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향숙 시집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솔)
죽음에게 시비를 걸다
허향숙
무슨 사명이라도 있는 듯
녀석은 나를 피해 다녔다
수 년째 녀석을 추격했다
골목에서도
건널목에서도
숲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녀석은 무덤 앞 대리석 같은 얼굴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어느 날
명부를 들고
초등학교로 들어선 녀석이
아이들 합창 소리에
잠시 멈칫했다
이때다 싶어
달려가 덮쳤다
죽음아 죽음아
날 잡숫고
아이를 내어 놓으렴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시집,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
허향숙|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2018년 《시작》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리움의 총량』, 『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 전자시집 『슬픔은 늙지 않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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