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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애라 - 찰리 브라운을 위한 변명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24.06.04|조회수38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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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브라운을 위한 변명

 

 

손애라

 

 

 우리 주변에 가장 많이 있는 색깔은 무엇일까. 초록으로 빛나는 나뭇잎이 돋아난 나뭇가지와 몸통의 색, 땅속으로 뻗어나간 뿌리의 색, 뿌리를 감싼 흙의 색깔일 것이다. 물의 행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지구이지만 바닷물을 받치고 있는 지반은 흙과 암석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서 그 별로 가보면 보석 같은 광채를 내던 별의 조성도 흙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갈색의 땅임을 알게 될 것이다. 흙과 암석, 땅의 색깔과 나무의 색을 두루 지칭하는 단어가 갈색(-Brawon)이다.

 태초부터 그냥 있던 색. 모든 곳에 있고 너무 흔해서 제대로 인식하지도 않는 색. 노란빛 나는 모래의 갈색부터 붉은 색조의 황토의 갈색, 검은 빛에 가까운 익은 블랙체리 열매의 짙은 갈색까지 무수하게 많은 갈색조의 색이 있다.

 갈색은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색이다. 콘크리트와 철재로 된 높은 건물에 지친 사람들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갈색 나무로 지은 오두막집에 연갈색의 황토방을 들이고, 철따라 변하는 자연을 보는 간소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꿈은 보통사람들이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다. 현대생활에서는 공산품보다 자연에서 나는 갈색의 재료가 더 비싸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연이 주는 것을 고마워하지 않고, 아끼지 않고 낭비한 전 인류가 반성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갈색을 하나의 색깔로 인지하였을까. 지천으로 굴러다니던 돌 맹이 하나가 어느 구석기인의 눈에 띄었으리라. 호기심 강한 그는 조금 달라 보이는 그 돌(점토 덩어리)을 들고 손바닥에 쓰윽 그어보았으리라. 선명한 황토색으로 물든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선물로 가져다줄 작정으로 주머니에 넣지 않았을까. 원시인이 입은 동물가죽옷에 주머니가 있었다면···.

 사냥감이 많기를 기원하는 축제의 날, 얼굴에 점토로 무늬를 그린 사람이 나타났다. 이후 전사들은 몸에 여러 색깔의 점토로 색칠을 하게 되었다. 동굴에서 제사를 드리며 그들이 잡고 싶은 들소와 사슴의 그림을 동굴 벽에 그리는 구석기시대의 사람들. 기원전 삼만 이천년 경으로 추정되는 프랑스의 쇼베 동굴벽화, 기원전 일만 오천년 이전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 등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오래전의 그림과 암벽조각들은 구석기시대인의 염원을 담은 그림이다. 자연의 염료인 오커와 황토 등으로 채색한 벽화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생생함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오커는 산화철이 함유된 흙으로 만든 안료이다. 오랜 옛날부터 색을 칠하는데 써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북아메리카 원주민들 역시 얼굴과 몸을 붉은 색으로 칠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유럽인들이 그들을 가리켜 홍인종이라고 불렀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아넘랜드에는 거대한 오커 원산지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인 애보리진들은 이곳의 오커를 신성하게 여겼다. 일 년에 한 차례씩 자연의 정령들께 인간의 피를 바치는 신성한 의식을 올린 후에 오커를 채집하였다. 남자들만 참여하는 의식 후에 채집한 오커는 각 부족들과의 물물교환으로 각지로 전달되어 그들의 신성한 그림 ‘드리밍(Dreaming)’을 채색하는 원료가 되었다. 애보리진의 그림은 그 신화적 설화의 다양하고 신비로운 면과 아름다운 색감으로 현대의 추상 미술을 능가하는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브라운이라는 성이 있다. 하고많은 성씨 중에 왜 브라운(-갈색)일까. 성씨를 정하려고 씨족의 족장들이 모였을 때가 뒷산의 숲이 갈색으로 물든 늦가을이었을까. 갈색으로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기를 나누며, 부족에게 항상 먹거리가 풍족하기를 비는 마음이었을까. 곡식이 누렇게 익어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들판에 살던 사람들이라면 성을 골드(Gold)로 했을 것 같다. 최초의 브라운 일가는 그냥 편안한 느낌을 좋아하는 욕심 없는 사람들이었지 싶다.

 아이가 어릴 때 만화영화를 좋아했다. 일요일 아침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만화영화를 재미있게 같이 보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빨강머리 앤, 미래소년 코난, 은하철도999, 찰리 브라운과 그의 친구들. 지금처럼 다양한 놀거리, 볼거리가 많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TV를 유익하게 활용했던 것 같다.

 영리하진 않지만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 찰리 브라운과 그의 강아지 스누피. 빨간 개집의 지붕 위에 올라가 대자로 드러누운 강아지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만화의 주인공이 스누피라고 생각했다. 스누피의 친구인 조잘대는 더벅머리 새의 이름은 우드스탁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담요를 질질 끌고 다니는 찰리의 친구 라이너스가 인상 깊었다. 애정결핍을 손가락 빨기와 아기 때부터 쓴 담요에 기대어 푸는 아이의 모습은 맞벌이 엄마인 나의 입장에서 예사롭게 볼 수가 없었다.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똑똑한 여자아이들의 모습은 수퍼우먼 시대의 예고편이 아니었을까. 그때 그 만화속의 여자아이들이 자라서 사회 각처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활약을 하고 있다.

 간결한 선으로 그린, 예쁘지는 않은 모습들이지만 찰리와 친구들이 엮어내는 주제가 신선하고, 음악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작가인 찰스 슐츠(Charles M Schulz)가 그리고, 유나이티드 미디어가 발행하는 잡지에 53년간 연재되었다 하니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수많은 캐릭터 상품이 나오고 여러 번 영화화된 생명력 있는 작품이다. 잡지에 연재될 때의 제목은 ‘The Peanuts(하찮은, 가벼운)’라고 했지만 후에는 저자의 뜻을 따라서 ‘찰리 브라운’이라는 제 이름을 찾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이전부터 우유부단하고 융통성 없는, 조금은 맹한 사람을 가리켜 ‘찰리 브라운’이라고 한다고 들었다. 찰리라는 흔한 이름과 브라운이라는 편안한 느낌의 성이 합해진 찰리 브라운, 핀잔이기보다는 애정 어린 호칭일 수도 있겠다. ‘스톤(stone)’이라면 박치기를 잘하는 석수장이의 후예일 것 같고, ‘스틸(steel)’이라면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처럼 차가운 느낌이다. 부드럽고 둥글둥글한 브라운이라는 말이 귀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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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애라| 2002년 《실상문학》 시, 2014년 《문장21》 수필로 등단했다. 시집 『46억년의 바다를 지나 그가 온다』, 『내 안의 만다라』, 『종점부근』, 『그림엽서』, 산문집 『꽃비 내릴 때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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