다

 

녹색이 지워질 무렵

가지를 옮겨 다니는 새들의 방울 소리

귀밑으로 흐르고

바다는 발톱을 숨기고 숨을 고르고 있다

 

해변엔 갈매기들의 꺼진 눈들

두려움이 무릎까지 기어오른다

고요히 정박한 섬들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

짜릿하다

 

시간의 변주

소리의 어두운 내면

흐느끼듯 흘러들어

소리의 음습한 입자들에 취해

충분조건을 뛰어넘는 무한대의 꿈을 향한다

 

창백한 유리

나로부터 멀어져 가는

일생을 가린

그늘

 

사라져 버린 기적을 쫒다가

심장을 밟고 지나간

육중한 무게에 눌려 돌아온다

 

항상 스쳐 지나가는

환상의 물결

 

너는 늘 높은 절벽이었다

 

--------------------------------

디딤돌과 걸림돌

 

 

나는 디딤돌이고

너는 걸림돌이다

 

너는 늘 내 길을 막아서고

나는 네 발밑에 등을 내민다

 

나는 밤마다 울며 몸부림치고

너는 편안한 잠속에 빠져 있다

 

잠속에서 나는 악몽에 시달리는데

너는 마냥 천사 같은 얼굴이다

 

나는 이 역할을 바꾸고 싶다

 

물살 센 강을 건널 때마다

네가 또는 내가

걸림돌인지 디딤돌인지 헷갈렸다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걸림돌이든 디딤돌이든 다 돌일 뿐인데

 

그 한 뼘의 차이 때문에

우리들의 운명 놀이는 늘 평행선이다

 

--------------------------------------------

 

시집 목차

 

최휘웅 시집 꿈의 방정식

 

 

차례

 

1부

꿈의 방정식Ⅰ. Ⅱ. Ⅲ.

몽상 속의 혀

디스토피아

말, 말의 무덤

의식에서 명멸하는 시간

그런데 나는 모른다

어긋난 드라이브

어느 날의 낙서

반상합도

막다른 길목에서

이완의 관계

먼동이 틀 무렵

바벨탑

색즉시공

가위

치매

 

2부

조깅

존재를 찾아서

생의 경사에서

생의 무게

열반의 오류

시간의 공전

이명

나와 너

뉴스

기도

자성론

디딤돌과 걸림돌

해운대 마술사

이 시대의 풍경

길 위에서

백내장 수술 후

안구 건조증

동의어처럼

몰라

 

3부

코로나 1. 2. 3. 4.

청음

기억의 계단

섬섬옥수

꿈속으로 가는 길

시간에 대한 단상

경계에서

동백섬에서

모반

해운대의 밤

거울

시간여행

제자리에서

기억의 끝

뒤샹의 사생아들

천국

광복동

봉별기

그때

방의 추락

 

4부(단시)

나무

아내의 폐경

골목집

매춘

조크

남루하다는 것

신발장

천상천하유아독존

동거

홍수

오독

부두

부부

침묵

무아

삼매

견성

 

 

|시론|

내 시의 바탕화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